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기자명 조은혜 기자 (amy0636@skku.edu)


‘과학 서적’하면 떠오르는 당신의 생각은? 혹시 알 수 없는 용어와 여러 번 읽어도 이해 가지 않는 문장들이 빼곡하게 박힌 책이 떠오르지는 않는가. 하지만 ‘과학서적’의 편견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오히려 다정한 말투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체로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민 과학자가 있다. 데뷔작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에 이어『과학콘서트』와 『도전무한지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너무나 친근한 과학자. 바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다.

#1. 책을 통한 ‘소통’을 시작하다

■‘흥미로운’ 과학서적으로 호평을 받고 계신데, 글을 쓰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거나 과학을 일반인들에게 알리려는 사명감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글쓰는 것을 좋아해서 학교 다닐 때부터 교지와 학교 신문을 만들었고, 대학 때는 학교 신문에 2년간 영화평을 연재하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석사 1학년 때 ‘과학동아’ 기자로부터 원고청탁을 받게 됐는데 그것이 시작이 됐습니다. ‘과학콘서트’의 경우는 미국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주말에 여유가 있어 쓴 글을 묶은 것이에요.

■과학서적은 전문적인 어려운 용어로 써야한다는 기존의 관념을 깨셨는데
‘과학콘서트’의 경우 ‘내가 읽고 싶은 과학책’을 쓰자고 해서 만들고자 한 것인데 제가 읽은 과학책들은 대부분 번역서들이어서 그런 책들이 모델이 될 순 없었어요. 하지만 제 책은 우리 과학자가 우리말로 우리 삶이 묻어나는 예를 들면서 과학을 이야기했기 때문인데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과학을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은 저로선 매우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교수님 책을 읽다보면 교수님께서 다양한 학문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네, 이것 저것 다양한 영역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연구를 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다방면에 호기심이 있다는 것이 저를 계속 공부하게 하고 다양한 책을 읽게 만드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처음엔 천체물리학을 전공했다가 복잡계 과학을 공부하면서 뇌를 연구하게 됐는데, 우주와 뇌, 결국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됐어요.

■책 속에 다양한 예시가 제시되는데, 이 이야기들의 원천은 무엇인지요.
저는 ‘과학 아닌 것에서 과학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화 속의 과학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지요.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제 글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다보니 당연히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제 과학 이야기 안에 등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과학적 관점이 일상생활에서도 떠오르실 것 같아요.
이것 역시 과학과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제 스타일의 결과물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감정뿐만 아니라, 사람의 모든 부분에 대해 관심이 있지만, 저는 다른 과학자들이 주목하지 않은 부분을 들춰내는 일에 재미를 느낍니다.

■실제로 책을 집필하실 때 각별히 유의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그런 건 없어요. 다만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 나만의 통찰력과 시선을 유지하는 것, 과학의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 정도가 특별히 신경쓰는 요소라고 할 수 있지요.

#2. 책을 넘어선, 또 다른 소통의 길

■일간지에서 소설가 김탁환씨와 함께 「눈먼 시계공」이란 소설을 연재하셨는데 소설을 쓰시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아주 오래 전에 구상했던 아이디어인데 3년 전에 김탁환 선생을 만나면서 구체적으로 글에 대해 논의하게 됐고, 1년 반 전에 윤곽이 그려졌지요. 과학자로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면서도 흥분되는 경험이었어요. 계속 참고문헌이나 논문을 뒤져야 하는 과학 글과는 달리 소설은 컴퓨터 앞에서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면 되니까 보다 편했지만 제 머리의 한계와 싸우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답니다.

■최근 사람의 마음(사랑, 화 등)에 관해 과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강연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마음치료’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성숙한 사랑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상대방 입장이 되어 공감하거나 배려하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실제로 저는 과학적 시선이 그런 것들을 도와주리라 믿습니다.

