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성대신문
  • 승인 2009.12.21 02:23
  • 호수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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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수작 - 허준행(국문03)

  그는 자신을 혁명가라고 소개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막 목구멍을 쌉싸래하게 넘어가던 소주를 뱉어낼 뻔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혁명가다운 풍모가 있었다면 어쩌면 그의 말에 조금은 수긍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내가 상상해오던 혁명가의 이미지와는 어느 하나 부합하는 부분이 없었다. 혁명가라면 무언가 우수에 찬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 바바리코트 정도는 입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하고 나는 쯧쯧 혀를 찼다. 그는 멜빵 청바지와 검은색 2002년 한일 월드컵 기념 티셔츠를 입은, 그야말로 언밸런스한 패션 감각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풍성한 턱수염은커녕 벗어진 머리가 형광등 불빛을 눈부시도록 찬란하게 반사시키고 있었다. 그는 잘생겼다거나 멋지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매력은 전무했지만 특이한 외양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코미디언처럼 보였다. 어쨌든 그것도 재주라면 꽤 쓸모 있는 재주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여튼 이상해 보이는 이 희한한 사내는 지금부터 5분 전에 자신을 ‘최’라든가, ‘체’라든가 그렇게 소개하며 투명한 비닐봉지에 소주 대여섯 병과 노래방 새우깡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술이나 한 잔 하면서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좀 나누어볼까 하고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최에게 강씨가 무뚝뚝하게 한 마디 던졌다.
  “또 뭔 사회재활단체인가 하는데서 왔는가? 그 짝 말은 필요 없고, 고 봉다리만 놓고 가면 참 좋을 텐데 말이시.”   
  최는 씩하고 한 번 웃더니 넉살좋게 자리에 앉아 소주를 땄고 종이컵을 꺼내 우리에게 따라주면서 우선 한 잔씩 하라고 권했다. 나는 그가 분명히 요즘 유행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캐내서 대포차를 만들거나 하는 등의 불법적인 일을 하는 협잡꾼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이 바닥에서도 몇 명이나 그런 일을 당해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돈 10만원에 자기의 주민등록번호를 거래하는 건 아무리 봐도 치러야할 비용이 너무 컸다. 나는 절대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너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K의 눈물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휴대폰 요금을 비롯한 각종 공과금을 제 날짜에 꼬박꼬박 납입하고, 현찰로 물건을 살 때 마다 잊지 않고 현금영수증을 발행받고, 현금서비스를 전혀 받지 않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착실하게 신용등급 A의 아성을 쌓아올리던 내가 K의 눈물을 통곡으로 이어받게 될 줄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얼굴도 모르는 고조할아버지가 나타나 “얘야, 요즘 나한테 올리는 제사상이 영 형편없더구나. 하기야 요즘 같은 세상에는 제사 한 번 차리는데도 돈이 좀 많이 들어야지. 너도 편하고 나도 후손한테 좀 잘 얻어먹자는 뜻에서 내가 몰래 천기를 누설할 테니 꼭 기억해야 한다.”라고 하며 1등 로또 당첨번호 6자리를 낭랑하게 읊어줬다는 어떤 사람이 고백한 대박의 꿈을 꿀 수 있는 확률과 비슷한 것이었다.
  나와 K는 어린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 졸업장을 모두 똑같이 받았고 색상만 다른 같은 차를 사서 타고 다닐 정도로 오랫동안, 그리고 나름대로 끈끈한 우정을 맺어왔다. 하지만 K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IT회사를 차려,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납품을 시작하면서 그는 맨 먼저 차를 대형 세단으로 바꾸고 운전기사에게 차를 맡겼다.
  “인생 뭐 있어? 남자는 큰 거 한 방인거야! 쩨쩨하게 허술한 잽만 날리다가는 다른 놈한테 KO당하기 십상이라고. 한 번 사는 인생, 찌질하게 살지 말고 폼 좀 나게 살아라.”
