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필(법04)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내 몸은 정말 돈이 많이 들어가는 몸이다. 연예인도 아닌데 몸에 드는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도 난 연예인처럼 얼굴이 잘 생기거나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다. 참 비경제적인 몸이다. 애시당초 선택권도 없이 받은 육체인데 단 한 번도 바꿔 볼 기회 없이 평생을 울궈먹어야 한다니 너무 억울한 일이다. 왜 이 놈의 머리칼은 나다 말았고 머리털도 별로 없는 놈이 왜 머리는 크고 그게 안 되면 몸매라도 좋아야 할 것을 피부에는 세계 1%밖에 안 걸린다는 ‘건선’이란 병으로 똥칠이 돼있고 온갖 병에 다 걸려있는지. 정형외과, 피부과, 소아과, 신경정신과... 올해 병원 다닌 횟수는 금방 세지도 못할 정도고 덕분에 별의별 아스피린을 먹어보았다. 그래서 내 생일선물은 홍삼이니, 총명탕이니 한약이니 보약만 떼거지로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뭔가가 안 맞는다. 이상이 있다고 한 달 일찍 태어난 날이 하필 13일의 금요일이라니. 손가락은 하나 더 달려있고, 체중은 너무 안 나간다. 그래도 예쁘게 키우려고 하는데 머리털은 당췌 자라질 않고. 갓난아기 주제에 식음을 전폐한다. 훌륭한 위인들은 그 출생이 기이(奇異)한데 내 출생은 괴이(怪異)하다. 애초에 몸이 허약해서 병도 쉽게 걸리고 그러다가 언제는 정신과에까지 신세를 졌다. 악운도 많아서 걸핏하면 부러지거나 찢어지고 다친다. 16세에는 몸에 진흙을 바른 것처럼 이상한 증상이 나서 병원을 갔는데, 청소년기에야 드러나는 선천성 병이란다. 유전도 아닌데 선천성이라니 당황스럽다. 의사 선생님이 심하면 죽을수도 있다는 말을 한숨까지 쉬시며 너무 심각하게 말씀하셔서 난 내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줄 알고 며칠을 멍하니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나보다 더 괴로워한 사람이 있다. 나에게 이런 몸을 줬다고 나 몰래 자책하시던 우리 부모님이시다. 내가 밤에 정신이 이상해져서 소리치며 울 때, 옆에서 너무 놀라 눈물을 글썽이시며 날 안정시키시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신 어머님이시며, 야밤에 토를 쏟고 열에 끓을 때 나를 등에 업고 문을 연 병원을 찾아 몇 시간을 뛰어다니신 아버님이시다. 아들에게 안 좋은 몸을 줬다는 미안함과 그것을 배로 책임지겠다는 의식을 내게는 한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런데 중학교 때 어머니 서재에서 찾은 한 연습장이 말해주었다.

어머니께서 손이 가는 그때 그때 일기처럼 적은 것이었는데 그 소재가 대부분이 나였다. 처음에는 마냥 부끄러웠다. 부모님 사랑의 절실함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철없는 때였는지라 왠지 어색하면서도 창피했다. 그럼에도 책을 덮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연습장의 페이지에 빼곡한 것들이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너무 어려서 난 이미 기억도 잘 안 나는 일들이 부모님의 시각에서 읽혀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순필이 때문에 울었다. 박박 대들며 버릇없게 구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혼자 힘든 것이 낫다. “왜 이렇게 낳았어요. 아이씨”하며 책가방을 내던지던 너의 모습은 나아지겠지. 

아차, 내가 왜 그랬을까! 기억조차 잘 안 나는 과거에 후회가 막심하게 든다. 아, 얼마나 어리석고 못났는가. 내가 어머니께 슬픔을 드린 이야기에 나는 한참을 반성하고 후회했다. 거기엔 내 휜 엄지손가락에 대한 글도 있었다. 여섯 번째 손가락을 잘라낸 후유증으로 옆으로 휜 손가락 때문에, 혹은 육손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따돌림이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게 10여년 동안 사실을 말 못한 심정의 글이었다. 내가 여기 서있는 뒤로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걱정과 사랑을 주셨는지… 막 튀긴 기름 쪽으로 어린 내가 아장아장 걸을 때 말리시다가 기름에 데이셨을 때의 마음, 어머니랑 키를 댔을 때 내가 더 커진 것을 처음 알게 됐을 때의 아쉬움과 기쁨, 아들과 함께 피부과에 다녀올 때 지하철에서의 무거운 마음을 연습장이 보여주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느끼는 것은, 부모님이 안 좋은 육체를 주셔서 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내가 건강하지 못하여 부모님께 걱정을 끼친다는 죄송함이었다.

울컥하고 올라오는 애틋함과 감동에 너무 부끄러워 연습장을 몰래 책장에 다시 꽂아놓았다. 그리고 어머니께는 연습장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졌음은 물론이거니와, 내 육체에 대한 부끄러움이 가시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정성으로 가꿔주신 육체를 어떻게 부끄러워 할 수는 없다고. 갓 중학생이 된 어느 날인가 밤에 내가 기억이 나지 않는 여섯 손가락을 달고 있었던 나의 옛날 이야기를 어머니께서 해주셨다. 애써 아픈 마음을 누르시고 될 수록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는 그 각별하신 배려 앞에 난 훨씬 밝은 마음이 되는 것을 느꼈다. 역사의 골목골목에 ‘눈물을 보이지 않는 어머니’가 강한 아들을 만들어 주는, 별처럼 반짝이는 이야기도 이와 같이 살아있는 것이겠지.

“꽃과 나비는 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저렇게 아름답게 살지 않느냐”
어린 아들에게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가 있다. 부모님의 자애로 담뿍 적신 나는 꽃보다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리라 다짐한다.  

빗질

머리 빗겨 달라며 엉덩이를 돌린
내 아가의 뒷 태에는
그림자가
내 어릴적 그림자가 어려있다
 
아가의 머리를 빗어내리며
아래로 아래로
네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네 아름다운 칭얼거림과...
겸허해지는 내 마음을 빗질한다
 
다 빗기우고
내 손끝이 아가의
어깨쭉지에 닿으면
훈김이
높이높이 날아오를 날개의 씨알을 더듬는
내 엄마의 훈김이 묻어난다
 
어느 저녁 어스름에 들여다 본 너의 거울에
아래로 아래로 몸을 낮춘 내 모습이 비추일 수 있다면
지금은 어린 너의 날개짓은
 
자유를 배웠을테지
자유를 얻었을 테지 

“아가
나의 뜰이 충만한 건
내사랑을 일궈내는 네가 있음이지
오십센티 네가 백이십육 센티 이만하기까지 내 인내는 강물만 해져
내 사랑은 너의 등뼈 어디에 튼실하게 자라고 있느냐
 
네 기름진 머리칼이 날리면
민들레꽃처럼 노랗게 불 켜지는
나의 뜰로
땀방울 흘리는 달음질까지
몽땅 향기까지 나더라
달음질쳐서
줄달음질쳐서 멀리까지 가더라도
네가 뿌린 추억으로 내 뜰을 가꾸리니
 
오늘 이렇게 뜰을 가꾸는 것도
아가
새싹 돋는 너의 뜰을 위하여”  

어머니의 연습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