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작 - 황건수(문정03)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짙은 바다 내음이 코를 들쑤시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것은 아련한 동경과 상쾌함을 실어 날랐을 테지만, 지금은 처절한 투지와 방향을 잃은 증오가 그에 뒤지지 않을 피비린내와 함께 바닷물에 뒤섞여 선체를 휘감아 돌며 광기를 퍼뜨렸다. 광기보다 더 빠른 전염병은 없다. 작살을 쥐어든 선원들이 광포한 파도에 몸을 던졌다. 바다의 외침은 선장의 비통한 절규를 씹어 삼켜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마지막 선원이 바다로 끌려들어 갔을 때, 선장은 배의 이물로 기어올라갔다. 완전히 두 동강이 난 선체가 바다의 부름에 거역하지 못하고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순간, 선장은 저 바다보다 증오스럽지만 동시에 그 어떤 것보다 갈구하는 생물의 까마득하게 커다란 두 눈을 직시했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평온하게 변해 가는 바다에서, 증오와 소망의 집결체가 되었던 고고한 생명은 유유히 수면으로 부상했다. 그리고는 물보라를 피워 올렸다. 무지개가 비에 씻긴 청명한 하늘을 장식했다. 무지개는 지상과 천상을 잇는 다리, 인세(人世)에 그보다 더 숭고한 진혼식(鎭魂式)은 없으리라. 만족스러운 듯이 몸을 돌린 고래는 물을 지느러미로 한번 세차게 후려갈겨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띄워 올렸다. 고래는 하늘을 부유했다. 고래가 날고 있다. 바다에 덧씌워진 거대한 그림자가 구름처럼 흐른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꿈이다.

 

 나를 꿈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은 한 무리의 햇빛이었다. 좁다란 창문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그 고약한 빛무리들은 눈언저리를 쿡쿡 찔러대며 때 이른 기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자 새하얀 세상이 날 반겼다. 천국이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나는 눈을 손으로 가리고 머리를 들었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담겼다. 책상과 책장 사이에 끼어 용케 자리를 잡은 내 이부자리라던가, 또는 어느새 발목에 둘둘 감겨 있는 노트북의 전원 코드와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기지개를 펴고 조심스럽게 발목의 코드를 푼 후에 이부자리를 책장 위로 우겨 넣었다.

 나는 몽롱한 정신상태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서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아침 밥상을 받았다. 물론 나는 잠이 덜 깼다는 이유로 밥상에 놓인 반찬보다도 많을지 모를 푸짐한 욕설을 전채(前菜)로 얻어먹어야 했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자.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

 밥상을 놓기 위해 방바닥을 대충 발로 훑어서 앉을 만한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노트북은 아직도 전원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전기세 꽤나 나왔겠군. 우선은 밥을 먹고 생각할 문제다. 발로 옮기다 보니 터치 패드를 건드린 모양이다. 노트북의 액정 디스플레이에는 글로 가득 찬 워드 프로세서가 떠올랐다. 바로 어젯밤까지 작성하던 것이었다. 마감도 멀고 급한 일은 없으니까. 발가락에 의해 노트북이 닫혔다.
 밥을 한 숟가락 막 떠서 입에 집어넣으려니까, 공교롭게도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 올 일이 없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내 손은 무의식적으로 전화기 쪽으로 뻗어나간다.

 “여보세요?”
 “여어, 상한이냐? 나 용환이다. 웬일로 네가 아침에 전화를 제꺽 받는 거냐?”

 나는 약간의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반가웠다. 용환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는데, 나에 못지 않을 정도로 몽상가 녀석이었지만 노는 것과 공부 어디에도 빠지지 않았다. 지금은 어엿한 만화가가 되어 월간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는 내 글의 유일한 삽화가이기도 했기에 나는 그에게 언제나 미안함과 동시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종종 마감이 코앞에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내 삽화를 그려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를 돕는 어시스턴스들과 그의 담당기자는 죽을 맛이었겠지만.

