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환(국문) 교수, 황호덕(국문)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시대고(時代苦)와 형식

예년보다 더 많은 소설 작품이 투고되었다. 서술자의 설정이나 주제, 소재도 상당히 다양했다. ‘풍작(豊作)’이라 할 만한 수였으며, 질적인 수준도 높았다. 고민의 심도도 깊었다. 우리 대학생들이 노숙자, 88만원 세대, ‘워킹 푸어’, 자연에 대한 착취 등의 ‘현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 또 이러한 문제들이 스스로의 일상 속에 잠재하는 형식임을 통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자들은 투고작들을 읽으며 절망과 희망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 학부생들의 글을 읽었지만, 역시 소설(문학)은 성찰의 양식이며, ‘비판’의 양식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심사자들이 최종적으로 논의한 작품은 <그리하여 신은 죽었다>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이름 없는 오후>, <꿈 속 고래를 잡는 방법> 등과 같은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신은 죽었다>는 문장 수련과 사건들의 결구력, 이야기를 조직하는 힘, 알레고리 구성의 개연성에서 단연 주목되었지만, 극히 관념적인 데다 소설을 추동하는 알레고리의 핵심인 ‘신’의 존재가 '시대의 질환'과 맺는 관계가 매우 상식적인 수준에서 그려지고 있어 그대로 상찬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많았다. 따라서 이 작품에 주는 상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주는 것임을 글쓴이가 명심해 주었으면 좋겠다.  

뒤의 세 작품의 경우에는 ‘문학충동’과 산문정신에 대해 말해야 될 듯하다. 에세이나 시, 혹은 콩트를 쓴다는 것과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한두 개의 이미지나 메시지, 재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단편소설만 해도 그것은 대략 3,000~5,000개의 단어를 선택하고 사용해서 수백 개의 문장들을 만들어야 하고, 또 그것들을 150~400개의 문단들로 배열해야 한다. 그리하여 의미를 ‘축조하고’ 이야기를 꾸며야 한다. 이른바 플롯 만들기plotting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낯익은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메시지를 가진 새로운 이야기여야 한다. 그러니, 이 작업은 보통의 집중력과 ‘합리정신’으로는 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와 <이름 없는 오후>가 각각 미덕을 갖고 있지만 이런 점에서 아쉬웠다. 전자는 날카로운 주제의식으로 현실을 환기하고, 매력 있는 ‘알레고리’로 해결까지를 제시하려 했으나, 후반부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만드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이름 없는 오후>는 ‘흔한 이름’을 통해 ‘삶의 비특이성’에 관해 성찰한 글이다. 문장력이 좋고 초점인물-화자의 설정도 흥미롭지만, 들을만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이러한 이유로 두 작품을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꿈 속 고래를 잡는 방법>, <광기의 소멸>의 경우도 각각 ‘쓰는 사람’의 자의식, 장르 문학에 대한 이해가 엿보여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점칠 수는 있었지만, 아름답게 쓰려는 충동과 사건의 작위성이 문제의식을 대리보충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수련이 돋보이는 ‘동화’인 <꿈 속 고래를 잡는 방법>을 가작으로 선정했다. 

실업이나 비정규의 삶과 같은 뒤틀린 세계를 뒤틀린 냉소를 통해 '뒤틀린 채'로 표현하는 방식이나  무기력과 저주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를 보며 여러 가지 착잡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근대화가 ‘희망’을 의미했던 1988년 전후에 태어나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현실에 직면해 있는 여러 재능들이 보여주는 비판과 자책, 분노와 무기력의 순환고리들은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환부이자 질환일 터이다. 그러나 바로 그 장소에서 희망을 점화하는 방법이 아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처한 ‘상황’이 그러하다고는 하나, 그럴수록 스스로의 분노와 문제의식을 소설의 구조 속에서 감당하려는 고민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설가의 시선이란 무엇보다 전망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투고된 많은 작품들에는 소설의 형식이나 장르에 대한 실험 의식이 충만해 있었다. 정치적 알레고리, SF나 기업소설, 콜라쥬식 구성을 한 서사해체적 소설까지 방법과 삶에 대한 고민을 일치시키려는 노력들이 점점 폭넓어 지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형식을 넘어서려는 충동이 소설 형식에 대한 오랜 수련을 통해 시대의 문제 그 자체와 합치되지 않을 때, 이는 흔히 소설 미달의 자기 고양감에 머물고 만다. 

성대문학상이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성균인들의 축제로서, 더 자리를 크게 열고 함께 즐기는 장이 되기를 기대하며, 나아가 더 많은 20대들이 자기들 세계의 이야기를 쓰고, 더 다양한 방법으로 동료세대의 인간들과 공유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