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및 시나리오 최우수작 - 박세준(국문03)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작의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폭력, 심판, 본능, 여성억압, 약자와 강자의 문제… 그러다가 모호해졌다. 혼란스러워졌다. 애초에 폭력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악은 무엇일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중에도 내 머릿속에 뚜렷하게 살아있는 유일한 하나는, 나쁜 놈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이 힘을 잃은 시대, 정의가 바보취급 받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악을 징벌해야 할까? 나는 더 큰 ‘절대악’으로 악을 심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쁜놈들이 자기보다 한수 더 높은 악마적 존재 앞에서 허물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내내 즐거웠다. 이 대본은 그렇게 나온 것이다.

■등장인물
김동규(31) : 선박 디자이너 겸 엔지니어로 서울에서 활동했으나 회사가 망하여 고향으로 내려와 사채를 얻어 레스토랑을 차렸다. 그러나 장사가 잘 안되어 유일한 희망인 레스토랑마저 사채업자들한테 잃게 생겼다. 절박한 마음으로 빚을 갚을 길을 찾던 중, 윤군과 일당에게 ‘제안’을 받고  갈등에 빠진다. 평상시는 소심하고 선량해보이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는 힘에 대한 과시욕과 갈망이 숨어 있다.
나민주(대략28) : 동규의 고향에서 살고 있는 외톨이 여성. 불행한 사고로 죽을 뻔 했다가 기사회생하였으나 기억을 전부 잃었다. 퀼트가게에서 일하며 근근이 살고 있다. 동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해훈(30중반) : 동규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 실상은 대규모 인신매매단의 우두머리이다. 해외 유곽에 납치한 여성들을 팔기 위해 배를 띄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규가 선박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고 동규에게 빚을 빌미로 배에 합승할 것을 제안한다.
반정원(41) : 읍포 시 경찰서 형사. 서울시의 강력계 형사였으나, 3년 동안 쫓아다니던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정신병 판정으로 구속되지 않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가 탈출하여 종적을 감추자, 술에 빠져 살다가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임시 좌천되었다. 읍포 시에서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차에, 자신이 쫓았던 연쇄살인범 소행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그를 추적하는데 나선다.
박기홍(26) : 읍포 시 대표 난봉꾼. 술 먹고 행패부리는 것은 예사이고, 읍포 시장인 큰아버지를 믿고 행인들의 돈을 뜯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혼자 사는 민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줄거리
 서울에서 잘 나가던 선박 전문가 동규는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고향으로 내려와 사채를 얻어 레스토랑을 차린다. 그러나 레스토랑 운영이 여의치 않아 사채업자들에 의해 협박당하면서 가게를 잃을 처지에까지 놓인다.
 한 편 동규는 퀼트가게에서 일하는 민주가 기홍에게 겁탈 당하려는 것을 목격하고 기지를 발휘하여 민주를 구해낸다. 서로 어려운 처지에서 외롭게 살고 있던 둘은 급격히 가까워지고, 점차 연인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동규에게 사채를 빌려준 해훈은 대규모 인신매매를 진행 중이다. 그는 각지에서 여성들을 납치하여 배에 실어 해외유곽에 팔려고 한다. 그는 자신을 협박해 한몫 챙기려고 하는 사업 동료였던 조 사장을 살해하고 그의 배를 빼앗는다. 그러나 기계에 결함이 있어 배를 띄우지 못하던 중, 동규가 선박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고 빚을 이용하여 협박해 동규를 배에 태운다.
 배에 타기 전날. 동규는 민주에게 이별을 고한다. 둘은 감정에 이끌려 하룻밤을 같이 보낼 번 한다. 그러다 이건 아니라면서 민주가 레스토랑을 빠져나간다. 어두운 밤거리를 달려가는 민주. 그녀를 따라가는 그림자가 있는데…….
 마지못해서 배에 타는 동규. 동규는 그곳에 납치되어 있는 민주를 보고 경악한다. 민주도 배에 탑승해 있는 동규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흉악범들이 넘치는 배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규는 점차 폭력적으로 변하고… 민주를 구하려던 그가 어느새 배에서 가장 악독한 인물 중 한명이 된다.
 한 편 배에서 인신매매단원들이 하나 둘씩 참혹하게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선장은 배에 저주가 내렸다고 배를 돌려야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부하들도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갇혀 있는 여성들도 점점 미쳐간다. 동규는 탈출할 기회를 엿보고, 민주는 미쳐가는 여성들 사이에서 잊고 있던 예전의 기억들을 하나 둘씩 떠올리게 되는데…….
 읍포 시 경찰서의 형사 반정원은 과거 서울에서 일어난 남성 연쇄살인사건을 담당했던 베테랑 형사이다. 읍포로 좌천되어 하릴없이 시간이나 때우던 중, 읍포시장의 조카인 박기홍 실종사건을 맡게 된다. 박기홍의 실종사건을 조사하던 그는, 근방에서 실종된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대부분 실종된 여성들이 외부인이거나 가족이 없다는 점에 근거하여 대규모 인신매매 가능성을 놓고 수사에 착수한다. 며칠 후 기홍이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다, 살해수법이 자신이 3년 전에 서울에서 맡았던 사건의 용의자와 같은 것을 보고 정원은 충격을 받는다. 경찰서로 돌아와서 인신매대 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여성들의 파일을 뒤지는 정원. 그 파일에서 정원은 놀라운 이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데…….
 광기에 휩싸인 인신매매업자 해훈과 살기 위해서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냉혈한이 된 동규, 그리고 정원을 충격에 빠뜨린 의문의 ‘누군가’가 배안에서 피의 축제를 벌이려고 한다. 배에 저주를 내려 인신매매단원들을 살해한 자는 누구일까? 정원은 누구를 보고 그렇게 놀란 것일까? 민주를 데리고 나가려는 동규의 탈출계획은 성공할 것인가?

 
#1. 프롤로그: 정신병원 수감실(3년 전)
자막: “3년 전 서울.”
침대 위에 시트와 침구류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바닥에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다.
창문이 열려진 채로,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커튼이 나부끼고 있다.
마치 예전부터 비어있는 채로 있었던 것 같은 적막한 병실.
열려있는 병실 문으로 간호원 한 명이 들어온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병실을 둘러본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병실 안쪽으로 들어오는 간호원.
간호원의 시선이 멈춘다. 그녀는 옷장을 바라보고 있다.
한 참을 서 있다가, 떨리는 손으로 옷장 손잡이를 잡는 그녀

간호원
꺄아아아!!

옷장에서부터 병실 바닥으로 핏물이 흘러나온다.
옷장 안에는 남자의사 한 명이 벽에 기대어 앉은 자세로 죽어 있다.
그의 등 뒤로 옷장 벽에 피로 크게 쓴‘엑스(X)’

화면 어두워지며,

타이틀 - 레드클로버


화면 밝아지면서,

#2. 읍포행 선박(낮)
뱃머리 쪽 갑판대에 서 있는 동규. 머리도 부스스하고 면도도 하지 않았다.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이는 동규.
지갑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낸다.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을 보고 있다가, 담뱃불로 사진을 지지는 동규. 담배와 함께 사진을 배 밖으로 던진다. 바람을 타고 두둥실 날아다니다가 수면 위에 떨어지는 사진.
오른 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빼는 동규. 반지를 한 참 바라보다가, 바다로 떨어뜨린다.

#3. 읍포항 주변(낮)
짐을 들고 가고 있는 동규.
멀리 “경축! 읍포 시 관광문화개발 지구 선정!”이라고 써진 현수막이 보인다.
부두 근처에 앉아있던 선원들과 인부들이 동규를 힐끗 쳐다본다. 모두 약이라도 한 듯 눈에 초점이 흐리다.
동규, 그들과 시선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이번에는 매춘집들이 나온다. 아가씨들이 서울에서처럼 적극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다들 나른한 눈빛으로 동규를 쳐다보기만 한다.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동규의 팔을 꽉 붙잡는다. 동규, 놀라서 보면,
못생긴 아가씨 한 명이 싱글벙글 웃으며 동규의 팔을 붙잡고 있다.

추녀
놀다 가시라요.

자기도 모르게 인상 찡그리는 동규.
웃고 있는 여자의 입사이로 삐뚤삐뚤한 치열이 눈에 거슬린다.

추녀
오빠~ 기라지 말고 놀다 가시라요. 내 잘해드릴게.
동규
제가 지금 바빠서...

동규, 추녀를 피해 달려가다가 누군가와 부딪쳐 뒤로 넘어진다.
앞을 보면 기홍이 험악한 인상을 하고 내려다보고 있다.

기홍
이런 씨파…… 이게 뒈질려고!

동규,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기홍을 올려다본다. 동규, 건성으로 사과하고 일어나서 가려고 하는데,
기홍이 동규 앞을 막는다. 동규, 무시하고 지나가려 하지만 기홍이 앞을 막는다.

기홍
어딜 그냥 가는데? 합의금 줘야지? 안 그러노?
동규
뭐라고요?

동규, 항의하려고 하는데, 기홍이 뒤에 손짓을 보낸다. 기홍의 패거리 대여섯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홍
만원만 줘봐?

동규, 주먹을 쥐어보지만,
기홍과 그 뒤에 패거리들의 위세가 너무 당당하다.
동규,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서 기홍에게 준다.

기홍
니 지금 나한테 삥뜯긴 기라!

기홍, 시끄럽게 웃으면서 패거리들에게로 달려간다. “봐 봐! 어른도 삥 뜯을 수 있다니까!”, “병신새끼!”하면서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는 기홍과 패거리들. 동규, 이를 악물어보지만 도리 없다. 그들을 비켜 가는 동규.

기홍(소리)
꼬우면 신고하든가!

#4INS 고향집 전경(밤)
마당이 넓고 나무도 심어진 전통양식의 기와 주택.
#4. 고향집 안방(밤)
동규가 숙부와 마주 앉아 있다.

동규숙부
그니까… 동규 니도 알겠지만은, 내가 여기 눌러 앉았던 것은 그저 니 아버지가 하도 이 집을 아껴부려서 그거 생각 하나로 혼자서 여기 지키고 살았던 기라.
동규
작은 아버지…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요…
동규숙부
안다! 니 사정 빡빡한 거 내도 알지. 왜 모르겠나. 단지 니가 이 집 없애버리고 가게 열면 당장 갈 곳 막막한 내 입장도 쪼매 생각해달란 거지……. 니 사촌 형 요새 어려운 거 니도 들어서 알지?
동규
…….
동규숙부
딱 절반만 떼어주라. 내도 더 이상 말 안 할게.
동규
작은 아버지. 저 실업자예요, 실업자. 이 집이 제 마지막…….
동규숙부
삼분지 일! 됐지?

동규, 한 숨을 내쉰다.

#5INS. 해변가
#5. 가게 터(낮)
동규가 중개사와 텅 빈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창밖으로는 해변이 보인다.

중개사
보시다시피 안은 넓고 상태도 양호합니더. 주방 같은 거 만들어도 좌석은 충분히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될깁니더.
동규
평수에 비해서 가격이 너무 센 거 아닌가요?
중개사
천만에 말씀! 이 읍포시에서 여기만한 목이 없습니더. 읍포가 올해부터 관광개발지구로 선정 된 거 아시죠? 지금은 좀 뜸해도 쪼매 기다리면 여름이랑 겨울에 놀러오는 사람 쏟아집니더. 요기다 사장님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런 바 하나 들어서면, 마침 해변도 바로 앞에 있겠다, 분위기 죽이지 않겠습니까? 경쟁 상대도 없고여.