  이렇게 말하고는 시바스리갈, 스카치가 몇 병이나 포함된 술값을 호방하게 내는 K의 뒷모습은 송곳 같은 어퍼컷으로 상대의 턱을 날리고 다운된 적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심판의 카운트를 기다리는 강인한 인파이터처럼 보였다. 그에 비하면 나는 시시한 잽이나 몇 개 날리다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상대의 펀치를 피해 코너에 몰리면 가까스로 클러치나 하는 어설픈 아웃복서였다. 똑같은 졸업장을 가졌는데 K만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 있는 강한 펀치를 얻게 됐다는 건 몹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K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평범한 생활을 꾸려가기에도 벅찼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보통의 삶이란 게 꼭 어떤 기준이 있지는 않겠지만 결혼을 앞둔 스물아홉 살의 남자의 경우에는 보통 집과 차의 소유 여부가 그 잣대가 되기 마련이다. 당시 나는 20대초부터 장기주택마련저축과 청약저축을 꾸준히 넣고 있으나 아직까지 당첨이 되지 못했고, 오너드라이버긴 했으나 차 할부기간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있는 상태였다. 다만 그래도 내 주위에 많은 녀석들처럼 허섭스레기 백수는 아니라는 것으로 자위를 할 뿐이었다.
  내가 티 나지 않게 배 아파했던 K의 돌주먹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보다 수조(兆)배는 단단한 물체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됐다. 무엇이 틀어졌는지 대기업에서 일방적으로 납품 업체를 K의 회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린 것이다. 대형 거래처를 잃은 K는 미국과 유럽 등지로 직접 수출을 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일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어음의 만기가 계속해서 돌아왔고 K는 돈을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고, 돌다가 결국 나에게까지 찾아왔다. 팔팔했던 K는 어느새 펀치드링크에 시달리는 퇴물 복서가 되어 있었다.
  “미안하다. 한 번만 도와다오.”
  K는 식상한 말로 나의 도움을 구했다. K는 조금만 더 자금이 융통돼 버틴다면 그 시간 안에 새로운 거래처를 찾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물론 나는 K의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때마침 K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왈칵 눈물을 쏟았고, 나는 K의 집에 갈 때마다 그의 어머니가 해주셨던 매운 고추장 떡볶이가 떠올랐다.
  그 후 모든 것은 파국이었다. K의 회사는 결국 최종 부도처리 되었고 보증을 섰던 나도 망했다. K는 종적을 감췄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신용등급이 높았던 덕분에 K에게 많은 돈을 빌려 줄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내가 감당해야 할 빚이 되어 돌아왔다. 남산타워 꼭대기 전망대에서 내가 무릎을 꿇으며 프러포즈를 했을 때 방식이 진부했지만 굳이 거절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승낙했다던 새침한 여자친구, 그래도 40대까지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던 직장이 날아갔다. 많지는 않아도 내가 소중히 여기며 갖고 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나를 다 떠나버렸다. 10년이 넘는 두터운 우정을 금전 앞에 초라하게 굴복시키기 싫었던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원망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자존심의 실체를 눈앞에 꺼내 모욕하고, 자근자근 밟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세상은 알아서 내 자존심을 빈사상태로 만들어주었다.
  K처럼 돌고, 돌다가 서른을 앞둔 문턱에서 나는 서울역 노숙자가 됐다. 대한민국 안이라면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곳에서, 어디로도 가지 않고 사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처음에 나는 발버둥을 쳤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시간을 의식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멈추면 마치 죽을 것처럼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나 혼자만 정지해있다는 박탈감을 나는 쉽사리 떨치지 못했다. 나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한동안 서울역 대합실 2층에 올라가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거의 틀림없이 정시에 도착하는 열차의 치밀한 운행 시스템에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그런데 부작용도 나타났다. 몇 백대의 열차가 들락날락 거리는 동안 무뎌져야 할 내 시간감각이 오히려 날카롭게  벼려진 것이다. 예컨대 시계가 오전 11시 15분을 가리킨 것을 보고, 32분 후의 시간을 감지해내겠다고 생각하면 나는 정확히 오전 11시 47분에 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감각 안에서 돌고 있는 시계는 서울역 운행 시계와 점점 일치해갔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된 사람에게 주어진 정확한 시간 감각은, 참으로 쓸모없는 능력이었다.
