기자명 김민지 기자 (msvt4ever@skku.edu)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화실인 ‘소울음’. 장애인들의 그림 공간이 전무했던 한국에서 장애인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돕는 공간이다. 하지만 소울음은 단순히 전문적인 작품 활동만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몇 차례의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입지를 다진 화가들 뿐 아니라 취미나 치료를 목적으로 미술을 하려는 사람들 모두가 소울음의 구성원이다. 이런 소울음화실의 원장 최진섭 화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최진섭 作 ‘봉권씨’
■ 작품 활동의 계기가 무엇인가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긴 했었지만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그림이 나의 길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이빙을 하다 허리를 다치는 사고를 겪었다. 그 후 척수 사지마비로 10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며 팔은커녕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으로도 감사하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다 갑자기 어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1년간의 노력 끝에 연필을 잡고 이름을 쓰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이를 계기로 그림은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 작품 활동에 어려운 점은 없나
특수한 내 상황에는 장점도 단점도 있다. 우선 비장애 예술가와는 달리 일단 붓 잡는 것도 힘들기 때문에 붓 터치도 한쪽 방향으로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를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한 기법으로 승화해 오히려 장점이 됐다. 반면에 혼자만의 힘으로는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물감을 짜는 것부터 캔버스를 옮기는 것 까지 일일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러니 내 그림의 주인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그리는 것이다.

■ 특별히 작품에 담고자 하는 예술관이 있다면
‘감사하는 삶’, 이것이 가장 큰 인생관이자 예술관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몸은 자연스럽지 못하지만 꼭 맞는 나의 길을 찾았고 사람들에게 밀알 한 톨만한 크기일지라도 희망을 줄 수 있기에 너무나 감사하다. 또 다른 인생관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 그림을 시작하면서 받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축복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또 그동안의 삶을 통해 나누면 기쁨이 더 커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같이 어려운 세상에 단 몇몇 뿐이라도 나 같은 사람들의 훈훈한 소식이 전해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눠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 장애인들을 위한 화실을 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88 올림픽이 끝나고 내가 치료를 받고 있던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척수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재활 병동이 생겼다. 하지만 환자들이 너무 많아 모두들 2~3개월 만에 퇴원을 해야 했다. 병원 밖으로 나온 환자들은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하루 종일 TV를 보거나 멍하니 누워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을 보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선배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92년에 ‘깨달음’이라는 뜻을 가진 ‘소울음’이라는 이름으로 화실을 열게 됐다.

■ 소울음 화실은 어떤 공간인가
소울음 화실은 단순한 화실이 아니다. 일반 화실들은 영리 추구가 목적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의 목적은 이익을 내는 것보다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는 것이다. 물론 소울음에서 작품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얻어 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서로 힘을 나누는 것이 이 화실의 또 하나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