동규가 망설이는 것 같자,

중개사
싸게 싸게 할 거면 차라리 시내에서 오뎅 장사를 하는 게 낫지 뭐하러 거추장스럽게 바를 엽니까. 안 그렇습니꺼?

동규, 고개를 끄덕인다.

#6INS. <레드클로버> 전경(낮)
#6. <레드클로버>(낮)
20여 평 남짓한 레스토랑 바의 내부. 바 근처에 놓여 있는 그랜드 피아노가 테블 두세 개는 들여놓을 수 있는 공간을 잡아먹고 있다. 벽은 값비싸 보이는 영화 포스터와 판화 액자로 꾸며져 있는데, 조화를 이루는 전체적인 컨셉 없이 중구난방으로 걸려 있다.
시계가 걸려 있는 뒤쪽 벽을 보고 서 있는 동규. 들고 있던 대형 액자를 벽에 건다. 액자 안에는 빨간 스포츠형 보트 그림이 들어있다. 그림 오른 쪽 하단에는 “RED CLOVER - Designed by KIM.D.K”라고 써있고, 한글로 “김동규”라고 사인이 되어 있다.
동규, 액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그러다 지문이 묻자, 물수건을 가져와 닦아낸다.
문 열리는 소리. 동규가 돌아보면, 출입구에 해훈이 서 있다. 해훈은 어항을 들고 있다.

동규
어서 오세요.

자리로 해훈을 안내하는 동규.

해훈
야~ 기가 막히게 꾸며 놓셨습니더. 요새 이렇게 인테리어 하려면 돈 많이 들지 않습니까?
동규
사장님 덕분에…….(사과를 접시에 담아 해훈 앞에 놓는다.)
해훈
고향 사람끼리 돕고 돕는 거지예. 김 사장님 바가 잘 되면 투자한 제 입장에서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겠습니까? 
동규
(어항을 가리키며)그게 뭡니까?

해훈이 들고 온 어항 속에는 주먹만한 거북이 한 마리가 일광욕을 하고 있다.

해훈
거북이지 뭐겠습니까?(어항에서 거북이를 꺼낸다.) 김 사장님 개업식 선물로 무얼 사드릴까 지가 고민을 하다가, 뭐 앞으로 오래 함께 할 파트너로서 공통분모를 하나쯤 가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가 제일 좋아하는 이놈을 가져와 봤습니다. 보이소. (거북이를 동규에게 내민다. 동규, 표정 일그러진다.)참말로 귀엽지 않습니까?(거북이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동규
예… 그런데 거북이는 물속에 두어야…….
해훈
무슨 소리! 보소.

거북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해훈. 테이블 위를 씩씩하게 기어가는 거북이.  해훈, 흐뭇하게 웃으며 거북이를 만진 손으로 사과를 집어 먹는다. 동규, 금방이라도 올라올 것 같은 표정을 애써 수습한다.
해훈, 가게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뒷벽 쪽에서 시선이 멈춘다. 벽 쪽으로 다가가는 해훈. 동규가 따라가보면,
“레드클로버”액자 앞에 서 있는 해훈.

해훈
존나게 간지나네. 이거 사장님 껍니까?
동규
네. 서울에서 회사 다닐 때 제가 설계했던 배입니다.
해훈
배 만드셨어요?
동규
설계 쪽…….
해훈
그래요? 배 만드셨다……. 그럼 배에 대해서 빠싹하시겠네.
동규
그냥 뭐…….
해훈
저희는 차별대우 없습니다. 서울대 법대 수석이든, 가나다라도 헷갈리는 돌대가리든, 돈만 잘 주면 장땡입니다.
동규
(얼어서)예, 그럼요.
해훈
(다시 환한 얼굴로)거북이 잘 키우세요.

#7. 슈퍼(밤)
맥주와 안주거리를 계산대에 올려놓는 동규.
구멍가게 주인이 계산을 하다 말고, 동규를 유심히 쳐다본다.

주인
너 동규 아니가? 너 학교 음악 선생 댁 아들? 맞지?
동규
아… 안녕하세요.
주인
너 고등학교 때 서울 가지 않았나?
동규
예. 얼마 전에 내려왔습니다.
주인
말씨도 완전 서울 사람 다 됐구먼. 너 우리 아들 우표 알지? 우
표. 갸는 지금 태국인가 가서 민박 치면서 살고 있다. 걔도 너만큼은 아니었어도 공부 좀 해서 서울로 학교까지 보냈는데 바람이 들어서 그만… 그나저나 너는 웬일로 내려왔는교?
동규
그게… 아저씨, 죄송한데요. 제가 급한 일이 좀 있어서 나가보겠습니다.

황급히 물건을 들고 나가는 동규.

주인
야! 야! 잔돈 받아가야지?

#8. 골목길(밤)
담벼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규.
희미하게 여자 비명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가는 동규.
골목에 세워진 봉고차 뒤로 가로등 꺼진 부분에서 두 사람이 엉켜있다.
동규, 좀 더 가까이 가보면,
기홍이 여자를 벽에 밀어붙이고 추행에 전념하고 있다.
동규, 비닐 주머니 안에서 소주병을 꺼내든다.
기홍에게로 달려들려다가, 다시 봉고차 뒤로 숨는 동규. 비닐봉투에 구멍 두 개를 뚫고, 얼굴에 뒤집어쓴다. 이번에는 진짜로 기홍에게 달려드는 동규.

동규
(목소리 변조하여)야이, 씨발놈아!

기홍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내려치는 동규.
기홍 머리를 붙잡고 여자에게서 떨어진다. 동규, 다시 기홍에게 매달려 깨진 소주병으로 머리를 마구 때린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는 것 같다. 기홍이 비틀거리자, 재빨리 여자의 손목을 붙잡고 달아나는 동규.

#9. 골목길2(밤)
동규와 여자 헉헉 거리며 달려온다.
걸음을 멈추는 동규와 여자.

동규
괜찮으세요?

여전히 비닐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있는 동규. 여자, 웃는다.
동규의 비닐을 벗기는 여자. 동규, 그제야 자기가 계속 비닐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데…….
여자,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는다.

동규
걸을 수 있겠어요? 병원 가실래요?
여자
아니예요. 처음 겪는 일도 아닌데요, 뭐.
동규
!
여자
아무튼 감사합니다.

여자, 현기증이 오는지 이마를 손으로 감싼다. 동규, 걱정돼서 쳐다보는데,

민주
나민주에요.
동규
네?
민주
제 이름이요. 만나서 반가워요.

엉겁결에 민주와 악수하는 동규.

민주
제가 지금은 좀 그렇고, 저 시내에 있는 십자수 가게에서 일하거든요. 시간 되실 때 찾아오시면 차라도 한 잔 대접할게요.

민주, 일어나서 간다.

동규
데려다드릴까요?

손을 젓는 민주. 사라진다.
동규
전화번호라도 알려주면서 오라고 하든가…….

#10. 선착장(밤)
해훈이 부하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다.
반대편에 조 사장과 그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 뒤로 보이는 화물선의 검은색 선체가 을씨년스럽다.
조 사장이 앞으로 나오면서 해훈에게 손을 내민다. 손을 맞잡는 해훈.

조 사장
오랜만이야. 휴가라도 다녀왔노?
해훈
서울에 볼 일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배를 가리키며)저겁니까?
조 사장
이번엔 좀 큰 걸로 준비했지. 인터네셔널한 사업을 시작하는데, 그에 어울릴 만한 그릇이 필요한 거 아니겠나?
해훈
고생하셨습니다.
조 사장
그런데… 물건이 뭔 지는 정말 말해줄 수 없는 기가?

해훈의 눈빛이 번뜩인다.

조 사장
우리가 한 두 번 거래 튼 것도 아이고, 이제 좀 알 때도 되지 않았나?
해훈
차차 아시게 되실 겁니다.
조 사장
근데… 이번부터는 계약서를 좀 다시 썼으면 좋겠어.
해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 사장
니 재미 보는 거 나도 좀 같이 보자 이거야.
해훈
배값 드리지 않습니꺼?
조 사장
육 대 사.
해훈
사장님!
조 사장
(해훈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니가 실어 나르려는 거… 내가 참말로 모르는 줄 아나?

조 사장, 껄껄 웃는다. 웃음 소리는 점점 더 커져,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진다.
그 모습을 잠자코 보고 있는 해훈.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조 사장, 웃음이 멈춘다. 조 사장, 신음 소리와 함께 몸이 무너진다.
조 사장의 배에는 해훈의 칼이 깊숙이 꽂혀 있다.
조 사장의 부하들, 사색이 된다.

조 사장
이런 씨팔놈…!  니가 나한테 이럴 수…!
해훈
가만히 배나 빌려주면서 살았으면 좋았잖아. 왜 그러게 깝쌌니? 응?
조 사장, 고꾸라진다.
해훈, 일어나서 칼에 묻은 피를 닦는다.

해훈
하여간 노땅들이 나이 처먹으면 뱃살에 욕심만 껴가지고는…….

조 사장의 부하들, 해훈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한다.

해훈
니들은 우짤래?

조 사장의 부하들, 일제히 무릎을 꿇는다.

일동
형님!
해훈
좆까고 있네.

해훈, 돌아서서 간다.

해훈
니들은 저 배 잘 닦아 놓그라.

#11. <레드클로버>(밤)
테이블 위에 소주병과 과자 봉지로 어지럽혀 있다.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영화를 보고 있는 동규.

Cut To

노트북 화면에서 정사신이 한창 진행 중이다.
동규, 침을 꿀꺽 삼킨다. 손이 아래로 간다. 그러나 다시 올라오는 손. 다시 아래로 간다. 벌떡 일어서는 동규. 한숨을 내쉰다.
인서트 - 바 위에 올려져 있는 거북이 어항.
동규, 피아노 앞에 앉아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한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연주. 그 때 여배우의 교성소리가 들리며 연주가 끊긴다.
침을 삼키는 동규.

#12. <레드클로버>(낮)/*해훈의 사무실(낮)
동규, 눈을 뜬다.
의자 네 개를 나란히 붙여놓고 그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내려져 있던 바지를 황급히 끌어올리는 동규.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일어서서 가게 정리를 시작한다.
가게 전화벨이 울린다.