 나는 언제나 이야기가 상상력과 표현의 전부이며 그 외의 요소는 꿈을 깨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기본적으로 삽화도 거부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쓰는 것은 아이들이 보는 동화였고, 출판사들은 그 점을 나에게 매번 주지시키곤 했다. 물론 그들이 그런 시건방진 요구에도 날 그대로 내치지 않은 것은 인간적인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닐 터였다. 내 글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정도의 부수는 만족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인세를 많이 받아 당당히 어깨를 펴고 사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난 있으면 나쁘지 않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것은 매우 불쾌했다. 그 불쾌함은 결국 집필 의욕에 악영향을 끼쳤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차라리 그들이 외면해 버릴 정도로 대충 써 보내기 시작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부수는 늘고 상황의 미덕에 충실한 그들은 나에게 달라붙었다. 나는 꼭 자신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에 파묻혀 버린 이야기꾼 지로라모가 된 기분이었다. 머리로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고 되뇌이면서도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익의 교차점에서 나는 내가 쓰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게 되었다. 상상력의 샘이 고갈된 이후, 이미 내가 쓰는 것은 동화가 아니었다. 그나마 용환의 생명력 넘치는 삽화만이 나와 내 글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생동감을 잃고 죽어버린 열악한 상상력의 산물들, 대형 마트의 상품마냥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빤한 단어의 집합 사이에서 조금이나마 내 의도를 찾아내 제대로 살려내는 이는 지금까지는 용환이 유일했다. 고등학교 때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 관계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용환은 날 정확히 기억했고 십년지기처럼 허물없이 대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도 거부할 수 없는 그런 매력을 가진 사내였기에, 나는 이내 그에게 쉽사리 의지하게 되었다.
 이번 일도 용환에게 며칠 전 이미 사정을 다 털어놓은 바였다.

 “또 꿈을 꿨다. 이번엔 포경선이었어. 모비딕을 방불케 했지.”

 용환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 감정은 수화기를 통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아직도 고래냐? 네놈도 참 포기란 걸 모르는 인간이구나. 그냥 거짓말이나 해 주던가. 아님, 그런 건 없다고 사실대로 말해 줘.”
 “고래 자체가 없는 건 아니잖아. 게다가 아이들을 속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어이구, 이 답답한 화상아. 그럼 네가 태평양에서 고래를 끌고 오련?”

 그는 자신의 일도 아니면서 괜히 분개했다. 눈을 부라리는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비춰지는 듯 싶었다. 나는 피식거렸다.

 “요령을 알아내야지. 하다 못해 속이는 일이 생기더라도, 난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테다. 내가 쓴 글이니 내가 책임을 져야만 해.”
 “하. 책임감 한번 투철하시구만.”

 용환은 비아냥거렸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투철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취미의 연장으로 인식했다. 그는 예술을 경멸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아직도 이야기꾼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잊지 않고 있었고, 그렇기에 자신의 창작물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쓴 글들은 내 수족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지나친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내 팔다리가 한 일에선 변명도 도망침도 쓸모 없는 짓이다. 어디까지나 그런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사실이었지, 용환의 말처럼 내가 순수해서는 절대 아니다. 쓸데없는 책임감의 과잉이었다. 물론 나는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가며 자학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좋지.”

 나는 그쯤에서 논쟁을 일단락 지었다. 용환은 더 이상 따지고 들지 않았다. 문득 나는 그가 전화를 건 본래의 목적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마감은 끝낸 거야?”
 “물론. 게다가 휴일이고 하니, 영화관에나 같이 가자고.”
 “어시들은 어쩌고?”
 “지들끼리 알아서 놀겠지. 나같이 나이 먹은 아저씨하고 노는 것 보단 낫지 않겠어?”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어시스턴스와 만화가 사이의 관계를 단지 도제와 장인의 관계처럼 단순하게 매도해 버린다면 그것처럼 몰지각한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 애증의 관계를 어찌 간단히 피력하랴. 온갖 핑계를 들어 어시스턴스들을 몰아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일까. 단순히 나와 영화관에 가기 위해서일까.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거 정말이냐?”
 “믿는 말든 그건 네 자유고. 어쨌건 점심은 먹고 내 작업실 앞으로 한시까지 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어시들 볼 면목이 없을 거다. 널 위해 특별히 시간 쪼개는 거니까, 늦지 말고.”
 “조용환!”
 “그럼, 끊는다. 혹여나 땡전 한푼도 가져오지 않고 그냥 쭐래쭐래 나오면 엉덩이를 걷어차 줄 테니 그리 알아.”