  최가 온지 3분이 지났을 때 나는 선수를 쳤다.
  “괜히 우리들더러 신용카드를 만들라느니 해서 온 거라면 잘못 온 거요. 우리는 속지 않습니다.”
  노래방 새우깡 봉지를 찢던 최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저는 여러분들을 이용하고자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썩어 빠진 이 사회의 ‘정의 실현’을 위해 싸우는 사람입니다.”
  “그……럼 경찰이요?”
  호들갑스럽게 이씨가 반문하자 최는 소주를 한 잔 들이키더니 말했다.
  “경찰은 사회의 정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이 사회를 지키는 집단일 뿐 정의를 수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그럼 당신은 도대체 뭐냐?”라는 얼굴로 최를 쳐다보았다. 최는 머리카락도 몇 가닥 남아 있지 않은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긴 뒤에 씁쓸하게 웃으며 우리의 표정에 답했다.
  “저는 혁명가입니다.”
  그 자리에 최의 말을 들은 강씨, 송씨, 이씨, 정씨, 남씨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아까 말했듯이 나는 소주를 도로 밖으로 뱉어낼 뻔하다가 도로 꿀꺽 삼켰다.
  “아이고마, 혁명? 그게 무슨 말인교?”
  새우깡을 와작와작 씹던 남씨가 묻자 정씨가 덧붙였다.
  “당신이 얘기하는 혁명은 의식혁명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우리 같은 노숙자들의 의식을 뜯어고쳐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당당하게 복귀시키는 거 말이오.”   
  인문학 교화 강좌에 단골로 드나들던 사람답게 정씨는 강연자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최에게 옮기고 나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최는 “의식혁명”이라는 놀라운 단어가 정씨 입에서 나온 것을 그다지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물론 혁명에는 의식의 전환도 포함됩니다. 그렇지만 제가 바라는 혁명은 여러분을 단순히 사회 속에 돌려놓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 이 사회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직접적인 혁명입니다.”   
  나는 경악했고, 정씨는 모처럼 자기가 한 유식한 말에 최가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다른 의견을 내놓자 시무룩해졌으며, 남씨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새우깡을 입에 넣고 있었다. 강씨는 킬킬거리며 최를 비웃었다. 
  “그러니까 최씨 양반 말씀은 우리더러 짱돌이라도 들어 던지라는 것인가?”
  “대체 어…어디로 던지라는 건지?”
  이씨는 최를 쳐다보며 말했고, 최는 껄껄대며 웃었다.
  “우리는 데모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돌도 화염병도 던지지 않아도 되고, 죽창을 들 필요도 없습니다. 뭐 하러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썩어빠진 권력의 방패막이에 불과한 전경들을 다치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비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것입니다.”
  멜빵 청바지에 2002년 한일 월드컵 기념 티셔츠를 입은 대머리 혁명 전사라니,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나 최의 표정은 진지했다.
  “너무 뜬금없을 것 같아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얘기하겠습니다. 추후에 다시 들러서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게릴라전은 보안이 생명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함부로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최는 우리에게 온 지 8분 만에 자리를 떠났고, 우리는 그가 남기고 간 소주를 마시고 새우깡을 먹었다. 그렇지만 소주 6병은 6명이 취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양이었고 안주는 부실했다. 하는 말은 흰수염 고래인데 배포는 밴댕이 같은 놈이라고 우리는 입을 모아 최를 힐난했다. 혁명가라면 대머리를 그대로 내놓는 대신 별 달린 모자라도 써야 뭔가 혁명가답지 않으냐고 내가 말하자, 최가 아무래도 정신병자 같다며 남씨가 부연했고, 강씨는 미친놈이 사줘도 술은 술이라며 곱게 마시고 잠이나 자자고 말했다.     