동규
네. 레드클로버입니다.
해훈(소리)
밤새 편안이 주무셨습니까?
동규
아, 예. 어쩐 일로…….
*해훈
(창고처럼 넓고 어두운 해훈의 사무실. 해훈은 웃통을 벗은 상태이다.)
아뇨. 거북이 잘 키우고 계신가 해서요.
동규
예. 물론이죠.(거북이 어항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손에 집히는 대로 과자 부스러기를 어항 안에 뿌려주며)안 그래도 밥 주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해훈
제가 드린 밥 말입니까?
동규
아… 그게 다 떨어져서, 다른 거 주고 있었습니다.
*해훈
(걸어간다.)그거 한 달은 먹을 수 있을 텐데? 아예 쏟아 부으셨구만. (대형 어항 앞에서 멈춘다. 동규한테 있는 거북이보다 몸집이 갑절은 되는 거북이 네 마리가 기어다니고 있다. 어항 옆의 통에서 살아 있는 미꾸라지를 꺼내는 해훈.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내어 미꾸라지를 잘라서 거북이에게 던져 준다.) 밥 떨어졌으면 멸치나 뭐 고기 같은 거 있지예? 그런 거 주이소. 너무 많이 주진 말고. 애는 참 어디다 두시고 계십니까? 설마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 두고 계신 건 아니지요?
동규
아! (황급히 어항을 들고 창가 쪽으로 간다.) 안 그래도 지금 햇빛에 일광욕 시키고 있었습니다.
*해훈
(거북이 한 마리를 쓰다듬으며)그래야죠. 그래야 거북이 등딱지가 야무지게 여무니까. 제가 사장님께 전화 드린 건 딴 거 때문이 아니고~ 그 어제 보니까 어제까지 들어와야 할 상환금이 안 들어왔더라고.(다시 반대편으로 걸어간다. 바닥에 떨어진 채찍이 한 자루 보인다. 조금 더 가면 흐린 초점으로 천장에 무언가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만 보면 그 물체는 살색이다. 매달려 있는 물체 아래로 붉은 핏물이 고여 있다. 채찍을 줍는 해훈)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싶어 전화 드렸지.
동규
아, 제가 날짜를 착각했나 봅니다. 바로 나가서 보내드릴게요. 죄송합니다.
*해훈
초창기부터 이러시면 곤란한데……. (채찍을 매달려 있는 물체에게 휘두른다.) 더군다나 같은 고향 사람끼리 왜 이러신답니까? 네?
동규
제가 필히 오늘 중으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해훈
다음부터는 안 그러실 거죠? 오늘은 믿고 이만 줄입니다.

다시  <레드클로버>. 동규가 계산대에 멍하게 서 있다.
활짝 열려 있는 출입문. 그러나 텅 비어 있는 가게 안. 주방장이 나와서 힐끗 힐끗 동규의 눈치를 본다. 아르바이트생은 거북이를 구경하며 놀고 있다.

동규
가게들 잘 보고 있어요.

가게 밖으로 나가는 동규.

#13. 선착장(낮)
인부들이 배 위에 짐을 실어 나르고 있다.
안전모를 쓴 현장감독 뒤를 졸졸 따라 걷고 있는 동규. 현장감독은 잔뜩 짜증이 난 얼굴이다.

현장감독
우리는 펜 잡던 사람들 안 쓴다니까, 그 사람 참 고집 세구마!

동규
주로 했던 일이 설계랑 디자인이라는 거지, 저도 회사 초년생 때는 현장라인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여기 있는 배들은 조금만 가르쳐주시면 손 볼 수 있습니다.
현장감독
여기 있는 배들이 뭐 띄울 배들인 줄 아쇼? 이 읍포 시 들어와 있던 회사들 다 망해서 얼마 안 가 다 팔아치울 배들이요. 나도 좀 있으면 나 앉아 있게 생겼구마…….

현장감독, 가버린다. 망연자실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규.
 
#14. 읍포시내+골목길(낮)
동규가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고 있다.
(동규의 시점)은행, 대출, 신용금고 등등의 금융기관 간판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동규. 동규, 시선을 돌리는데,
건너편에 민주가 보인다. 민주는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고 있다.
잠시 망설이다가 민주를 따라가는 동규.
골목길로 접어든 민주와 동규. 민주는 여전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부를까 하고 입을 벌렸다가, 말이 나오지 않자 뛰기 시작하는 동규.
동규가 나지막이 “저기요…”하면서 민주 어깨에 손을 대려고 하는데,
순간 민주가 돌아서면서 손날로 동규의 목젖을 때린다. 연속으로 동규의 무릎을 차서 쓰러뜨리는 민주.
동규, 목을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른다.

동규
(고통스러워하며)아 씹…….

민주, 얼빠진 얼굴로 자기 손을 바라본다.

#15. 민주네 가게(낮)
민주가 커피를 두 잔 타고 있다.
탁자 앞에 앉아서 목을 주무르고 있는 동규.
민주, 테이블 위에 커피잔 내려놓고, 동규 맞은 편에 앉는다.

민주
죄송해요.
동규
제가 괜히 놀라게 해서 죄송하죠.
민주
전직 태권도 선수였나…….
동규
아. 운동 하셨어요?
민주
아니요. 혼잣말이에요. 아까는 엉겁결에 그렇게 된 거예요. 괜찮으신 거 맞죠?
동규
그럼요. 휴 이런 줄 알았으면 그 때 차라리 가만히 놔둘 걸 그랬네요.
민주
(째려본다.)
동규
하하하. 농담이에요. 그나저나 여기 있는 거 다 민주 씨가 만드신 거예요?
민주
아!

민주, 옆에 쌓여있는 쿠션과 퀼트, 십자수들을 가지고 와 탁자 위에 펼쳐놓는다.

민주
다 제가 만든 거죠. 이건 여기 처음 취직했을 때 만든 거고요, 이 건 그 전에 교육원 수료했을 때 수료 작품… 그리고 이건요…….

(동규의 시점)꼬아져 있는 민주의 다리.
동규,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민주
집중 안 해요?
동규
아, 네.
민주
그리고 이건…….

(시간경과)

계속 설명하고 있는 민주. 애써 지루한 표정을 감추며 재밌게 듣고 있는 척 하고 있는 동규. 동규, 눈이 자꾸 민주의 다리로 간다.
민주
참, 서울 분이시죠?
동규
원래는 여기 출신인데, 서울서 쭉 살다가 몇 달 전에 내려왔습니다. 민주 씨도 서울 분이신 거 같네요?
민주
아마 그럴 거예요.
동규
네?
민주
아니에요. 나중에. 아무튼 외국도 아닌데 말씨 비슷한 분 만나서 반가웠어요. 여기서 계속 사시는 거예요?
동규
아… 저 해변가 쪽에서 레스토랑 합니다.

동규, 명함을 민주에게 준다.

동규
심심하면 놀러오세요.
민주
내일 저녁에 가도 되요?

#16. 읍포 유곽촌(밤)
빨간 집 주변에 기홍과 친구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매춘부들이 지나갈 때마다 눈길을 주는 기홍.

기홍
씨발년, 쫄깃쫄깃하겠네.

저 쪽에서 해훈의 부하들과 조 사장의 부하들이 함께 걸어오고 있다. 그들은 커다란 포대 자루를 어깨에 이고 있다. 기홍 패거리들을 지나쳐 간다.

기홍
점마들 뒤에 따라 댕기고 있는 아들은 조 사장네 애들 아이가? 왜 해훈이 쪽 애들 뒤를 졸졸 따라붙고 있대냐?
친구1
갸들 이번에 뭐 큰 사업 한다면서 시끌시끌하던데?
기홍
큰 사업?
친구2
모겠나?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이거 좀 되는 거겠지.
기홍
약 파나?
친구2
그거야 모르지. 김해훈이 그거 순 사이코 새끼…….

기홍이 갑자기 일어나서 어디론가 간다.

친구2
니 어디 가는데?
기홍
해훈이 만나러 간다.
친구2
저런 개사이코…….

#17. 해훈의 창고(밤)
십여 개의 자루가 바닥에 놓여 있다. 개중 몇 개는 꿈틀거리다 못해 요동치고 있다.
의자에 앉아서 자루들을 보고 있는 해훈. 긴 막대기를 들어 자루를 콕콕 찌른다. 해훈이 찌를 때 마다 자루가 마구 요동친다. 해훈, 재밌다는 듯이 웃는다.
안경을 쓴 놈이 자루 앞으로 다가와 자루를 쓰다듬는다.

해훈
좀만 참아라. 배 타면 니 할 일 많아진다.

안경은 얼핏 보기에는 엘리트 상이지만, 눈빛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해훈
근데 문제는 에이급이 너무 없다 아이가. 원판불변의 법칙이란 말도 있는데…….

바깥 쪽에서부터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해훈이 소리 나는 쪽을 보면,
기홍이 졸개들 밀치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기홍, 해훈과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으며 해훈에게로 온다.
위 아래로 모두 검은색 옷을 입은 해훈의 부하 한 명이 그 앞을 막는다.

기홍
비키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부하.

기홍
니네 형님인지 하는 댁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좀 비켜주지 않겠니?

부하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기홍
씨팍 새끼가…….

부하의 멱살을 잡는 기홍. 그러자 해훈이 앞으로 나온다. 부하를 뒤로 보내고, 기홍과 마주서는 해훈.
해훈
니가 여기엔 어쩐 일로 왔대?
기홍
오랜만이요. 아니 그냥 요새 요기서 뭐 좀 재미난 일 좀 준비하는 거 같다고 해서 들러봤지.
해훈
재밌는 일?
기홍
그래요. 봐서 괜찮으면 나도 좀 끼게? 내 자리 있겠지?
해훈
(웃는다.)새끼…….

해훈, 기홍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는다.
해훈
아그야. 잘 듣거라.
내가 여기서 일을 하든, 쌈을 싸먹든, 내가 알아서 하는 거지 니가 왜 끼는데? 안 그런가?
기홍
이러면 내가 서운하지.  동향 사람끼리 같이 좋은 게 있으면 나눠먹어야지, 안 그러오?
해훈
아이야. 내가 왜 너랑 나눠먹어야 하는데? 니가 내게 해준 게 뭐 있는데?
기홍
뭐, 맘대로 하소. 조만간 큰아빠 볼 일도 있는데. 어디 한 번 봅시다.
해훈
큰 아빠? 아~ 니 그 잘 난 시장 큰아부지 말하는 기가? 니는 지금 이 읍포시 시장님의 하나뿐인 조카라고 뻣대는 거고? 맞지?

해훈,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내든다. 기홍, 눈이 휘둥그fp져서 뒤로 물러선다.
해훈
안 그래도 이 읍포 바닥 뜨려는 참에 잘 됐네. 어디 나도 거물 한 번 조져서 내 커리어 좀 쌓아보자. 어떤 거 같나, 내 아이디어가?
기홍
내 그냥 가리다. 혼자 잘 먹고 잘 사쇼.

기홍, 후다닥 창고 밖으로 나간다.
뒤로 물러나 있던 부하가 해훈의 옆으로 다가와,

부하
제낄까요?

해훈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들 뒤로 여자 한 명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18. 시장(낮)
장을 보고 있는 동규. 채소 흥정을 하고 있다.

(시간 경과)

장바구니를 들고 오고 있는 동규. 건너편에서 기홍이 오고 있다.
장바구니 속에서 비닐 봉투를 꺼내어 얼굴을 가리는 동규.
뒷통수에 반창고를 붙인 기홍, 동규를 지나가다가

기홍
아이고 또 만났네?

동규, 침을 꿀꺽 삼킨다.

기홍
그 때 그 만 원 잘 썼어. 아부지한테 이른 건 아니겠지?

웃으면서 지나가는 기홍.
동규, 그 자리에 서서 기홍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19. 미용실(낮)
민주가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미용사
아유~ 우리 민주는 머릿결도 곱지. 피부까지 하야니까 스타일이 살아요. 살아. 민주는 예전에 인기 많았겠어!
민주
그랬을까요? 기억이 안 나니 원…….
미용사
아이고, 미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민주
아니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미용사
병원에서는 뭐라는데? 기억 되살리기는 글렀대?
민주
확답을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미용사
의사들 하는 말이 맨날 그렇지. 아직 단정 짓기에는 이릅니다. 뭐라 말씀드리지 못하겠군요. 제기.
오늘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갈래? 맛있는 거 해줄게.
민주
언니, 미안해요. 나 약속 있어서.
미용사
아~ 남자 만나나?