 전화는 그에 성격에 걸맞게 결려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급작스럽게 끊겼다. 무성의한 신호음이 귓가를 때리는 상황에서 잠시 그의 제안에 대해 고찰해 보려던 나는 배가 무척이나 고프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아침밥이 속절없이 식어가고 있다는 상황이 커다란 안타까움으로 다가와 있었다. 수저가 신호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밥상을 물린 후 꿈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편적인 장면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꿈이란 원래 그렇다. 난 예지몽을 꾸는 점장이도 아니고,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도 아니다. 그러나 그 꿈이 포경(捕鯨)과 관련된 것이란 것은 너무나도 확실했다. 자그마치 일주일간이나 나를 괴롭혀 온 꿈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고래와 그를 잡으려는 이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꿈이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내 의식의 간절한 구원 요청에 무의식은 프로이트적 왜곡 방식을 집어던지고 원하는 것을 그대로 꿈에 투영해 버리는 것이 분명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존재하지도 않는 고래를 잡아야 한다. 그것이 내게 급작스럽게 던져진 난감한 화두(話頭)였다.

 이렇게 해결 곤란한 화두를 불쑥 던져 준 이는 세상의 지식을 통달한 고승도, 현인도 아니요, 지금 아는 것보다 앞으로 알아갈 일이 까마득하게 많을 조그만 아이였다. 문제라면 그 아이가 내 조카라는 것이다. 일은 어이없이 터졌다.

 

 일주일 전이었다. 잠시 동생인 예선의 집에 들렸을 때였다. 물론 그녀를 보고픈 생각에서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그 집에 예선과 남편이 없음을 확인하는 전화를 넣어 보고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그녀가 사는 아파트를 찾았다. 조카들은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조카들. 그러니까 예선의 아이들은 둘이다. 모두 귀여운 녀석들이다.
들어서자마자 나는 뭔가 수상쩍은 기운을 느꼈다. 여느 때 같으면 예선의 아들인 성경이 장난스런 인사를 내놓았을 텐데, 녀석은 한숨을 폭폭 쉬어대며 건성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퍼뜩 들었다.

 “너희 어머니가 내가 드나든다는 걸 알았니?”
 “아뇨. 혜경이 때문이에요. 걔가 요즘 난리도 아니에요. 피곤해 죽겠어요.”

 성경이 녀석은 지금 중학생인데, 어쩐 일인지 만화가를 지망하고 있었다. 나는 용환의 구질구질한 생활을 떠올리며 언제나 그만 두라고 충고해주곤 했지만, 녀석에게는 그것이 더욱 자극이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의 생활을 모든 만화가에게로 확대할 수는 없으니 내 충고도 기반이 부족하기는 하다. 이제 다음 해면 초등학교를 들어갈 나이가 될 혜경은 수줍음을 잘 타는 조그만 아이다. 책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요즘 아이들로선 보기 힘든 일이다. 그만 해도 대견한 일이건만, 혜경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내가 쓴 동화였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내가 온 목적은 사실 혜경에게 있었다. 그 아이에게 빌려주었던 내 책을 받으러 왔던 것이다. 그냥 빌려 줄 수는 없었다. 예선의 눈에 뜨이면 남아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녀의 손아귀에 찢길 책 따위는 쓴 적이 없고, 앞으로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가끔씩 찾아와 아이들에게 몰래 내 책을 빌려주곤 했다. 그러면 혜경은 언제나 뛸 듯이 기뻐했고, 성경은 내용보다 용환이 그린 삽화에 관심이 더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책을 지키는 일에는 동생보다 충실했다.

 성경에게 질문을 몇 개 더 던지려는데 별안간 혜경이 잠옷을 끌고 방을 박차고 나왔다. 두 눈이 샛별처럼 반짝였다. 동화를 쓴답시고 아이들을 되도록 자주 접했던 나는 이런 상황이 곧 다음에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짐작이 갔다. 황당한 요구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잡아 줘.”

 아니나 다를까, 혜경이 밑도 끝도 없이 꺼낸 첫마디였다. 성경이 짓는 한숨이 귓가에 다시 맴돌았다. 걔가 요즘 난리도 아니에요.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난데없는 말에 잠시 당혹했다.

 “뭐?”
 “이것두 상한 삼촌 꺼, 맞지?”

 아이가 내민 책은 빛 바랜 동화집이었다. 빛이 바랬다고는 하지만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이라 오래 되어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그다지 오래 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혜경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 책이 맞았다. 비록 본명이 아닌 필명을 썼지만, 겉면에 용환의 삽화가 있었으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제목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고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책의 내용은 나 역시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것은 5년 전에 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훑어보던 나는 내가 글을 쓸 때 중대한 실수를 한 가지 범했음을 알게 되었다.