  서울역에 자리를 잡은 지 이제 두 달을 조금 넘기면서, 나는 이곳의 생리를 거의 체득했다. 어느 교회에서 무슨 요일에 무료 배식을 한다는 정보는 이미 외운 지 오래됐고, 어느 단체에서는 빈민들에게 오백 원이나 천 원씩 돈을 주기도 해서 그곳을 새벽부터 빠른 걸음으로 돌기도 했다. 이 코스를 처음 가르쳐준 강씨는 “이것도 인이 백혀야 좀 수월한 법이여.”라고 한마디 한 뒤 나보다 한참을 멀리 앞서 나갔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은 강씨의 다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튼튼했다. 처음 도보로 서울 북부의 절반을 하루에 돌아 3500원을 받아온 날, 나는 다음날까지 꼼짝하지 못했다. 남씨는 나의 다리를 주물러주며 위로를 해주었다.
  “성지순례 하느라 힘들었재? 하느님을 영접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기라.”
  우리에게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갈 수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단돈 500원을 주는 곳이 바로 성지였다. 그러나 서울역에 산다고 해서 누구나 순례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 일용할 양식을 충당하느니 깡통을 앞에 두고 몇 시간 엎드려 있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구걸보다는 내 발로 돈을 버는 법을 택하고 싶었다. 그것은 허약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빌어먹는 순간 다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금보다 더한 나락으로 빠질 것이라는 공포심이 나를 억지로 지탱하고 있었다.
  순례를 하고 받아온 돈으로 산 참치삼각김밥을 우물거리며 나는 부산으로 향하는 KTX 열차가 정차해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날렵하게 생긴 기차였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설계된 유선형 주둥아리와 파란색 줄무늬가 그려진 옆면은 바다를 유영하는 돌고래처럼 보였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기분은 꽤 상쾌할 것 같았다. 하지만 승객들은 그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노숙자가 되기 전 나는 KTX를 탔을 때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편리함에 감복했을 따름이었다. 사실은 탈 것의 안에 타고 있는 것보다 밖에서 바라볼 때 느끼는 속도감이 훨씬 짜릿한 것이다. 그것이 F1같은 레이싱 경기에 관중들이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고 있습니까?”
  3일 전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했던 최가 어느새 내 옆에 와 있었다. 멜빵바지와 한일 월드컵 기념 티셔츠는 여전했다. “혁명을 하려면 일관된 패션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지를, 역시 혁명가는 사회정의실현에 힘쓴 나머지 다른 부분에는 도무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답하려다가 본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KTX를 보면서 저게 엄청나게 느리게 달리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 말을 듣자 최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혹시 제가 작전 계획을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까?”
  “작전이라니요?”
  “일전에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겠다고 한 혁명의 구체적 실행 계획 말입니다. 전에 방문한 이후로 제가 자세한 사항을 얘기한 적은 없었는데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아니, KTX가 터무니없이 느리게 운행하는 게 도대체 당신이 하려는 혁명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KTX의 서행이 이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데 무슨 관련이라도 있습니까?”
  장난으로 내가 한 말에 반응하는 최가 의아스러워 조금 큰 소리로 묻자 그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쉿!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이런 중요한 내용을 다른 사람들이 듣기라도 하면 우리가 애써 세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벌써 동지들이 작전 실행에 돌입했습니다. 잘못해서 이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 그들이 매우 위험해집니다.”
  엄숙한 최의 발언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최가 KTX 승무원이 탑승객을 표에 적힌 열차칸으로 안내하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직 디데이까지는 시일이 좀 남았습니다만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보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의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바입니다. 그 중에서도 당신은 우리의 이번 계획을 성공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최의 말을 들으며 나는 갑자기 내가 무슨 첩보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얼토당토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중책을 맡는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묘한 자부심이 치솟았다. 그러자 최가 진짜 혁명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서울역에서 산 이후부터 시간을 정확하게 감지하는 능력이 생기지 않았냐고 물었다. 도대체 그 사실을 최가 어떻게 알았을까 의아해하며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가 말했다.