민주, 배시시 웃는다.

미용사
가시나, 그래서 이렇게 예쁘게 하고 가는 기구나. 어쩐지~
민주야, 머리 기차게 잘 됐는데 사진 한 방 찍자. 요 앞에다 붙여놓게.
민주
어유, 언니, 그건 좀 오바 아니야?
미용사
그러면서 이쪽으로 돌아 앉는 건 뭔데?

미용사, 서랍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어 민주를 잡는다.
민주, 살포시 미소 짓는다. 사진 찍히는 소리.

#20. 차 안(낮)
해훈이 차를 타고 시내를 지나가고 있다.
창밖으로 민주가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해훈
야, 저기 걸어가는 가시나가 사고 나서 기억 잃었다는 고 가시나 아니가?

화장도 예쁘게 하고 옷도 멋지게 차려 입은 민주의 모습.
해훈, 감탄한 얼굴.

#21. <레드클로버>(저녁)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 동규. 익숙지 않아서 자꾸 도구가 손에서 미끄러진다.

CUT TO

창가 쪽 테이블에 민주가 앉아있다. 말쑥하게 빼입고 머리까지 정돈한 동규가 요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온다.

동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자리에 앉는 동규.

민주
와 진짜 맛있겠다.

파스타를 포크로 돌려 먹는 민주. 표정이 잔뜩 찡그려진다. 불안한 얼굴로 민주의 표정을 살피는 동규. 민주 갑자기 표정이 환해지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그제야 동규의 표정도 밝아진다.

CUT TO

와인을 마시고 있는 두 사람. 가게 내에는 그럴싸한 재즈 음악도 흘러나오고 있다.

민주
2년 전이었죠. 사고를 당한 게. 이 읍포시로 들어오는 산 비탈 길 아래에 차가 뒤집힌 채로 있었고 그 안에 제가 깔려 있었대요. 기적적으로 몸은 후유증이 없었는데, 이 뇌가 단단히 다쳤나 봐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당혹스러웠어요.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니까. 심지어 제 이름조차 말이죠.
동규
신분증 같은 게 없었나요?
민주
네. 지문으로 신원 조회도 했다고 했는데 말소 됐다고 나왔대요. 외국인이었는지… 행정 오류인지… 아직까지도 군청에서는 확인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모르겠어요.
동규
그럼 민주씨 이름은?
민주
저 재활훈련하게 도와주신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붙여주신 이름이에요. 자기 어렸을 때 사별한 동생 이름이라고. 그 선생님이 퀼트랑 십자수 교실 열어서 그 때 배운 기술로 지금 가게에 취직도 한 거고요. 이 동네에는 이상한 사람도 많지만 아직 인심은 좋은 편 같아요.
동규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표정)
민주
이상한 사람이 더 많긴 해요. 인심 좋다는 말은 취소.

두 사람, 같이 웃는다.

민주
신원이 없으니까, 가족도 못 찾고… 처음1년은 당장 살 방도를 마련하기에 바빠서 더 찾아볼 생각을 못했고… 이제는 이 삶에 적응돼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고 있는데… 가끔씩 밤에 혼자 있으면 외로울 때가 있어요. 그 때는 못 참고 밖으로 나가죠. 나가서 혼자 술마시고… 어쩔 때 남자들이 옆에 올 때도 있고… 그러다 저번처럼 그런 일도 겪고…(울먹인다.) 한심하죠?

민주, 울음을 삼키려고 하지만 울음은 더 커진다. 동규, 어떻게 해야 하나 안절부절 못하다가, 피아노 있는 곳으로 뛰어간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를 시작하는 동규. 신나는 음악으로 시작한다. 울음을 멈추고 동규의 연주를 바라보는 민주. 동규, 이번에는 달콤한 음악을 한 곡 연주한다. 연주가 끝나자, 민주가 손뼉을 친다. 상기된 얼굴로 자리로 돌아오는 동규.

동규
원래 손님들 많으면 제가 저녁마다 쳐드리려고 놓은 건데, 손님들이 별로 없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거예요.
민주
음대 나오셨어요?
동규
아뇨. 아버지가 음악 선생님이셨어요.
민주
그럼 아버님께서는…….
동규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은 예전에 돌아가셨고, 저도 외아들이니 혼자 남은 셈이죠.
민주
아…
동규
저도 민주 씨 마음 이해합니다. 혼자 지내다 보면 밤에 잠 안 올 때 많고, 그러다 보면 한 잔 해야 겨우 잠이 오죠. 오늘은 그래도 민주씨가 오셔서 잠이 잘 올 거 같습니다.

말해놓고 어감이 이상했다 싶어서 스스로 당황하는 동규.
민주, 음악을 듣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민주
(동규에게 손을 내밀며)한 곡 추실래요?

동규, 사양한다. 그러나 민주가 재촉하는 눈길을 보내자, 마지못해 민주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조금은 어색하게 떨어져서, 그러나 서로를 마주보며 춤을 추는 두 사람. 천천히 가게 안을 돌기 시작한다.

민주
저랑 동규 씨는 많이 닮았네요. 외톨이 신세. 우리끼리 친구할까요?
동규
친구하기엔 제가 너무 오빠 같은데…….
민주
괜찮아요. 저는 어차피 생년월일도 모르니까 동규씨 나이에 맞출게요.

춤을 추며 천천히 뒷쪽으로 오는 두 사람. 민주의 시선이 뒷벽에 걸려있는 <레드클로버> 액자로 향한다.

민주
"Designed by KIM. D.K"? 저거 동규씨가 그린 거예요?
동규
네. 저 이래봬도 꽤 잘나가던 선박 디자이너였다고요.
민주
배 너무 멋진데요. <레드클로버>? 빨간 토끼풀? 무슨 뜻이에요?
동규
꽃말이 마음에 들어서요. “나를 생각해주세요.”래요. 또 클로버가 희망을 상징하니까 거기다 강렬한 느낌을 주어 레드를 붙인 거기도 하고요. 어거지죠, 뭐.
민주
멋진데요, 뭘. 저 배 타고 바다 돌아다니면 신날 거 같아요.
동규
쾌속선이라 좀 무서울 수도 있어요.

거북이 어항 쪽을 지나 다시 앞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두 사람.

민주
잠은? 여기서?
동규
(끄덕끄덕)
민주
새벽에 춥겠다.

사이

동규
민주씨 여행 좋아하세요? 괜찮으시면 같이 당일치기로 이 근처에 놀러 가시지 않을래요?
민주
좋아요. 어디?
동규
바다는 지겹게 보니까 산에 있는 계곡이나 뭐…….
민주
이런 건 말로만 하면 흐지부지 되는데?
날짜 정해요. 지금.
동규
다음 주 일요일?
민주
너무 길어. 변수가 많아져요.
동규
그럼 다음 주에 광복절 있으니까 그날은 어때요?
민주
콜.

다음 음악이 이어진다. 계속 마주보고 춤을 추고 있는 두 사람.

#22. 데이트 몽타주(낮) 
1. 레드클로버(낮)
동규가 레드클로버 출입문에 “휴가 중”이라는 팻말을 걸어둔다.
2. 시내(낮)
건너편에서 민주가 손을 흔든다.
환하게 웃는 동규.
3. 계곡(낮)
레프팅을 하고 있는 두 사람.
다 도착하자, 가이드가 여자들을 막 물 속으로 떨어뜨린다.
민주, 안 떨어지려고 동규에게 붙는데, 동규가 민주를 밀어서 떨어뜨린다.

#23. 팬션 마당(저녁)
인서트 - 시커멓게 탄 고기 불판.
동규와 민주가 나란히 앉아서 캔 맥주를 마시고 있다.

민주
아. 좋다.
동규
뭐가요?
민주
이렇게 놀러 와 본 거 처음이에요. 살면서.
동규
정말요?
민주
여기 와서 처음이니까요. 그 전 기억은 없고.
동규
아…….
민주
동규 씨는 결혼 언제 할 거예요?
동규
결혼이요? 상대가 나타나면 하겠죠.
민주
나는 결혼 빨리 하고 싶어요. 왜, 혼자 오래 살다보면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 들지 않아요.
동규
아직은…….
민주
나는요. 내 아이를 낳으면 내가 만든 옷만 입히고, 내가 만든 음식만 먹일 거예요. 잘 때마다 책도 읽어주고.
동규
일등 어머니네요.

민주가 동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동규, 당황해서 눈길을 피하지만,
민주는 뚫어지게 동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동규
왜……?
민주
우리 막차 시간 언제죠?
동규
(시계를 보고)아, 벌써… 삼십 분 남았네요.
민주
너무 촉박하죠?
동규
그럼……?
민주
자고 가면 좋을 텐데…….
동규
!
민주
동규씨 가게 오래 비우면 안 되잖아요. 어서 짐 챙겨요.

민주, 식기구를 정돈하기 시작한다. 아쉬운 얼굴로 같이 치우는 동규.

#24. 버스안(밤)
버스에 나란히 앉아있는 동규와 민주.
민주가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동규,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 허밍을 따라 부른다.
제법 그럴 듯한 화음으로 허밍을 하는 두 사람.
민주, 스르르 눈을 감고 동규의 어깨에 기댄다.
동규, 민주가 불편하지 않도록 민주의 얼굴을 들어 자기 어깨 더 안쪽으로 기대게 한다.

#25. 선착장(낮)
배에서 내리는 정원. 담배를 꺼내어 물고 불을 붙인다.
선착장에 서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정원.
읍포시 전경. 눈에 초점 없는 인부들, 빨간집 등등…….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정원.
이 때 누군가가 정원의 팔을 붙잡는다. 돌아보면,
#2에서 동규를 붙잡았던 그 추녀 아가씨.

추녀
젊은 오빠, 놀다 가시라요.

정원,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를 뱉는다. 메고 있던 가방을 풀고 그 안을 뒤지는 정원. 손거울을 꺼낸다.
손거울로 추녀를 비추는 정원.
추녀가 뻘쭘하게 쳐다본다.
정원, 거울을 다시 가방에 집어 넣고 돌아선다.

한 편, 빨간집 쪽에 기홍과 패거리들이 모여 있다.

기홍
아, 민주 고 걸 그 때 먹었어야 했는데...
친구1
그 씹새 아직 못찾았나?
기홍
까만봉다리 뒤집어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보나? 그나저나 그런 기회 흔치 않았는데 씨바... 민주 고 가시내 요새는 해지기도 전에 집에 들어가부리더라.

맞은 편에서 정원이 오고 있다.

기홍
그 때 했던 거 또 해보까?

정원에게로 성큼성큼 가는 기홍.
정원, 빨간집 아가씨들에게 눈길 주면서 가고 있는데...
퍽! 하며 누군가의 어깨와 부딪치고 만다.
정원이 스윽 쳐다보면,

기홍
야이 씨팍……. 눈깔이 똥꾸멍에 달렸나?

정원, 빤히 기홍의 얼굴을 쳐다본다.

기홍
어깨뼈 빠졌네, 씨발놈 때문에.
만원만 내놔 봐.

손을 내미는 기홍. 그 손을 빤히 쳐다보는 정원.
기홍, 뺀질거리면서 손으로 정원의 뺨을 툭툭 건드리는데,
정원이 기홍의 손을 꺾어버린다.