 “진짜 있는 거지? 잡아줄 수 있어?”

 나는 요즘 아이들이 영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떳떳하게 내놓을 반론의 증거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 살아있는 증거는 나에게서 진땀을 잔뜩 뽑아내고 있었다. 예선은 도대체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시킨 것인가? 예선의 남편은 지극히 평범하고 사무적인 지방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예선은 미대를 나왔다. 나는 주저없이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져 버린 성경과 동화책의 고래를 잡아달라고 요구하는 혜경을 키운 그녀의 능력에 정말이지 탄복해 버리고 말았다.

 “정말, 진짜지? 진짜지? 오빤 자꾸 아니라는데, 삼촌은 거짓말 안 하잖아?”

 당장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첫 표지부터 ‘이 이야기는 제가 직접 겪었던 일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야기는 때때로 꾸며낸 것임을 다른 사람들이 뻔히 아는 상황에서도 재미를 주기 위해 마치 진실처럼 포장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생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처럼, 혹은 톨킨의 레드 북처럼 말이다. 다만 나는 그것이 5년 후에 와서야 문제로 두드러질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언제나 긴장을 돋우는 일이다. 나는 말을 돌리려고 애썼다.

“이건 어디서 났니?”
“엄마가, 저어번에 시장에서 사왔어.”

 예선과 근 18년간을 같이 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남매로서의 교감이 엉뚱한 곳에서 발현된 모양이었다.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녀와는 어떤 직접적 관계도 갖고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죽음의 책임뿐 아니라 상상력 고갈의 원인마저 그녀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무척이나 이기적인 태도라는 사실은 분명히 인지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견딜 자신이 없다. 내가 갖은 핑계와 매몰찬 태도로 그녀를 피하는 것은, 진실을 직시할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나에 대한 비뚤어진 선입견을 가지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내가 만들어 낸 상황이었으니까.

“그게 뭐? 나, 고래를 잡아 줘.”

 지독히도 곤란한 상황. 그 역시 내가 초래한 상황이었다. 달아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고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는 곤란함에서 역설적으로 흥미가 동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말라버린 상상력의 샘을 다시 솟아나게 해 줄지도 모르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낙천성은 나를 이루는 중요한 천성중의 하나였다. 나는 동화책을 겨드랑이에 끼었다.

“좋아. 이 삼촌이 못하는 게 뭐가 있겠니.”

 다음날부터 고래는 내 꿈속에 고정출연을 선언했다.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용환과 같이 영화관을 나오며 떠올린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내가 뭘 보았지? 그 짓궂은 녀석은 영화를 하필 어린이용 영화를 선택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일까, 아이들이 자유로이 상상해야 할 꿈들 대신에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비추어 스크린에 떠오르게 된 것은. 지금은 나 역시 아이들의 상상력을 고갈시켜 버리는 데 일조를 하는 입장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임마. 내가 왜 영화를 보자고 했는지 모르겠냐?”
“…….”
“너, 저 영화 보고 같잖다고 생각했지?”
“……아아.”
“정신 좀 차려. 근 몇 년 가까이, 네놈 꼴이 꼭 저 영화 짝이다. 이 얼간이 같은 녀석아. 애들의 순진함을 현실에서 눈을 돌릴 핑계로 삼지 마. 고래니 뭐니도 그냥 핑계 아냐?”

 용환은 한숨을 내쉬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다보았다.

 “너, 이번 마감 지났지? 편집장이 나한테까지 전화해서 지랄하던데. 이딴식으로 나오면 다음부터 일 때려치랜다. 잘 생각해.”

