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가작 - 권미진(경영08)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칠년을 지새운 친구와 필담을 나누다가 새삼 지금이 이천구년이라는 사실이 서러웠다 새 천년이 찾아온다고 온 세상이 왁자지껄하던 이십세기의 끝자락에 우리는 흔들리는 지축 위를 그저 첨벙이며 뛰어다니고픈 아이였다 나의 이십일세기는 온 가족이 거실에서 배 깔고 누워 귤을 까먹으며 티비를 보던 그 평화로운 자정에 시작되었는데 티비 속 숫자가 거꾸로 셈을 하며 영을 향해 달려가던 그 순간부터 숫자는 끊임없이 증식하며 초단위로 뜀박질을 해댔고 어느덧 또 십분의 일 세기의 끝자락이다 또 한 번 세상은 무너질 듯 헐떡이고 우리는 이제 꺼져가는 지축에 매달려 밑으로만 가라앉으려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무엇이 되었다 내가 아이에서 무엇으로 변태한 그 십년 동안 일어난 모든 일들이 영문을 모를 만큼 아득히 뒷걸음질 치는데 내가 지난 세기에 존재한 적이 있긴 있었던가 순간 나는 이십세기도 이십일세기도 아닌 그 자정으로 돌아가 뜨뜻한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귤을 까먹고 싶어졌다

※ 행 배열이 작가의 의도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성대신문사로부터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마침 수업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두고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졸고 있었다. 게으르고 나태한 나답게 전날에서야 레포트를 밤 새워 날려 쓰고 급하게 등굣길에 오른 탓이었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돈 나의 대학 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언제나 해야 할 무언가를 하지 않았고 뒤늦게 후회했다. 어렸을 적부터 나에게 글쓰기란 꼭 해야 할 무언가였다. 글 쓰는 것이 행복했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이년여의 대학 생활 동안 나는 글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언제인가부터 후회부터 하려드는 내가 부끄러웠다.
이런 나에게 가작이라는 이름표는 일종의 면죄부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미약하게나마 펜을 놓지 않고 있었다는 위안을 줄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죄가 많은 이에게도 면죄부를 쥐어주신 교수님께 진심이 담긴 감사의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떳떳한 사람으로 거듭나라는 채찍질로 받아드리겠다. 마지막으로 친애하는 행소문학회 동인들과 기 군 그리고 칠년을 지새운 친구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