기홍
아아! 안 놔? 안 놔? 아아!

정원이 풀어주자, 뒤로 멀직이 물러나는 기홍.

기홍
개새끼야, 넌 오늘 뒤졌다. 아가리 꽉 깨물으라.

주먹을 들고 정원에게 덤벼드는 기홍. 정원, 발끝으로 기홍의 낭심을 툭 찬다.
기홍이 낭심을 움켜잡으며 깡충깡충 뛴다. 정원, 기홍의 머리채를 잡아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기홍
이런 개새… 너 우리 큰아부지가 누군 지 아나? 우리 큰아부지가…….

정원, 구두발로 기홍의 얼굴을 밟는다.

정원
우리 아빠는 대통령이거든?

사색이 되어 정원을 쳐다보고 있는 기홍의 친구들.

#26.  읍포시 경찰서(낮)
경찰서 정문 앞에서 멈춰서는 정원.
인서트 컷 - “윤락가 집중 단속기간”이라고 써 있는 플랜카드가 정문에 걸려있 다.
고개를 절레절레 몇 번 흔들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27. 레드클로버(저녁)
여전히 손님이 없는 가게 안.
알바생은 졸고 있고,
동규는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다.
가게문 열리며 누군가의 발이 들어온다.

동규
어서 오세요!

해훈의 부하들 세 명이 동규에게 인사를 한다.
표정이 싹 굳는 동규.
부하
저희 사장님이 잠시 뵙자고 하십니더.

#28. 해훈의 창고(밤)
탁자 앞에 동규가 앉아있다. 동규는 묶여있지도 않고, 얼굴도 멀쩡하다. 탁자 위에는 간단한 다과와 찻잔도 놓여있다. 그러나 동규는 티가 나도록 얼어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해훈. 거북이를 품에 안고 있다.

해훈
왜 드시지 않고?

동규의 시선은 해훈 뒤편으로 향해 있다.
해훈의 부하 두 명이 방망이로 포대 자루를 마구 두들기고 있다.
포대 자루에서 핏물이 스며 나온다.
방망이에 박혀 있는 철심.

해훈
사운드가 쪼까 뭐한데… 집중 좀 해보십쇼. 네?

동규
(얼어서)네.

해훈
왜 약속을 안 지키소?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했잖습니까, 우리는 신용거래 준수한다고.
동규
죄, 죄송합니다.
해훈
같은 고향 사람인데 내도 참 곤란합니다. 막말로 확 엎어버릴 수도 없고…….
여자도 아니니까 신체포기 각서라도 한 장 쓰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가게 압류 신청 넣을 수밖에 없어요. 내 말 뜻 알아듣겠어?
동규
(끄덕끄덕)
해훈
미안합니다. 반말이 나오네. 얘들아 그만 해라. 정신 사나워서 몬 하겠다. 아무튼, 가게 처분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동규
저기… 한 번만 시일을 좀 늦춰 주시면 안 될까요?
해훈
시일을 늦춰 달라꼬?
동규, 무릎을 꿇는다.
동규
이렇게 사정할게요.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하라는 일 다 해서라도 돈  드릴 테니 제발 가게만… 가게만은…!
해훈
진짜 하라는 일 다 할 수 있어요?
동규
(끄덕끄덕)
해훈
다름이 아이고, 내가 배 탈 일이 있는데, 그 배가 좀 문제가 있어요. 그거 빌려준 새끼가 좀 씹새끼라서 요게 엔진이 이상 있는 놈을 빌려주고 가버렸어. 그런데 김 사장님이 서울에 있을 때 배 전문가였대매. 프로페셔널. 그니까 우리랑 같이 배 타서 손 좀 봐주고 그러믄 좋겠는데.
동규
저는 주로 설계 쪽이라…….
해훈
얘들아! 이따 시청 좀 다녀와야 쓰겠다. 압류 신청이 시청에다 하는 건가, 법원에다 하는 건가?

동규, 바지를 손으로 쥐어짠다.

해훈
요새 30대 개인파산이 사회 문제라지. 감방 와서 푹 썪고 오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거 나와서 누가 써주기나 하겠나. 인생 개좆 된 거지…….

동규,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벽 쪽으로 뛰어간다. 벽에다 머리를 박는 동규. 동규의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동규
타겠습니다! 탄다고요!

해훈,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해훈
잘 생각했습니다. 내 시일은 넉넉히 미뤄드리지.

해훈이 동규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해훈
지금부터 사장님이랑 지는 한 배를 탄 겁니다. 알겠죠?

 동규, 절망적인 얼굴로 해훈을 바라본다.

#29. 퀼트가게(낮)
쿠션에 수를 넣고 있는 민주.
쿠션 안에 있는 그림은 동규가 그린 <레드클로버>이다.
쿠션을 다 만들고 번쩍 들어보는 민주.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민주, 갑자기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찡그린다.
(민주의 시점)사방이 빙빙 돌아간다.

인서트 컷 - 정확히 분간할 수 없는 이미지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민주, 쿠션 위로 고개를 파묻는다.
노크 소리. 고개를 번쩍 드는 민주.
동규가 가게 밖에 서 있다.

#30. 해변가(저녁)
힘없이 걷고 있는 민주. 그 옆에 더 힘없어 보이는 동규.

민주
웃기죠. 동규씨가 일 있어서 어디 간다는데 왜 내가 괜히 화가 나지…….
동규
미안해요.
민주
아니,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동규 씨가 사정이 생겼다는데. 내가 이러는 게 웃긴 거죠.
그런데 어디 가는 지 왜 말 못해주는 거예요? 위험한 데라도 가요?
동규
…….

민주, 그 자리에 쪼그려 앉는다.
동규, 천천히 몸을 낮추어 민주 앞에 앉는다.

민주
동규 씨 쓰라고 쿠션도 만들어 놨는데…….

민주, 벌떡 일어나서 화난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점점 더 멀어지는 민주의 뒷모습.
동규, 안타까운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31. 레드클로버(밤)
동규가 테이블에 앉아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
일어나서 뒷벽 쪽으로 가는 동규. <레드클로버> 액자를 손으로 매만진다.
노크소리.
동규가 출입문 열면,
민주가 서 있다. 동규에게 쿠션 내미는 민주.

민주
이거 가져가세요.

민주, 돌아서서 가려고 하는데,
동규, 민주의 손목을 붙잡는다.

동규
가지 마요.

민주의 눈빛이 흔들린다.
(시간경과)

전기매트가 깔린 단상 위에 나란히 앉아있는 동규와 민주. 서로 손을 잡고 있다.
동규, 민주의 뺨을 어루만진다. 가볍게 키스하는 두 사람.
민주, 동규의 눈을 바라보는데…….
동규의 손이 민주의 다리를 쓰다듬는다. 점점 더 민주의 다리 안쪽으로 전진하는 동규의 손.
동규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민주의 목덜미를 애무하려고 하는데…….
민주가 동규의 가슴팍을 밀치고 일어선다.
동규, 당황해서 민주를 쳐다보면,

민주
미안해요.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민주, 황급히 가게 밖으로 나간다.
동규, 일어난다. 의자에 앉는다. 머리를 쥐어뜯는다.
고함을 지르며 의자를 집어 던지는 동규.

인서트- 가게 건물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민주.

동규, 문득 시선이 거북이 어항 쪽으로 간다.
어항 속에서 자고 있는 거북이.
동규, 거북이를 꺼내어 바닥에 내려놓는다. 잠에서 깨어 기어가는 거북이.
동규, 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시간경과)

동규, 웃통을 벗은 채로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아래로 기홍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동규, 담뱃불을 끄고, 옷을 입는다.
 
#32.  골목길(밤)
민주가 비틀거리며 가고 있다.
봉고차 앞에서 멈춰 서는 민주. 봉고차 뒤에서 누군가의 뒷모습이 나온다. 천천히 민주에게로 다가가서 민주를 덮치는 괴한. 봉고차 문을 열고 민주를 그 안으로 집어넣는다.
봉고차, 시동 걸리며 출발한다.
봉고차가 보이는 담벼락 뒤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다.

#33. 부둣가 선착장(낮)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는 동규.

소리
전화기가 꺼져 있사오니, 소리샘으로 연결 바랍니다.

전화기 집어넣고, 화물선 승강대로 가는 동규. 승강대 입구에 서있는 해훈의 부하가 동규에게 손가락으로 타라는 신호를 보낸다. 승강대에 오르는 동규. 배 위에서 해훈이 동규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는 동규.

#34. 다리 밑(새벽)
다리 밑 어두운 지역에 수풀이 무성하게 나 있다. 그 수풀 안쪽으로 희미하게 무엇인가가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기홍의 시체.
손목에서 흘러나온 피로 손이 새빨개져있다.

#35. 읍포시 경찰서(낮)
반장이 형사들을 모아놓고 조회를 하고 있다.

반장
그 뭣이냐... 요새 윤락가 단속 철저히 하고 있나? 조선족이랑 국적불명 아가씨들 많이 일하는데 그거 철저히 잡아내라고 지시 내려왔으니까 신경 좀 쓰더라고...

정원이 형사들 등 뒤에 숨어서 스포츠 신문을 보고 있다.

반장
어이, 반정원 경위. 자네 지금 뭐하나?

정원
죄송합니다.
반장
자네 여기서는 더 내려갈 곳도 없다는 거 알쟤? (손날로 목을 그어 보이며)이거야, 이거. 알겠나?

고개 끄덕이는 정원. 그러나 곧 하품을 한다.
눈살을 찌푸리는 반장

#36. 같은 장소(낮)
정원이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 놓고 자고 있다.
형사들 지나다니면서 정원을 따가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중국집 배달부가 철가방을 들고 와 정원 앞에 짬뽕 내려놓는다. 정원, 침 닦고
일어나, 계산하고 짬뽕 먹기 시작한다.
형사 한 명이 정원에게로 온다.

형사
오늘 단속 지랑 나가시지 않겠습니꺼?
정원
이봐. 적응기간이라는 말 모르나? 왜 박찬호나 김병현이도 팀 옮기면 한 동안 몸
사리면서 컨디션 조절하잖아. 나도 오늘 막 서울에서 왔더니 여기가 낯설고 그러
네. 좀 봐줘. 응?

형사, 곱지 않은 시선으로 정원을 쳐다보고 간다. 정원 아랑곳하지 않고, 짬뽕을 먹는다.

TV(소리)
다음 뉴스입니다. 지난 7일 검거된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최…

텔레비전 쪽으로 몸을 돌리는 정원.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검거된 살인 용의자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플래시 백 - #1의 현장. 정원이 들어온다. 옷장을 열고 안을 보는 정원.
             참혹하게 죽어있는 의사. 그 뒤로 X자.
             무표정 했던 정원의 표정, 점차 일그러지며, 정원, 절규한다.//
다시 몸을 돌려서 짬뽕을 먹는 정원.

#37. 인신매매선 기장실(낮)
기장실에 해훈과 해훈의 보디가드인 종호, 닥터최, 그리고 선장이 모여 앉아있다.
해훈
카오사이한테 연락 때렸나?
선장
(고개 끄덕인다.)
해훈
우리 해역 벗어나는데 문제없게 해놓은 거 확실하지?
종호
네. 허가증도 받았고 위에다 풀칠도 좀 해놨으니 아무 문제 없을 겁니더.
해훈
이 고물배만 잘 굴러가면 되는 거구마. 조 사장 개새끼 좆같은 걸 빌려줘가지고 사람 골치 아프게……. 그리고 닥터 최.