  “아까 제가 당신에게 말을 건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습니까?”
  어려울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정확히 5분 4초가 지났습니다.”
  최가 웃었다. 회심의 미소를 가리키는 사전적인 얼굴이 있다면 바로 지금 그의 얼굴이 정확히 그러하리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그가 낸 시험에 통과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어디론가 나를 이끌었다. 계단을 내려가 몇 개의 모퉁이를 돌아 그의 비밀 아지트로 데려가나 했는데 예상보다 싱겁게 역 안의 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를 보고 아르바이트 점원이 인사를 했다. 
  “사장님, 나오셨어요.”
  예상치 못했는데 최가 이 편의점의 사장인 모양이었다. 
  “그래, 김군. 오늘 들어온 물건들은 창고에 있나?” 
  “네, 잘 받아다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놨습니다. 저어……. 그런데 사장님.”
  “무슨 일이지?”
  “다른 게 아니라 제가 갑자기 돈이 좀 필요해서 그런데요. 죄송하지만 이번 달 월급을 좀 가불할 수 있을까요?”
  아르바이트생은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했지만 듣는 최는 그다지 기분이 좋아보지 않았다. 최는 꽤 긴 침묵, 정확히는 17초를 유지하다가 입을 열었다.
  “김군, 자네도 요즘 경기가 별로 좋지 않은 걸 알잖나? 나도 이곳저곳에서 내가 받을 돈을 못 받고 있어. 이런 때에는 자네에게 월급을 제 때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하지 않겠나?”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김군이라는 아르바이트생은 힘없이 눈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최는 이제야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기운 내라며 김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뒤 편의점의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최를 따라 들어가기 전에 안쓰러운 마음에 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김군의 눈이 나와 마주쳤고 그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오므렸다. 김군은 최의 뒷모습에 대고 손가락 욕을 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김군에게 내가 본 것을 최한테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김군은 고맙다며 나에게 90도 직각 인사를 했다.
  나는 최가 편의점 사장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기보다는 이것이 그의 신분을 감추기 위한 위장인 것인지 아니면 요즘에는 역시 혁명가도 투잡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힘든 것인지 아리송한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최의 뒤를 좇으며 그에게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유를 알려달라고 했다. 전자 혹은 후자의 선택지에서 과연 그가 무엇을 고를지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러나 최는 “그게……사실은 둘 다 해당됩니다. 요즘은 혁명만 전문으로 하는 직업 혁명가는 아주 드물거든요. 대부분은 겸업을 하고 있지요. 혁명을 하려고 해도 돈은 필요한 법입니다.”
  “과연 그렇군요.”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최가 신났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편의점을 경영하는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아요. 때로는 혁명을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 같기도 합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약아빠져서 걔네들을 관리하려면 적잖이 힘이 들어서요. 심지어 하루 매출액이 천 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어요. CCTV 검사를 매일 꼼꼼히 하든지 해야지 원. 요즘 20대들이란 그저 자기들 생각만 합니다. 사회적인 의식이 없어요. 도대체 학교에서는 뭘 가르치는지…….”라고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쪽문 안쪽 창고에는 각종 음료수와 컵라면 박스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최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더니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창고의 북쪽 벽면에 어른이 허리를 굽히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나타났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비록 풍성한 턱수염과 베레모와 파이프는 없지만 최는 혁명가가 틀림없다고, 그렇지 않으면 누가 서울역 내 편의점 창고 안에, 비록 구식이긴 하지만 이런 비밀장치를 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최를 따라 들어간 그곳은 서울역에 오기 전까지 내가 살던 24평형 아파트만한 크기의 공간이었다. 입구의 정면 벽면에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 만세!>라는 플랜카드가 붙어있고, 탁자에는 서울역사와 열차의 설계도면이 펼쳐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인가를 조립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오자 동작을 멈추었다.