 고개를 저으며 항변하려 해도, 대꾸할 말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 역시 스스로 자초한 일. 하지만 고래는……. 용환은 그 후로도 몇마디 충고를 했지만, 나는 고래 생각을 머리에 넣고 그의 충고를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내 태도를 눈치챈 용환은 말을 멈추고,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시내에서 책을 좀 사와 달라는 것이었다. 일상적인 대화. 드디어 포기한 모양이었다. 그는 바쁜 볼일이 있다면서 사람들의 인파 속에 묻혔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속의 뒤틀림에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시내로 들어선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서점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 기계적인 행동은 순전히 아까부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꾸깃거리던 종이 때문이었다. 내 머릿속은 아직도 온통 고래 생각뿐이었다. 서점에서 용환이 부탁한 책과 잡지를 찾아보려 했지만 머릿속을 헤집는 고래 생각에 도저히 제대로 책을 고를 수가 없었다. 결국 서점 직원에게 메모지를 건네주고 나는 서점을 휘 둘러보았다. 습관처럼 신간 코너를 훑고 있을 때였다. 겉표지만 갈아입는 책들이 ‘베스트 셀러’라는 훈장을 자랑처럼 달고 다니고 있었는데 유독 고풍스러운 표지를 한, 표지에 제목 없는 책이 눈에 띄었다. 웬걸, ‘고전세계명작’의 재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서가 장식 외에 다른 용도로 얼마나 사용될 수 있을 지 궁금한 책이다. 나는 책을 펼쳤다.

 유레카!
 나는 하마타면 서점에서 환호를 내지를 뻔했다. 일주일간의 고뇌가 환희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방법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던가. 나는 이제껏 관심도 없던 위대한 문필가 헤밍웨이에게 새삼 존경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노인과 바다’를 다시 제자리에 꽂아 두고 홀가분하게 서점을 나서려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 팔을 붙드는 서점 직원에게 이끌려 책값을 계산해야만 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그 길로 용환의 작업실로 바로 쳐들어가서는 녀석의 수많은 잡동사니 가운데서 쓸만한 물건을 찾아냈다. 용환은 펄쩍 뛰었지만 내 귀에는 이미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예 전화까지 해결하고 용환의 작업실을 나섰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비록 편법이지만, 이만하면 혜경도 납득할 만한 증거가 생긴 셈이다.
성경이 문을 열자마자 나는 인사도 제치고 커다란 이빨을 내밀었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혜경의 표정에도 당혹감이 스쳤다.

“이게 뭐야?”
“잡은 고래야.”
“거짓말!”
“진짜야. 커다란 녀석을 잡았는데, 배로 끌고 오다 보니 상어들이 다 뜯어먹지 뭐냐. 결국 요 이빨 하나만 건졌단다. 정말 아깝다. 혜경이한테 꼭 보여 주려고 했는데 말이다.”

 아이가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수그렸다. 아무래도 그 말을 믿는 모양이어서, 나는 안도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혜경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가만히 있던 아이가 별안간 와악-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내 다리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렇게까지 나오리라고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대처도 취하지 못했다. 그저 울음을 그치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성경은 고개를 저으며 물러섰다.

“정말, 정말로 잡은 거야?”
“그, 그렇다니까.”

 혜경의 울음 섞인 물음에 나는 더듬거렸다. 아이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글썽거렸다.

“왜 그랬어? 왜!”

 그리고 한차례 울음이 다시 터졌다. 나는 아직도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들린 아이의 외침에 나는 벼락을 맞은 듯한 전율을 느꼈다.

“왜 죽였어! 난 그냥 한 번만 직접 보고 싶었는데…….”

 아, 이런 어리석음이여! 잔인함이여! 한탄이 새어 나왔다. 헤밍웨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적어도 잡지 않은 고기를 잡아왔다고 내어놓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난 아이를 상대로 싸구려 사기를 쳤다. 게다가 고래를 어떤 상태로 잡아오는가에 대해서도 전혀 자문한 적이 없었다. 그저 스스로 내던졌던 아련한 꿈에 미련을 두고 오로지 내 자신의 정신적 만족을 위해 고래를 잡겠다고 설쳐댔던 것이다.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도 까맣게 모른 채. 잡는다는 행위가 언제부터 사냥해 죽인다는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을까.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이를 껴안아 토닥거리며 미안하다고, 그저 지금은 농담이었을 뿐이라고 조그만 소리로 귀에 속삭여 주는 일이 전부였다. 어쩌면 들리지도 않았을지 모를 속삭임은 나의 내면을 향한 질타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허탈감에 싸여 돌아가는 내내 술에라도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책상에 머리를 처박으며 어리석음에 대하여 적당한 체벌을 수행한 연후로부터 긴 시간의 고심 끝에, 나는 이제껏 한번도 쓴 적이 없던 속편을 쓰려고 결심하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의 전원을 올렸다. 이야기는 결말이 독자들의 손에 쥐어졌을 때 가장 밝게 빛난다. 누가 꾸며주지 않아도 스스로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수많은 가지를 쳐서 뻗어 나가는 끝없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아이들의 이야기라면 말할 바가 없다. 그 단순한 진리를 지금까지는 단지 머리로만 실천해왔던 것이다. 그저 속편을 쓰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지금 되새기자면, 그처럼 허울만 좋은 핑계는 없었다.