닥터 최라 불린 가운을 입은 안경이 고개를 든다.

해훈
뭐 쪼마 가시나들 진정 되는대로 작업 들어가라고. 하도 구린 애들이 드글대서 자칫하면 퇴짜 맞아서 좆 되게 생겼다.

닥터 최, 씨익 미소 짓는다.

#38. 인신매매선 감금실(낮)
민주, 눈을 뜬다.
어두운 창고. 벽 위쪽에 달린 조그만 창문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온다. 어렴풋이 파도 소리와 고동 소리가 들린다.
망막이 열리면서, 잘 보이게 되자,
스무 평 남짓한 공간에 서른 명 넘는 여자들이 쓰러져 있다.
민주가 일어나 쇠문으로 가서 열어보려고 하지만, 밖에서 단단히 잠겨있다. 민주, 잡동사니를 밟고 올라서서 창밖을 바라보려고 하지만 높이가 모자란다.

야시시한 복장을 한 조선족 추녀 매춘부 재이(#3에서 동규에게 호객행위를 했던 여자)와 니트를 입은 생머리미인 영서가 꼭 껴안고 민주를 쳐다보고 있다.

재이
저기요...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기야요?
희수(소리)
병신아, 지금 팔려가는 거잖아.

일어난 여자들, 일제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 돌린다.
가장 어두운 곳에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피부도 거무잡잡한 희수가 앉아있다.

희수
(자기 몸을 보며)개새들, 취향 한 번 더럽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온다.
민주, 재이에게 다가가서,

민주
죄송하지만 나 좀 들어줄 수 있어요? 무등이나…….

재이, 잡동사니 위에 순순히 엎드린다. 민주, 잠시 망설이다가, 옆에 있던 영서도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재이의 등을 밟고 올라서서 창밖을 바라본다.
(민주의 시점) - 민주의 눈높이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해수면.

재이
뭐가 보여요?
민주
(고개 저으면서)바다에요.

갑자기 누가 소리 내어 오열하다시피 한다. 다들 소리 나는 쪽을 보면,
구석에서 기껏해야 고등학생이나 되었을 법한 소녀가 울고 있다.
민주, 소녀에게 다가가서 안아주려고 하는데,
쇠문 열리면서, 조사장 패거리였다가 붙은 놈들 셋이 들어온다. 창고 안을 둘러보는 놈들. 소녀를 가리기 위해 앞으로 나서는 민주. 놈1이 민주를 보고 씨익 웃는다. 뒤로 물러나는 민주. 민주에게 다가가는 놈1.

#39. 인신매매선 갑판(낮)
섬 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바다만 드넓게 펼쳐져 있다.
난간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규. 연기를 뿜지도 않고, 빨기만 한다.

#40. 인신매매선 기계실(낮)
어두운 기계실. 벽 맨 윗 쪽에 달린 환풍기 통해서만 희미하게 빛이 새어들어온다.
공구통을 옆에 내려놓고, 드라이버로 엔진 설비의 나사를 열심히 조이고 있는 동규.
동규 뒤로, 인신매매단원 중 가장 어리고 작은 꼬마 놈이 식판을 들고 온다.

꼬마
밥처먹으라.
식판을 바닥에 두는 꼬마.
동규, 어이없다는 얼굴로 꼬마를 본다. 그러자 꼬마도 꼬우냐는 식으로 마주본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데...

동규
....물은?

꼬마,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고, 나간다.
동규, 똥씹은 얼굴로 바닥에 놓인 식판을 든다. 식판에는 밥과 국 김치밖에 없다.

#41. 인신매매선 식당(낮)
식판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오는 동규.
밥을 먹고 있던 십여명의 해훈 부하들이 일제히 동규를 쳐다본다.
고개 숙이고 구석으로 슬그머니 돌아와 식판을 싱크대에 내려놓는 동규.
슬그머니 식탁 쪽을 보면, 부하들은 참치 캔에 고등어 통조림까지 까놓고 푸짐하게 먹고 있다.
혼잣말로 ‘씨발’거리는 동규.

부하1
보소!
동규
(깜짝 놀라서)네?

부하들 일어난다. 식탁에는 그들이 쓴 식판과 식기, 그리고 통조림들도 지저분하게 어지럽혀 있다.

부하1
우리는 할 일이 많으니까 댁은 여기 정돈 좀 하이소.
동규
네...

부하들 웃으면서 밖으로 나간다. 제일 뒤에 가던 꼬마가 동규를 돌아보고,

꼬마
통조림 남은 거 처묵고, 안 딴 거는 요 아래층에 있는 창고에 갖다 놓그라.

나가는 꼬마.
동규, 멍하게 서 있는다.
(시간경과)
설거지 하는 동규.
(시간경과)
안 딴 통조림을 챙기는 동규.

#42. 인신매매선 복도(낮)/식품 저장고(낮)
통조림 캔을 들고 안쪽의 식품 저장고로 가고 있는 동규. 저장고 안쪽에서 여자 비명소리와 남자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기척을 숨기고 저장고로 다가가 문틈으로 안쪽을 살펴보는 동규.
저장고 안에서 조 사장 패 세 놈이 각각 여자 한 명씩 붙잡고 강간 시도 중이다. 그 중에 민주도 있다.
동규, 민주를 보고 놀라서 뒷걸음질 치다가 뒷벽에 부딪치고 만다.
소리를 들은 놈들이 저장고 밖으로 나온다.

놈1
뭐야? 니 언제 왔노?

동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저장고 안쪽을 보고 있다.
저장고 안에서 몸을 감싸고 떨고 있는 민주의 모습.
놈1이 동규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린다. 그러나 동규는 충격 속에 멍하게 민주를 보고 있다.
이 때, 발걸음 소리. 맞은편에서 종호가 오고 있다. 재빨리 동규를 내려놓고, 저장고 문을 닫는 놈들. 그러나 종호, 놈들을 밀치고 저장고 안으로 들어간다.
저장고 안에서 옷매무새와 머리가 엉망이 되어 떨고 있는 여자들.
종호, 다시 나와서,

종호
니들 물건에 손대지 말라는 사장님 말씀 못들었나?
놈1
야야, 그냥 맛만 좀 본기라. 그렇게 심하게 한 게…….
종호
미친 거 아니가? 덜 떨어진 것들 하고는..
놈1
너무 하네. 니는 남자 아니가? 가시나들 이렇게 널려 있는데 좀 꼴릴 수도 있지, 씨발...
종호
씨발?

종호, 칼을 뽑아든다.

종호
먼저 간 니들 대가리 곁으로 가고 싶나?
놈1
알았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갖다 놓으면 되는 거 아니가!

놈들, 허겁지겁 저장고 안으로 들어가 여자들을 업고 나온다. 놈1에게 업혀가던 민주, 동규와 눈이 마주친다.
민주, 경악한다.
동규, 멍하게 민주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민주, 끌려가면서도 동규를 본다.
종호, 동규의 눈치를 본다.

종호
아.. 저 아가씨는 읍포 시내에서 수급했으니까 잘하면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네.

동규, 부르르 몸을 떤다.

#43. 읍포시 경찰서(밤)
정원이 스포츠 신문을 보고 있다. 형사 한 명이 와서 정원 옆에 앉는다.

정원
무슨 일?
형사
실종사건인데, 반장님이 경위님보고 맡으라 하십니더.
정원
내가 왜?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는 형사.

정원
아니... 아까 말했잖아. 적응기간이니까...

정원 앞에 사진 한 장을 내려놓는 형사. 기홍의 사진이다.

정원
어? 이 새끼!
형사
압니까?
정원
알지. 내가 막 여기 왔을 때 자근자근 밟아줬던 새낀데... 사진도 더럽게 추잡하구만.

정원을 빤히 쳐다보는 형사.

정원
왜?
형사
임마가 이번에 경위님이 맡을 실종사건 실종자입니더.
정원
이 새끼 존나 하는 짓이 양아치던데... 양아치가 실종도 다 되나?
형사
야가 여기 읍포시 시장 조카입니더. 유일한 피붙이란 말입니더.

잠시 정적이 흐른다.

정원
난 아니야.
형사
이틀 전 밤에 친구들과 술 마시다 어디 간 후부터 통 연락이 안 된답니더.
정원
난 나흘 전에 때렸어.
형사
알았고요... 아무튼 경위님이 이 사건 맡으시랍니다. 시장님이 눈에 불을 키고 독촉전화 한다니 신경 쓰세요.

형사, 사진과 파일 두고 나간다.
정원, 파일을 펼친다. “박기홍(26)-1981.04.08생)”이라는 글씨가 들어온다.

정원
어이가 없구만.

#44. 인신매매선 감금실(밤)
민주가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떨고 있다.
인서트 - #42에서 민주를 멍하게 보고 있는 동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민주.
갑자기 여자들 비명소리가 들린다.
여자 한 명이 철문에 머리를 박고 있다.

여자
차라리 죽여! 죽이란 말이야!
재이와 영서 커플이 여자를 말린다. 여자 멈추지 않고 철문에 머리를 박는다. 여자 몇 명이 더 달라붙어 머리 박는 여자를 말리려고 하지만 여자는 거의 발광수준이다.

희수
야, 냅둬. 죽겠다는 걸 왜 말려?
재이
(왜 그러냐는 듯이 손사래 친다.)
희수
여기에서 탈출하려면 힘을 아껴둬야 해. 엄한 데 신경 쓸 필요 없대도.

재이가 희수 옆으로 쪼르르 걸어와 앉는다.

재이
탈출이라뇨?
희수
어떻게 해서든 여길 벗어나야 할 거 아냐? 니는 이대로 끌려가서 평생 다리 벌리고 살래?
재이
(철문을 가리키며)하지만, 저렇게 문이 굳게 잠겨 있는데…….

문이 열리며 해훈의 부하 두 명이 거대한 대야 두 개를 들고 들어온다. 대야 안에는 대충 비빈 밥이 들어있다. 밥대야를 감금실 한 가운데 내려놓는 부하들.

부하
그리고 화장실 갈 사람?

희수가 벌떡 일어난다. 희수, 재이 쪽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여자 몇 명이 더 따라 일어선다. 여자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부하.

희수
이렇게 하면 일을 못 보잖아요?
부하
대충 손가락으로 부비라.

여자들, 부하들을 따라 나간다. 철문 닫힌다.
다시 철문이 열리더니 부하 한 명이 들어와서 구석에 있던
여자들 밥그릇으로 다가가 밥을 떠먹기 시작한다. 특히 재이는 배가 고팠는지 쑥덕쑥덕 밥을 떠먹는다. 연인인 영서에게도 밥을 떠주는 재이.
민주는 여전히 떨고만 있다. 먹는데 정신 팔려 있던 재이가 민주에게로 온다.
재이
안 먹어요?

여전히 떨고만 있는 민주. 눈에 초점이 없다.

재이
저 희수씨 말대로 뭔가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잖아요. 힘이 생기려면 뭐니뭐니 해도 밥심이 있어야죠. 좀 들라요.

민주, 정말 추운 듯이 몸을 심하게 떤다. 자기 몸을 꼭 끌어안는 민주.

#45. 인신매매선 해훈방(밤)
거북이 세 마리가 나란히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다.
의자에 앉아있던 해훈. 거북이 한 마리를 들어올려 품에 안는다.

