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상현 편집장 (sangpa88@skku.edu)

누구나 세상을 살며 친구들 혹은 주변 사람들과 ‘약속’을 한다. 이 약속은 서로간의 동의가 있을 때 성립이 될 수 있고, 성립된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러한 약속은 누구와 어떠한 약속을 했는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본래의 약속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중에서도 정당이 국회에서 하는 약속처럼 법에 의해 구속력을 갖게 될 때는 더욱 강력한 수단이 된다. 국민과의 약속이나 다자간의 합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강력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약속은 어겨도 괜찮은 그저 그런 것들로 전락해버린 듯하다. 소위 ‘코리아 타임’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도,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항목이 주된 내용 중 하나로 포함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이렇듯 약속을 대수롭지 않은 것쯤으로 치부하게 된 데에는 현 사회의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국회에서는 ‘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하:특별법)’이 통과됐다. 이 법은 당시 공청회 등 법안 등록을 위해 마련된 행사만 5백회 이상이었고, 여·야당이 합의를 하면서 공포됐다. 하지만 현재 특별법은 정운찬 총리의 세종시 구상안의 발표를 필두로 하나둘씩 이상기류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도시 기능의 효율성 저하 △인구유입 대책 미비 △중앙행정기관 분리에 따른 비효율을 이유로  ‘세종시 전면 수정안’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 친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취업 후 등록금 상환제도’에서도 역시 기존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애초에 정부는 등록금 상환제도가 대출자 ‘본인’의 ‘소득 상황을 감안’해 상환을 시작하기 때문에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우려가 없다고 말했다. 자녀 대학교 학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돈이 없어 대학 못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대국민 홍보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4일 국회 재정위원회에 보고된 내용을 살펴보면 이 약속은 흐지부지됐음을 알 수 있다. 졸업 후 3년이 지나면 강제로 ‘상환’을 시작하고 ‘보증인’ 등 본인이 아닌 제3자에게도 책임이 전가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시행안이 변했기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 사안은 최근 정부에서 국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린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등록금 상환제도는 지금의 세종시 논란과는 강제성에서 약간의 정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경중을 차치하고서라도 당황스러울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뒤통수 때리기가 생활고를 겪고 있는 서민들에게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5조 4천여억 원의 국비를 들여 40%나 공사가 진행 중인 국책사업 역시 잘못된 약속으로 인해 전면 재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더구나 채무불이행률 10%기준, 등록금 상한 3% 기준도 원래의 등록금 상환제도에서는 등장하지 않은 내용들이다. 참, 등록금 상한 기준 3%는 믿을만한 약속이겠지.

한편, 지난 주 청와대에서 각 비서관실별로 언론 취재를 위한 공보담당을 두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책임감 있고 완결성 있게 취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공보담당 외에는 기자들의 접촉을 금지한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언론마저도 입막음하는 것은 아닐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