  “아아, 동지들 긴장할 필요 없소. 이번 우리 계획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을 지금 이렇게 모셔왔으니 말이오.”
  최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오! 드디어 그 분을 찾았군요.”, “우리의 앞날에 광영이 비추는 것 같습니다.” 등등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감탄사를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그러니까 나는 그 순간 내가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혹시 이 세계는 가상현실이고 나는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기계에 대항해 싸우는 구원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K의 보증을 잘못 서준 일부터 시작해서 노숙자가 된  모든 것이 다 컴퓨터가 만들어낸 허구처럼 느껴졌다. 정말 이것이 현실이라면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한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지트에 있던 그들은 ‘조작자’가 오셨으니 더욱 빨리 ‘마르코스’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면서 또 무엇인가를 뚝딱뚝딱 거렸다. 어리둥절한 나는 그저 멍하게 서있었다. 최는 나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내가 앉자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확히 28분 만에 최가 이야기를 끝냈고, 나는 궁금한 점 몇 가지를 그에게 물었다. 대화를 마치고 나는 다시 최의 안내를 받아, 왔던 길을 천천히 되짚어 나갔다.
  그는 편의점을 나가기 전 나에게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삼각김밥을 6개 싸주면서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거기 계신 동지들과 같이 나눠드십시오.”
  팔지 못할 물건이니 이왕이면 조금 더 풍족하게 줘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야속함이 들기도 했지만 최도 계획을 실행하는데 이런저런 명목으로 자금이 많이 들 테니 오죽하면 저렇겠나하고 나는 이해했다. 그러니까 혁명을 하는 데도 돈은 필요한 법이다. 그 냉혹한 법칙을 상기하며 나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물건을 정리하고 있던 김군이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했고 나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강씨, 송씨, 이씨, 정씨, 남씨에게 삼각김밥을 하나씩 건네주면서 각자의 임무를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삼각김밥이 종류별로 다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침내 디데이였다. 계획 실행 전까지 앞으로 1분이 남은 상황에서 나는 조금 떨고 있었다. 그날 아지트에서 최와 나눴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당신이 초 단위의 시간까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특별한 능력입니다. 그것은 노력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시간이 정확하게 지켜지는 곳에서 시간이 필요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만 나타나지요. 그러니까 노숙자 여러분 말입니다. 이것은 물론 아주 소수한테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아, 그런데 당신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제가 어떻게 알았냐는 게 궁금하시다구요? 그건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3일 전 즉 여러분들에게 저를 소개하기 전에, 저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기차 운행시간을 보면서 슬며시 웃고 있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바로 저는 확신했지요. 당신이야말로 우리가 찾고 있던 바로 그 조작자라고 말입니다.” 그는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마르코스라는 이름의 비밀 장치를 제작중입니다. 당신을 발견하고 저는 동지들에게 연락해 서둘러 마르코스를 만들어달라고 얘기했지요. 당신을 만난 건 우리로서는 대단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작자가 없으면 마르코스가 있어도 사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동지들도 그래서 실패했었지요. 신칸센의 실패를 거울삼아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최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내가 조작자고 뭐고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쩔 거냐고 묻자 그는,
  “당신은 혹시 아직도 이 사회에 미련이 남아 있으십니까?”
라고 반문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강씨와 남씨는 내가 전달한 최의 제안을 별로 탐탁치 여기지 않았다. 혁명을 하면 도대체 뭐가 바뀌고, 우리한테 돌아오는 게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그들의 질문에 나는 또다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산다고 해서 지금보다 특별히 나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었다. 어차피 무엇인가를 해서 실패한다고 해도 우리가 지금보다 더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막장은 광산과 드라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이 삶의 제반 조건들이야말로 출구 없는 막장이나 다름없었다. 혁명이라는 말은 그래서 매력적으로 들렸다.
