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요즘 누가 학생운동을 한다면 속된 말로 미친 거 아냐? 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학생운동 세력은 그 규모 면에서 과거에 비해 미미하다. 이미 90년대 중반 사회주의권의 몰락, 신자유주의 확산, 사회민주화 진전, 과격 시위에 대한 일반학생과 시민의 반감 등으로 학생운동 세력은 방향타를 잃고 위기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소수의 학생운동 세력은 15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학생과 사회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세력이 미미하기는 해도 다원화 사회에 걸맞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학생운동 세력이 존재한다. 2007년에는 비운동권을 표방한 ‘뉴라이트대학생연합’이 출범해 정치이슈에 개입하는 것을 지양하고 학내복지와 문화적 권리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국총학생회연합(한총련)을 대체하는 ‘전국대학생연합’은 이전의 혁명적 투쟁방식에서 벗어나 등록금과 청년실업문제 등 대학생과 밀접한 이슈에 집중하고 있다. 그 외에도 반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전국학생행진’, 반전운동 단체인 ‘대학생 다함께’, 그리고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등도 다양한 차원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학생운동 세력들이 표방하고 있는 이념적 지향점 측면에서 사회적 모순과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려는 나름의 노력이 학우들의 무관심과 사회적 냉대 속에서 눈물겹게 느껴진다. 학생운동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나 구호를 외치고 여전히 과거 운동방식의 구태를 답습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이 전혀 근거 없지 않다고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 경험이 일천하지만 순수함을 무기로 불의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의 특성상 다소 이상적이거나 방식에 있어서 거칠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패와 비판이 두려워 젊은 지성들마저도 꿈꾸고 실험하고 좌절하고 다시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것인가. 오히려 꿈과 이상, 그리고 순수열정과 행동하는 지성이 사그라지고 있는 캠퍼스는 학생운동의 현재 모습보다 훨씬 더 암울하다. 지금 대학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회보다는 경쟁만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극단적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도덕적 불감증에 점점 더 찌들어 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졸업 후 사회조직의 부속품으로서 자신의 상품적 가치만을 높이기 위해 그저 맹목적으로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파편화된 대부분의 대학생 ‘개인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오히려 그런 대학문화가 이제 당연한 추세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학생운동의 역할과 성과는 찬란하다. 불의한 권력의 압제의 질곡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의 편에 서서, 식민지 시대는 독립을 위해 싸웠고, 독재시대에는 사회의 민주화와 경제적 평등에 크게 기여했다.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고통 받는 소외계층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희생하는 순수성과 도덕적 정당성은 학생운동의 힘의 원천이었다. 경제적 효율성만이 강조되던 경제성장우선주의, 물질만능주의에 젖어있던 우리사회에 자기성찰의 통로가 되었다. 지금은 학생운동이 패배주의에 젖어 있지만 그 승리의 전통과 성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사회 곳곳에 면면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지금의 학생운동의 역할과 방식이 많이 변했지만 우리가 미래사회의 주인공이라면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보다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우리들 내면의 신념을 사회와 시대에 투영하고 과감히 실험해보는 것은 젊음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돈과 권력의 불균등도가 심해지고 양극화로 인한 사회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사회 경제적 평등을 위한 균형추 역할을 수행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로 발전해나가는데 일정정도 기여하는 학생운동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