해훈
그거 참 유감입니더. 사장님 친구 분이 우리 상품 중에 끼어 있다 이 말씀 아닙니꺼? 그것 참 허허…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동규.

해훈
근데 참 우짜겠습니까? 이미 수량 맞춰서 태국 쪽이랑 계약서 쓴 걸. 사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꺼, 제 모토가 신용거래 아닙니까?

바지를 쥐어짜는 동규. 입이 꿈틀거린다.
해훈, 양동이에서 미꾸라지를 집어 올린다.

해훈
그나저나 김 사장님이 지금 남 걱정 하실 때가 아닙니더. 이 배 도중에 가다가 멈추기라도 하면,

미꾸라지를 잘라 거북이에게 먹이는 해훈. 게걸스레 미꾸라지 살을 씹는 거북.

해훈
많이 배우셨으니까 다 알아들으시겠지요?

동규 고개를 들면,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다.


#46. 인신매매선 로비(밤)
인신매매단들이 로비에 담요를 펴놓고 잘 준비를 하고 있다.
동규도 구석에서 담요를 펴놓고 자려고 한다.
동규 옆에 자리 잡은 꼬마가 동규 베개를 빼앗는다. 동규가 쳐다보자,

꼬마
꼽냐?

혼자서 낄낄대는 꼬마. 옆에 있던 나이 많은 부하들이 다가온다.

부하1
니는 니보다 훨씬 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이고?
꼬마
짬순이지, 나이가 어딨습니꺼?
부하1
호오, 기건 기러네. 어이 그 쪽 양반, 요 꼬맹이가 댁을 지 밑이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짜야겠습니까?

무안하게 피식 웃는 동규.
꼬마
웃었나? 이 씹새가!

꼬마가 덤벼들려고 하자 뒤로 움찔하며 피하는 동규. 그러자 부하들이 웃는다.
부하1
뭐, 어차피 한 배를 탄 마당에 서열 경쟁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함 붙어보소, 까짓 거.

동규, 그냥 어색하게 웃고 만다.

부하1
실실 쪼개지만 말고 함 떠보라니까.

분위기 싸해진다.
꼬마는 의기양양해 하며 복싱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동규, 침을 삼키며 주변 눈치를 본다.
다들 동규를 노려보고 있다.
동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데…….
종호가 로비로 내려오자, 일제히 눕는 부하들.
동규도 눕는다.

꼬마
저 새끼 쫄았어. 형님들도 봤지예?

키득키득 웃는 부하들. 동규, 이불을 뒤집어쓴다.

#47. 인신매매선 감금실(밤)
젓가락을 숨기고 있는 희수.
꼭 껴안고 잠들어 있는 재이와 영서 커플.
민주, 몸을 떨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48. 읍포시 당구장(낮)
기홍의 친구들이 당구를 치고 있다. 정원이 당구장 안으로 들어온다.
정원이 기홍의 친구들 옆으로 바짝 다가서 당구 치는 모습을 구경한다.
친구1, 인기척을 느끼고 정원을 슬쩍 쳐다본다. 정원을 알아보고 기겁하는 친구들.

정원
(큐대 하나를 꺼내들며)내기 한 판 할까?

#49. 해훈의 창고(낮)
텅 비어 있는 창고 안. 정원이 돌아보고 있다.

기홍 친구(소리)
갸야 트러블 그 자체인 인생이지만은, 최근 들어 창고 쪽 해훈이네랑 충돌이 좀 있었습니더. 소문에 의하면 해훈이 금마가 일 좀 벌인다는 말이 돌고 있었기든요? 기홍이 금마가 그거 콩고물 좀 얻어먹어 볼까 하다가 된통 망신 당하고 온 거 같았습니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채찍과 깨진 유리병.
비어 있는 수조.
포대 자루와 나무 상자들.
그리고 구석에 넓게 묻어 있는 핏자국.
정원, 쪼그려 앉아서 손가락으로 핏자국을 문질러 본다. 말라서 긁힌다.
갑자기 일어서서 뒤를 휙 돌아보는 정원.
창고 안에는 아무도 없다.
쌓여있던 나무 상자 하나가 굴러 떨어진다. 그 쪽으로 달려가는 정원.
구석으로 달아나는 고양이 한 마리.
정원,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군가의 시점)주변을 살펴보고 있는 정원.


#50. 인신매매선 기계실(낮)
기계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동규. 발아래 공구들이 널려있다.
인서트 - 조 사장 패들에게 업혀가면서, 동규를 보고 있던 민주의 모습.
동규, 담배를 꺼내는데,
꼬마가 와 있다.

꼬마
씨바… 기계 잘 굴러가게 하라고 태웠더니 만날 구석에 짱박혀 담배만 피는구마…….

담배를 집어넣는 동규.

꼬마
이따 짐 좀 정리할 거 있으니까 밥 묵기 전에 올라온나. 알겠지?

마지 못해 고개 끄덕이는 동규.
의기양양하게 나가는 꼬마.
동규, 다시 담배를 꺼내는데,
갑자기 배가 급정거 하는 바람에 앞으로 넘어질 뻔 한다.
인서트 - 각각 선장실의 선장, 해훈방의 해훈, 감금실의 여자들, 급정거되면서           생긴 반동 때문에 깜짝 놀라는 장면.

동규, 엔진통을 열고 그 안을 살펴본다. 눈살을 찌푸리는 동규. 공구통에서 드라이버를 꺼내어 몇 번 까딱거려 본다. 그러나 곧 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는 동규.

#51. 선장실(낮)
선장이 창밖으로 바다를 살피고 있다.
갑판 위에 몰려 나와 있는 부하들. 종호가 나와서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잠시 후, 종호가 선장실로 들어온다.

선장
배 돌려야겠어.
종호
무슨 말씀이십니꺼?
선장
며칠 내로 비 올 거 같다 아이가. 배가 시원찮게 움직이는데 바다 한 가운데서 태풍이라도 만나면 우짤긴데? 일단 근처 섬에다가라도 대야하는 기라.

종호, 착잡한 얼굴로 선장을 바라본다.

선장
원래 멀리 가는 배에 여자를 저렇게 많이 태우는 거 아닌기라…….

#52. 감금실(낮)
대부분의 여자들이 바닥에 힘없이 드러누워 있다. 민주는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희수와 여자 두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주머니에 젓가락, 볼트 등의 쇠붙이를 챙기고 있는 희수와 여자 둘. 재이가 희수에게 다가온다.

재이
언니, 정말로 여기 나갈 생각이야요?
바깥에는 남자들도 쫙 깔려 있을 텐데!
희수
예서 죽으나, 밖에서 뒤져부리나 마찬가지 아냐?
니들 중에서도 생각 있는 년들은 붙어.

여자들, 희수를 쳐다볼 뿐, 움직이지는 않는다.
바깥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제자리에 앉는 희수와 여자 둘.
철문 열리며, 부하A,B가 들어온다.

부하A
화장실 갈 사람 손들어보고?

희수와 여자 둘이 손을 든다.
부하A,B를 따라 나가는 희수와 여자 둘. 나가면서 남은 여자들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이는 희수.

#53. 화장실 앞 복도(낮)
어둡고 좁은 복도를 줄지어 걸어오고 있는 부하A,B와 희수, 여자 둘.
화장실 앞에서 멈춘다.

희수
(손목의 수갑을 보이며)이거 좀 풀어주면 안 돼요?
부하A
대충 닦고 나와.
여자1
아잉~ 오늘은 좀 특별한 일도 하려고 하지~

여자들이 교태 섞인 몸짓을 짓는다.
당황하는 부하들.
희수
같이 들어갈래?

부하A,B 동시에 침을 꿀꺽 삼킨다.
여자들의 탐스러운 허벅지.
부하들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부하A가 희수의 수갑을 풀어주고 희수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부하B, 재빨리 화장실 문에 귀를 갖다 댄다.
뒤에서 싸늘한 눈초리로 부하B를 보고 있는 두 명의 여자. 품속에서 쇠붙이를 꺼내든다.

#54. 화장실(낮)
부하A, 희수를 벽에 몰아넣고, 숨을 헐떡이며 희수를 애무하고 있다.
젖가슴을 만졌다가,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목을 물다가 정신이 없다.

희수
밑에도…….

부하A, 무릎을 꿇고 앉아서 희수의 바지를 벗기고 허벅지 사이를 애무하기 시작한다.
품속에서 뾰족하게 간 젓가락을 꺼내는 희수. 힘껏 내지른다.
부하A의 목에 깊숙이 꽂히는 젓가락.
부하A의 목에서 튄 핏물이 희수의 옷자락을 붉게 물들인다.
희수가 화장실 문 열면,
부하B가 목 뒷덜미에 피가 흥건한 채로 죽어 있다. 피로 손이 범벅이 된 여자 둘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부하B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희수
빨리 움직여!

여자들의 등을 떠미는 희수. 여자들 그제야 달리기 시작한다.

#55. 식당(낮)
설거지 하고 있는 동규.
식탁에 앉아서 엠피쓰리를 듣고 있는 꼬마. 이어폰 빼고, 일어선다.
동규에게로 다가가 동규 뒤통수치는 꼬마.
동규, 물 끄고 인상을 팍 쓴다.
꼬마가 동규의 엉덩이를 만지기 시작한다. 동규,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꼬마가 동규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동규의 지갑을 꺼낸다. 지갑을 들춰보는 꼬마.

꼬마
오우 여자잖아!

지갑 속에서 사진 꺼내는 꼬마.
민주와 동규가 나란히 함께 찍은 사진이다.

꼬마
니 깔따구가? 반반하네. 근데 어디서 많이 봤다 아이가.

동규, 사진을 다시 빼앗아 오려고 하는데,
꼬마, 지갑은 싱크대에 던지고, 사진을 들고 밖으로 달려 나간다. 동규, 머리를 쥐어뜯는다. 고무장갑을 거칠게 벗어 던지고, 꼬마를 쫓아 달리는 동규.

#56. 복도(낮)
깔깔대며 달아나는 꼬마.
무서운 표정으로 꼬마를 쫓아가는 동규.
꼬마, 동규를 놀리며 달리고 있는데,
여자들과 마주친다.
피로 손과 옷이 흥건한 희수와 여자들. 손에는 쇠붙이까지 들고 있다.
꼬마, 뒷걸음질 친다.

희수
이런 꼬맹이도 있었네?

희수와 여자들 묘한 미소를 지으며 꼬마에게 다가온다.
꼬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친다.
꼬마의 손에서 사진이 떨어진다.
꼬마 달아나려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넘어진다. 퇴로를 막고 서 있는 희수.

꼬마
이런 씨발!

희수에게 달려드는 꼬마. 그러나 꼬마의 주먹을 여유있게 피하고, 꼬마의 몸통과 얼굴에 주먹을 꽂는 희수. 꼬마,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발로 꼬마의 얼굴팍을 까는 희수. 여자들이 다가와 꼬마를 밟는다.
이 때 동규 등장. 일제히 동규를 쳐다보는 여자들. 동규, 얼빠진 얼굴로 여자들을 바라본다. 씨익 웃으며 동규에게 다가오는 여자들. 동규, 한 걸음씩 물러선다. 희수가 번개같이 달려들어 동규의 안면을 강타한다. 쓰러지는 동규.
희수의 발길질이 이어진다.

