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민지 기자 (msvt4ever@skku.edu)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마이크로소프트 빌게이츠 전 회장은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엑스박스’라는 게임기 하나를 선물했다. 그 게임기의 표면에는 김영준 장인의 나전칠기가 수놓아져 있었다. 잊혀져 가던 우리 전통 자개의 빛이 외국인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고유의 멋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전칠기 장인 김영준. 사그라지던 자개의 빛이 그의 손끝에서 화려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김민지 기자(이하:민) 원래부터 나전칠기를 해왔던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처음 나전칠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영준 장인(이하:영)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는 증권 회사에 다니던 증권맨이었다. 회사를 다닐 당시 TV에도 출연하고 라디오 방송도 할 정도로 꽤 유명했었다. 하지만 증권 회사 일은 스트레스가 무척 심했다. 증권이라는 것이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 노력만큼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주위에는 심한 스트레스로 암에 걸리거나 탈모가 생기는 동료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사람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고 나의 노력에 따라 보람이 돌아오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둔 뒤 과거 어머니의 자개장롱의 빛에 반했던 경험을 살려 나전칠기를 시작했다.

 민 급작스레 시작한 작품 활동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영 처음 시작할 당시 주위에서 정말 많이 말렸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벌었던 돈도 탕진하고 결혼 생활도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전칠기 기술을 한 곳에서 배울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전칠기를 완성하는 데는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는데 각 단계별로 담당하는 장인들이 각각 따로 있어 총체적 과정을 한 번에 배우기는 어려웠다. 어떤 장인은 도안을 만드는 것만 맡고, 어떤 장인은 자개를 자르는 것만, 또 어 떤 장인은 자개(금조개 껍데기를 썰어 낸 조각)를 붙이는 일만 하는 등 모든 과정을 한 번에 완성시킬 수 있는 장인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일이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우다 보니 너무나 힘이 들었다. 특히 옻칠 기술은 국내에서 배우기 어려워 일본에 유학을 가서 배워왔다.

 민 일본 뿐 아니라 미국 유학도 다녀온 것으로 안다. 한국 전통 기술인 나전칠기를 위해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것이 의아하다
 영 미국에는 디자인을 공부할 목적으로 갔었다. 증권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녔었는데, 해외 예술품 전시장들을 관람하면서 새롭고 다양한 디자인에 감명을 받았다. 한 번 유명세를 타면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디자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 보니 남들과 다른 독창성을 지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 또 시대가 변해 가면서 다양성과 창의성이 더욱더 강조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나전칠기에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해 예전의 획일화된 틀을 벗어나 보자는 결심에 유학을 가게 됐다.

 

민 일반적인 나전칠기 작품들과는 달리 작품들이 옻의 고유한 색이 아닌 다양한 색을 띠는데
 영 디자인을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전칠기에 색을 입히는 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과거 나전칠기 작품들을 감상할 때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봤던 부분은 자개의 ‘빛’ 이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자개를 보면서 그것을 더 아름답게 변화시켜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개에 천연색을 입히고 표면에 원근감을 더해 예전과는 다른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안료를 배합하고 옻나무 수액에서 불순물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실패를 거듭했지만, 이제는 ‘컬러 자개’를 구현하는 기술로 특허도 보유해 세계에서 유일한 형형색색의 나전칠기 작품들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민 나전칠기를 IT 제품 디자인에 접목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영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도 변하고 있는 가운데서 나전칠기도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현실의 흐름에 맞춰 발전시켜 나갈 필요성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전칠기라는 전통적 소재를 IT 제품 디자인에 접목시켜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고자 했다. 이 뿐만 아니라 휴대폰, 냉장고 등 일상적인 기기의 디자인에 접목시킴으로써 소수만이 향유하던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민 이러한 활동이 상업적일 수 있다는 우려는 없나
 영 나전칠기를 IT 제품 디자인의 소재로 적용한 것은 상업적인 것보다도 대중과의 소통에 그 목적이 있다. 모든 것이 수공업으로 이뤄지는 나전칠기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기에는 희소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했다. 그래서 기술 개발을 통해 제작의 효율성을 높였고, 그것을 IT 제품 디자인에 적용했던 것이다. 물론 기업들의 경우 대량생산을 통해 작품을 싼 가격에 대중들에게 제공하려 하기 때문에 소량으로 높은 가치의 작품을 제작하려는 나의 의도와 어긋날 때도 있다. 그러한 기업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나전칠기의 가치를 오히려 떨어트릴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민 작품 활동의 방향이 전통을 지키는 것보다는 변화에 초점이 있는 것 같다


 영 물론 나전칠기라는 고유의 전통 기술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은 전통
기술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것 보다 현대적 감각에 맞춰 변화, 발전 시켜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남보다 늦게 시작한 것이 도움이 됐다. 젊어서부터 나전칠기에 몰두했으면 아마도 획일화된 사고에 갇혀 새로움을 창조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늦은 출발을 한 나로서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래서 요즘은 다른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하기도 하고 조선백자에 나전칠기를 접목시켜 보는 시도도 하고 있다.

 민 작품 활동을 하는데 있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 우리나라 사람들 스스로가 나전칠기라는 가치 있는 전통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작품 전시를 위해 해외를 찾을 때면 오히려 더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의 나전칠기에 감명해 내 손을 잡고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냐며 찬사를 보내온다. 해외 유명 박물관을 가보면 고려시대에 사신들을 통해 전달됐던 자개장들이 전시돼 있을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나전칠기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보니 기술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없어 앞으로 전통의 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앞장서서 기술 지원을 하고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도움을 기반으로 더 많은 이들이 나전칠기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것을 현대에 접목시켜 ‘온고지신’의 미학을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