  마침내 시간이 됐다. 나는 송씨, 이씨, 정씨와 함께 인파에 휩쓸려 부산행 KTX 열차를 타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평소와는 달리 깔끔한 옷차림이었기에 누구도 우리를 주목하지 않았다. 내가 눈짓을 하자 이씨가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송씨와 정씨가 옆에서 호들갑을 떨었고 승객들은 “어머, 어떡해!”하면서 이씨 주위로 몰려들었다. 승무원들이 놀라 앞 쪽에서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그 틈에 나는 재빠르게 KTX의 맨 앞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전부 이씨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는 수월하게 손톱만한 크기의 마르코스를 KTX의 머리 하단부에 장착했다. 송씨가 내가 마르코스의 부착을 마치고 다시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이씨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이씨는 “아이고, 요즘 세상이 하 수상해서 그런지 이놈의 간질이 또 지랄이네 그려.”라고 중얼거리고는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서비스 정신이 몸에 밴 친절한 승무원들은 119에 연락을 했으니 구급대가 도착하면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 얘기 했지만 원래 치통과 치질밖에 앓고 있는 질환이 없었던 이씨는 그들의 배려를 정중히 거절했다.
  우리의 소동에도 불구하고 KTX는 정시에 출발했다. 이씨 일행과 작별한 나는 맨 앞 칸에 탑승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역시나 역방향이었다. 거꾸로 KTX를 타면 멀미가 난다고 최에게 얘기했지만 그는 역방향이 기관실과 더 붙어 있기 때문에 마르코스를 조정하기 편할 것이라면서 역방향 좌석을 권했다. 그러나 나는 최가 역방향 티켓 값이 순방향보다 20% 쌌기 때문에 그 표를 준 것임을 알고 있었다. 혁명을 하려면 할인을 받아 최대한 돈을 아껴야 한다는 최의 지론은 혁명의 순간까지도 꺾이지 않았다. 
  KTX는 광명역을 지나 천안?아산역으로 향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속도를 높였다. 역시나 역방향에 타서인지 좀 어지러웠다. 천장에 달린 TV 화면에는 KTX의 현재속도가 표시되고 있었다. 시속 200Km를 넘어 300Km에 다다를 때쯤 나는 재킷 오른쪽 주머니에 감춰 놓은 무선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KTX는 시속 300Km를 넘지 못하고 서서히 감속하기 시작했다. 마르코스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다. 마르코스의 영향으로 KTX는 시속 100Km 이하로 속도가 줄어들더니 급기야는 걷는 것보다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TV 화면에는 ‘시속 1Km’라고 선명히 찍혀 있었다. 기관사는 황급히 안내 방송을 했다.
  “현재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열차가 서행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으니 승객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안내 방송이 끝난 후 1분 12초 뒤에 나는 마르코스의 전원을 껐다. 마르코스가 KTX의 운행 시스템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시간이 정확히 3분 33초였기 때문이다. 그 이상 시간을 초과하면 마르코스는 고장이 나는 결함을 갖고 있었다. 300Km라는 엄청난 속도를 억제하는데 그 정도의 핸디캡은 당연한 것이라고 최는 말했다. 그러니까 조작자란 작동부터 실행까지 3분 33초가 되기 전에 마르코스의 전원을 끌 수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초시계만 가지고는 상황에 맞게 임기응변을 발휘해 적절히 그것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의 말대로 나와 같이 특별한 시간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르코스가 꺼지자 KTX는 금세 자신의 속도를 찾았다. 기관사는 다시 안내 방송을 했다.
  “열차 운행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관사는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내가 다시 마르코스를 작동시켰기 때문이다. KTX는 또다시 느려졌다. 3분 33초가 지나기 전에 나는 다시 마르코스를 껐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하자 객실 내의 승객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내가 이러자고 비싼 돈 내고 KTX에 탄 줄 알아?”
  “이런 젠장! 회의 미팅 시간에 늦잖아.”
  “하여간 한국은 이래서 문제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일제시대를 한 번 더 겪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전부 다 이놈의 대통령 때문이다!”