■과학과 관련되지 않은 행사에 출연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한달에 TV 인터뷰 요청, 잡지 인터뷰 요청 등이 15건, 예능오락프로그램 요청이 5~6건씩 들어옵니다. 다양한 행사 요청도 많이 오는 편이에요. 만약 그런 요청을 모두 받아들였다면 저는 좀 더 유명해졌겠죠.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자의식을 많이 잃어버렸을 것 같아요. 그래서 과학자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과학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 같은 책 전문 프로그램 등에만 글을 쓰고 있지요. 저와 정치적 관점이 다른 신문매체에 글을 쓰지 않는 것도 그 원칙 중 하나에요.

■기존에 참여하신 활동 외에 다른 매체를 통해 과학 지식 전달에 도전헤 보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사실 가장 해 보고 싶은 것은 ‘극장용 다큐멘터리’입니다. 과학자가 과학을 세상에 알리는 방식은 다양한데, 그 중에서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과학적 통찰력을 세상에 던지고 싶어요. 그리고 죽기 전에 SF영화 한편 만들어 보는 것도 꿈이랍니다.

#3. 그의 연구 분야를 조명하다

■현재 뇌공학과 관련해 중점적으로 연구 중인 분야는 어떤 것인가요.
제 연구 분야는 인간의 의사결정입니다. 인간이 선택을 하는 동안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왜 우울증 환자들은 고심 고심해서 자살이라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지, 그런 문제들을 풀고 싶어요. 이걸 응용하면 Brain-Robot Interface 등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뇌공학이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분야는 무엇이 있는지요.
인간의 몸 중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부분이 바로 ‘뇌’입니다. 워낙 복잡하고 기능이 많다보니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하나 하나 알아갈수록 그것에 대한 응용 가치는 매우 높겠지요? 뉴로마케팅, Mind-reading technology, 바이오닉스 분야 등은 앞으로 매우 유용한 분야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뇌공학의 범위가 넓은 것 같습니다. 뇌공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인문학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어떻게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게 됐는가?’에 대한 답을 하는 학문인데 앞으로는 뇌에 대한 이해 없이 이 질문에 올바른 답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뇌과학이나 뇌공학은 본질적으로 다른 학문 분야와 뒤섞이면서 발전할 수밖에 없는 분야이지요.

■문화기술대학원 겸임교수로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는 문화기술대학원에서 C. Interaction Lab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C는 Cognitive, Creative, Communicative 등을 의미하는데, 인간이 사물이나 로봇, 또는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 하는 것을 측정하고 이를 예술과 문화에 적용하는 일을 하고 있지요. 최근에는 데미안 허스트의 그림을 보는 동안 사람들의 뇌를 찍기도 했고, 신문에 실린 기업의 사과문을 읽는 동안 독자들의 반응을 측정하기도 했습니다.

 

#4. 젊은 과학자의 못다한 이야기

■과학고, KAIST 졸업 등 화려한 경력사항으로 인한 고충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인터뷰를 할 때 제 개인사 보다는 제가 과학에 갖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원합니다. 하지만 ‘과학고 생활’ 등 개인사에 대해 노출하다보니 저는 유명해지지만 제가 하는 얘기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원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말씀만 드리자면 과학고나 KAIST는 지나치게 공부를 많이 시키고 능력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늘 겸손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내가 남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기숙사에 살면서 다른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거든요.

■그렇다면 남과 같은 일이 아닌 교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매진하신건가요.
저는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 공부,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다행히 세상이 그것의 가치를 높게 봐주는 시절에 살고 있어서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됐어요. ‘인생은 한번 뿐, 세상을 탓하는 어리석은 시간으로 당신의 삶을 채우지 말라’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충고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대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까를 고민하지 말고, 앞으로 어떤 문제를 평생 도전하며 살까를 고민하시면 더 근사한 시간으로 생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나를 사로잡은 바로 그것. 그것을 위해 젊음을 도전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