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예술가 새김 아티스트 고암 정병례씨

기자명 김영인 기자 (youngin09@skku.edu)

“붕어는 바다를 모릅니다. 그러나 연어는 바다를 꿈꾸지요”
연못 속 삶에 안주하는 붕어가 아닌, 힘들게 강을 거슬러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연어. 이런 연어의 삶에서 역경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 같은 인생을 살겠다는 사람이 있다. 한낱 도장 정도로만 인식되던 전각을 예술로 끌어 올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김아트의 물고를 튼 고암 정병례씨다. 어느 햇볕 좋은 오후, 인사동의 전각예술원에서 그를 만났다.

김영인 기자(이하:김) 새김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는데
정병례 예술가(이하:정) △문자 △회화 △조각 △디자인의 예술적 특성이 집약된 것이 전각이다. 여기에서 발전해 정신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를 새김기법으로 표현하는 예술이 바로 새김아트다. 여기에서의 ‘새김’은 단순히 돌에 그림을 새기거나 글씨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어른의 말씀을 새겨듣다’나 ‘너와 내가 사귀다’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새긴다’는 뜻을 공유한다면 다양한 장르가 모두 이 범주에 속할 수 있다.

 김 전각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정  이 일을 시작하기 십년 전부터 끊임없이 ‘내 인생의 지표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단순한 직업이나 일차적 목표가 아닌 인생과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기였다. 그러던 중 전각을 접하게 됐고, 알게 되자마자 이것이야말로 내가 타고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일의 결과물이라는 전각의 특성이 나의 독특한 생각과 사상을 표현하기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각은 평면이 아닌 육면의 입체다. 여섯 개의 면을 모두 활용할 수 있어 공간 개념의 구성에 대한 즐거움도 있었다. 

 

김 작품 창작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는가
 정 일상의 모든 것이 불쏘시개가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 불합리한 점이 많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웃음). 그만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많아지니까. 평화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 그 예다. 또한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한글을 주제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내 작품의 대부분이 고향의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살던 곳 바로 앞에는 영산강이 흐르고 있었다. 뒤편에는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옆을 바로 월출산이 감싸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나는 내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직선과 곡선의 미를 발견했다. 이런 단순한 미적 측면뿐 아니라 사상 측면의 성장도 가져왔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돼 인간이 탄생하고 세상이 음양의 조화로 이뤄져있다는 것, 우주와 나의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에 대해 깨닫게 됐다. 어렸을 때 생성된 나만의 이러한 감성과 크면서 갖게 된 뚜렷한 사상을 작품에 담고자 한다.

 김 전각분야에서의 독보적 위치는 미술계의 시샘을 받는데


 정 동료의 시샘에 크게 관여 하지 않는다. 위대한 사람일수록 가까운 곳에 적이 가장 많은 법이니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전각이 서예에 뿌리를 뒀다고 생각하는데 독자적인 예술 분야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전각의 예술적 독립을 주장해 왔는데 우리나라 미술계 기득권층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작품에 대한 타당한 비판은 수긍하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고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나를 배척하는 것은 어이가 없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보면 오히려 지금과 같은 아웃사이더가 더 좋다. 주류에 속하지 못한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그 대신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조직에 속박되면 참신한 생각을 잃게 된다. 예술가는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워야 하지 않나?

 김 자유로운 사고를 원동력으로 여러 분야와의 접목을 시도한 것인가
 정 예술은 규범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각을 한다고 전통적인 방법만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본령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표현해내는 도구는 상황과 시대의 요구에 맞게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 바탕으로 애니매이션이나 LED기술과의 연계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전통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전통이라는 틀로 얽매는 것이지 전통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의 것을 알아야 하고 기본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도장 파는 일에 10년을 쓴 이유다. 단순히 파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라면 1~2년으로 끝났을 것이지만, 나는 기본을 닦는 과정을 통해 자아 성찰을 했고 안목을 키웠다.

 김 전각의 변화는 끝이 없는 것 같다. 꿈꾸는 전각의 미래 모습이 있다면  
 정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끝냈다. 그러나 현재 내가 계획했던 것의 10분의 1도 못했다. 기본적인 바탕이나 겨우 구축했다고 할까. 연극을 하나 만든다고 치면 나는 여태 기획부터 연기, 관객까지 다 한 셈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보다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을 주인공으로 하기보다, 미래와 과거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또한 세계로 뻗어나가는 ‘정고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김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정 누구나 천재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성장시키거나 그렇지 못하는 경우의 차이겠지. 자신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항상 보완해야할 점을 찾아야 한다. 완성작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완성을 위한 매일의 숙제를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언제나 긍정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 속에는 해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성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 반성 속에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밑바닥까지 내려가겠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잠재돼 있는 각자의 천재성을 깨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