등등의 온갖 푸념과 불만, 한탄, 원망, 저주가 객실 내에 쏟아졌다. 그러나 시속 1Km로 달리고 있는 레일 한복판위에서 승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들은 씩씩거리며 화를 키워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KTX가 아예 정지라도 한다면 체념이라도 했겠지만 1Km의 속도라도 열차가 달린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탄 이동 수단이 오히려 자신들의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것. 그리고 비싼 돈을 지불한 물건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나는 20번 가량 마르코스를 조작했다. 그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분노가 비례하여 상승하는 승객들을 승무원들은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완전히 뿔이 났다. 승객들은 천안?아산역까지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낫겠다고 결정했고, 기관사에게 KTX의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기관사로서는 철길 한 복판에 내려달라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속 1Km라고는 하나 엄연히 운행 중인 열차의 문을 연다는 것은 그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관사가 승객들의 뜻을 거부하자 그들은 기관사실로 몰려갔다. 당황한 기관사가 문을 잠그자 사람들은 온갖 도구를 사용해 문을 때려 부숴 버렸다.   
  KTX 정비팀이 오기 전에, ‘열차 테러’가 발생했다는 기관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특공대가 먼저 KTX 주위를 신속하게 포위했다. 방송사 헬기들은 공중을 어지럽게 맴돌며 그 장면을 전국에 뉴스특보로 생중계하고 있었다. 확성기에서는 테러범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메시지가 계속 흘러나왔다. 어느새 승객들은 테러범으로 불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그들 중 누군가가 울먹이며 말했다.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우리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이라고…….”
  그 모습을 보자 나는 내가 서울역에 처음 온 날이 떠올랐다. 그러자 K와 최의 웃는 얼굴이 한꺼번에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남자는 한 방이야. 새로운 세상을 만듭시다. 혁명을 하는 데도 돈은 필요한 법입니다. 제발 돈 좀 빌려줘!” 그들은 내 머리 안에서 누가 누구 목소리인지 모르게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귀가 윙윙 울리면서 아찔한 현기증이 났다. 두 사람은 놀랍도록 똑같이 닮아있었고, 나는 K와 최를 구분할 수 없었다.
  그 사이 경찰특공대가 발 빠르게 진압작전을 개시했다. 검정 복면을 한 채 총을 들고 우리를 향해 약진해오는 그들이 오히려 테러범처럼 무시무시해보였다. KTX 안은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바로 그 때 KTX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기관실의 시동버튼을 누른 모양이었다. 열차가 우사인 볼트처럼 폭발적으로 내달렸고, 순식간에 경찰특공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마르코스를 조정하는 무선리모컨을 발로 밟아 부숴버리고 자리에 앉아 휙휙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역방향 좌석에서 거꾸로 지나가는 것들을 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멀미가 나지 않았다. 나뭇잎은 거의 다 지고, 계절은 가을과 겨울의 문턱에 걸쳐있었다. 그래도 남쪽은 서울보다 따뜻할 것 같았다. 실로 오래간만에 나는 서울을 벗어나고 있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대학 입학 때 ‘작가’라는 꿈을 품고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졸업 전 등단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시ㆍ소설ㆍ희곡ㆍ평론, 분야는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 모두를 좋아했다. 본격적으로 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국어국문학과로의 진학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읽었고, 썼다. 
나는 이번 수상의 영광을 전적으로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돌리고 싶다. 이 울타리 안에는 존경하는 선생님들과 항상 내가 고마워하는 선배ㆍ동기ㆍ후배들이 있다. 그들을 빼놓고서는 4년 동안의 대학생활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다. 할 수만 있다면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제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학창 시절에 등단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일말의 가능성을 엿본 것만으로도 나는 적지 않은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감히 많은 사람들이 보는 이 지면에서 앞으로 무엇이든 열심히, 또한 잘 쓰겠다고 다짐한다. 꿈은 자꾸 말하면서 열망해야 그것이 설령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도 이루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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