 꿈속의 고래를 잡아서 현실로 꺼내 올 필요는 없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요, 무지의 소치다. 혜경이 나에게 확실히 가르쳐 주었다. 그와 같은 실수는 다시는 없으리라. 대신에 나는 아주 간단하고 훌륭한 방법을 찾아냈다. 현실에서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다면, 꿈으로 직접 가면 되지 않겠는가? 많은 동화에서 제시되었던, 극히 널리 알려진 방법이었다. 나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꿈을 넘나드는 안내자 말이다. 귀양간 서포(西浦)가 자신의 어머니께 했던 효행이다. 논리를 사랑하는 캐롤이 작은 소녀에게 들려준 비논리의 환상이다. 나라고 왜 못 할까? 키보드로 손을 옮기는 순간, 나는 나를 옭아매던 합리와 이해의 사슬이 끊어졌음을 알았다.

 머릿속에 가두어 두었던 이성의 보루가 터지고 온갖 공상이 눈앞을 메웠다. 별천지가 펼쳐져 화려한 수사(修辭)의 폭죽이 마음을 흥분시킨다. 작은 긴장과 흥분에도 심장이 뛴다.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눈을 뜬 채로 꿈꾸는 법을 다시 터득했다. 참으로 멋진 환상이다! 그러나 꿈만 있다면 그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달뜬 헛소리와 망상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나는 내 눈에 들어왔던 현실의 잔혹한 면과 아름다운 면의 존재가치를 모두 인정하고 수용했다. 보듬어진 현실은 환상과 합치되어 이야기를 뽑아 올리고 있었다. 말라버렸던 나의 샘에선, 다듬어지지 않은 신선한 꿈들이 퐁퐁 솟아오른다.

 나는 바야흐로 꿈에 동화된다.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고래’가 바로 코앞에서 숨을 내뿜고, 간헐천에 못지 않은 장관에 내 무등을 탄 혜경은 감탄사를 높이 올렸다. 나는 코울리지처럼 고급스럽게 환상과 상상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환상은 상상을 낳으며 동시에 상상의 부산물이자 그 일부이기도 했다. 나는 황홀감에 젖어들었다. 노트북의 전원이 내려지고 낯익은 어둠이 방안을 감싸안았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한편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막힌 일이다. 혜경을 나의 모모로 친다면, 고래는 이를테면 잃어버렸던 나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마른 샘에서 다시 물을 뽑아 올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과연 가능한 일인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오늘만은 누구에게나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좁은 이부자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과연 오늘밤의 꿈에는 과연 무엇이 등장할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젯밤과는 정 반대로 소망했다.
 고래가 다시 제 꿈속에서 뛰놀게 해 주세요. 어떤 모습이든 좋습니다. 그 고래가 다른 아이들의 꿈 속에서도 뛰놀 수 있도록, 내 가슴속 마른 샘을 물로 채워 주세요―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소망 속에서 꿈을 향해 돛을 올렸다. 그 항해는 고래가 잡힐 때까지 계속될 것이지만, 고래는 영원히 잡히지 않을 것이다. 고로 항해는 계속될 것이다. 바다 내음, 상쾌한 내음이 주위를 휘돌았다. 나는 내 샘의 향이기도 한 그 내음을 아주 깊이, 깊이 들이마셨다. 그것만은 꿈에서 깨어서도 잊지 않고 간직하려는 듯이.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동화책을 참 좋아했습니다. 대부분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그 이야기가 진짜처럼 느껴졌거든요. 물론 아직까지 아이들을 위한 책은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걸 실제 있던 이야기처럼 생동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아이들이 똑똑해지고 빨리 배우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이 어느 정도는 꿈꿀 수 있도록 최소한의 유예 기간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에 언젠가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는 이런저런 변명을 하며 결국 그럴 수 없었던 저 대신, 소설속의 주인공에게 정말 아이가 원하는 책을 써 줄 수 있도록 한, 그런 이야기입니다. 또한, 아직까지 아이들을 위해 고민해가며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개인적인 욕심만 앞선 제 글이 수상했다는 것은 부끄럽지만, 제 글을 선택해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