희수
뒈져! 뒈져!
악에 받쳐서 동규를 때리는 희수.
바닥에 쓰러져 밟히고 있던 동규가 갑자기 눈을 부릅뜬다.

동규
씨발!

동규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뒤로 쓰러질 뻔 한 희수.
동규가 희수에게 덤벼든다. 희수 능숙한 솜씨로 동규를 피하고 주먹을 꽂으려고 하는데,
동규가 자폭하듯이 희수를 덮쳐 바닥에 나뒹구는 두 사람. 동규 희수 위로 올라타서 파운딩 하듯이 희수의 안면에 주먹 세례를 퍼붓는다.
희수, 곧 의식을 잃지만, 미친듯이 희수를 구타하는 동규. 미친 사람처럼 웃음과 숨소리가 뒤섞인 소리를 내면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동규. 여자들과 꼬마 경악하여 그 모습을 지켜본다.
피떡이 되어 실신한 희수. 동규, 일어선다. 두 주먹에는 희수의 피로 범벅이다.
실실 웃으면서 여자들에게로 다가오는 동규.

동규
내가 호구로 보이지?

여자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친다. 꼬마도 같이 물러선다.
천천히 다가오는 동규.
여자들, 끝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흐느끼기 시작하는 여자들.
동규, 구석에 있는 꼬마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꼬마, 얼어서 차렷 자세를 취한다. 그러다, 뒤로 달려가 재빨리 사진을 주워가지고 온다. 동규에게 사진 내미는 꼬마.
동규, 꼬마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꼬마의 어깨를 주무르는 동규. 동규의 손은 꼬마의 어깨에서 목을 거쳐 꼬마의 얼굴로 올라간다. 꼬마의 얼굴이 동규 손에 묻은 피로 범벅이 된다. 그러나 꼼짝 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는 꼬마.
부들부들 떨고 있는 꼬마의 다리.

#57. 로비(낮)
부하들이 정렬해 있다.
그 앞에 서 있는 해훈. 해훈 옆에는 종호가 서 있다.
구석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안경, 닥터 최.
해훈이 천천히 부하들 주변을 한 바퀴 돈다. 해훈이 자기 앞을 지나가면 잔뜩 긴장하는 부하들.
반대편 벽 쪽에 앉아있는 동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해훈
던지라.

부하들, 일제히 해훈에게 주목한다.

해훈
그 머리 짧은 가시나랑 뒈진 놈들 다 바다에 던지라고.
부하들
예!
해훈
뭐해?
부하들
?
해훈
움직이라.

일제히 각 방향으로 흩어지려고 하는 부하들.

해훈
됐다. 두 세놈만 가면 되는 기 아니가? (맨 뒷 쪽 부하들에게 손가락질하며) 그래, 니들 둘이 가서 처리해라. 깊숙이 잘 던지야 한다. 알겠나?

해훈, 종호와 함께 부하들을 지나쳐 나간다. 나가는 길에 동규에게 다가가는 해훈.

해훈
보기보다 성깔 있으시네. 가시나 완전 씹창 내놨던데, 보고 놀랐시오.

고개 숙이고 있는 동규.
해훈, 씨익 웃고는 퇴장한다.
부하들이 그제야 긴장을 풀고 하나씩 바닥에 앉는다.
동규가 고개를 든다. 꼬마와 눈이 마주친다. 꼬마, 황급히 눈길을 피한다. 그걸 본 부하1이 건들거리면서 꼬마 옆으로 다가온다.

부하1
이 새끼 어제까지만 해도 지 밑이라고 개지랄 떨더니만 아주 기가 팍 죽어부렸네. 아이야! 니도 쳐 맞았나?

부하들이 킥킥 거리며 웃는다. 그러나 여전히 얼어서 동규의 시선 외면하고 있는 꼬마.
부하1, 동규에게 다가온다.
부하1
한 계단 오른 거 축하하오. 가시나 좀 패고 하더니 자세도 달라졌어. 이 양반 다리 쫙 벌리고 앉은 거 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지는 부하1.
동규가 앉고 있던 의자를 들고 쓰러진 부하1에게로 달려가 의자로 내리친다.
두더지 때려잡듯이 의자로 부하1을 찍는 동규.
다른 부하들, 할 말을 잃고 그 모습을 쳐다본다.
한 참을 때리고 나서야 의자를 내려놓는 동규. 수라와 같은 얼굴.
아래서는 피떡이 된 부하1이 ‘어버어버버버…’거리고 있다.
부하들 사이를 지나서 나가는 동규. 부하들, 동규가 다가오자 재빨리 뒤로 물러난다. 동규가 나가자, 그제야 부하1에게 달려가 상태를 돌보는 부하들.

#58. 갑판대(낮)
희수의 손가락이 꿈틀거리고 있다.
희수의 양 팔과 양 다리를 들고 번쩍 들어 올리는 부하 두 명.
소리는 나지 않지만 입모양으로 뭐라 중얼거리는 희수.
배 밖으로 희수를 던지는 부하 둘. 풍덩!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솟구친다.

#59. 기계실(밤)
동규가 의자에 앉아있다.
인서트 - 동규가 각각 희수와 부하1을 때리는 장면.
주먹을 쥐어 보이는 동규. 한 번 씩 허공을 향해 휘둘러본다. 주먹 속도 점점 빨라지더니, 마치 미친 사람처럼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는 동규. 주먹질을 멈추고 나자, 갑자기 큰 소리로 웃는다. 배를 붙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계속 웃는 동규.
기계실로 들어오는 해훈과 종호.
데굴데굴 구르며 웃고 있는 동규를 보고, 잠시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가,
동규가 해훈을 보고, 진정시키면서 일어서자, 다시 동규에게로 간다.
동규가 해훈과 마주본다.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동규.
해훈이 손짓하자, 뒤에 있던 종호가 해훈에게 채찍을 건넨다. 동규에게 채찍을 내미는 해훈.

해훈
두 사람 비어서 일손이 모자랍니더.

동규, 마른 침을 삼킨다.
씨익 웃는 해훈.

#60INS 배 위(밤) -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60. 감금실(밤)
희수와 함께 탈출 시도 했던 여자들이 눈에 초점이 풀린 채로 벽에 기대어 앉아있다.
재이, 영서 커플이 그들을 돌보고 있다. 밥을 떠서 먹여주려 하지만 반쯤 넋이 나가 있는 여자 둘.

재이
대체 사람을 어떻게 했길래 이 지경이 된 거야…….
영서
어떤 놈인지 몰라도 악마가 틀림없어.

민주가 일어서서 여자 둘에게 다가온다. 여자들의 눈동자를 골똘히 바라보는 민주.

재이
왜, 자기 특별히 무슨 수라도 있어?

민주, 여자의 품을 뒤져서 쇠붙이를 찾아낸다. 쇠붙이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다.

영서
아우, 징그러.

민주, 쇠붙이를 이리저리 살피는데,
감금실 문 열리는 소리. 여자들 긴장해서 가까이 모여 앉는다.
문이 천천히 열리며 누군가의 발이 들어온다.
민주, 쇠붙이를 떨어뜨리고 만다.
채찍을 들고 들어오는 동규. 감금실 안을 둘러보다가 탈출했던 여자 두 명을 본다. 동규,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여자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선다.
민주, 충격으로 얼어붙는다.

#61. 해훈의 창고(밤-낮)
나무 상자 위에 앉아있는 정원. 밤에서 시작해 아침이 된다.
여전히 텅 비어 있는 창고 안.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는 정원.
아무도 오지 않는다.

#62. 읍포 거리(낮)
토스트를 먹으며 걸어오고 있는 정원. 연신 하품을 해댄다.
정원, 토스트 포장지를 구겨서 전봇대 옆 비닐에 던지는데,
전봇대에 붙어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전단지에 눈길이 간다.
옆에 담벼락에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실종된 사람을 찾는 전단지가 여러 장 붙어있다. 전부 여자들의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원.
인서트 - 사창가에서 본 적이 있는 조선족 매춘부 재이의 사진.

#63. 윤락가(낮)
빨간 집 사이를 걸어오고 있는 정원. 예전에 재이를 만났던 집 앞에서 멈춘다. 빨간 집 쪽으로 다가가 그 안을 유심히 살펴보는 정원.
안쪽에서 나이 든 매춘부 한 명이 나온다.

매춘부
놀다 가시게?
정원
(경찰 신분증을 보인 뒤, 재이 사진 붙은 전단지를 보이면서)이거 이 가게에서 붙인 겁니까?
매춘부
글쎄... 쟤네들 살던 집 주인이 붙인 거 아닌지 모르겠네...
우리는 특별히 포주들이 관리하는 게 아니라서... 여기는 아무 때고 흘러들어오고 아무 때고 나가버리는 게 다반사니께...

#64. 재이가 살던 집(낮)
대문을 사이에 두고 50대 중년 부인과 정원이 마주보고 서 있다.

중년부인
자매인지... 자매치고는 둘이 얼굴이 딴 판이고... 아무튼 맨날 붙어 지내는 거 보면 보통 사이는 아니었을 깁니더. 집세도 잘 내고, 인사성도 바라서 맘에 들었는데 잠깐 나간다고 하고 나가서는 일주일 넘도록 안오고 있으니 걱정 돼서 찌라시라도 붙인 기지...
정원, 재이와 영서가 함께 껴안고 찍은 사진을 들고 있다.

#65. 경찰서(밤)
정원의 책상에 실종자를 찾는 전단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전단지를 복사해서 철하고 있는 정원. 지나가던 형사가 그것을 보고,

형사
하이고~ 웬일입니꺼?
정원
(전단지 한 장을 형사에게 건네며)이 동네 이런 거 사방에 붙어있던데 어떻게 된 거야?
형사
아~ 이 동네가 원래 어중이 떠중이들이 많이 들락날락 거립니더. 조선족들도 오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오고, 돈 날리고 집 날리고 몸뚱아리 밖에 안 남은 가시나들은 죄다 여기 거칠 깁니더. 원래는 신경도 안 썼는데, 하도 많아지니까 요새 위에서 지랄하는 기지.
정원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한 두 명도 아니고.
형사
모, 대부분 국적도 없고, 있어도 없는 기나 다름없는 신세들이 많아서 다들 별로 신경 안씁니더. 대부분이 돈 떼먹고 달아나는 경우라...

형사, 정원의 책상으로 온다. 맨 위에 올려진 전단지를 집어든다. 흐릿하게 복사된 흑백사진에 ‘나민주 - 26세 가량’이라고 적혀 있다.

#66. 선장실(밤)
창밖으로 비가 쏟아지고, 파도도 출렁이고 있다.
선장실에 모여 있는 해훈, 선장, 종호, 닥터 최.

해훈
이틀은 배 고장나서 잡아먹어 부리고, 이틀은 이 개같은 비 때문에 발이 묶여버린기라. 태국 놈들한테는 연락 때렸나?
선장
아무래도 배 돌리는게 좋을 거 같심더.
해훈
그게 무슨 소리가?
선장
불길합니더. 이 배가 원래 시원찮긴 했지만 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덜컥덜컥 멈추고 한 적은 없었심더. 게다가 장마철 다 끝났는데 비까지...
해훈
집어치라.
종호, 니는 동규 그 새끼 닦달해서 배 다시는 이런 일 없게 만들라. 알았나?
종호
네.
해훈
그리고 닥터 최.

닥터 최가 해훈을 바라본다.

해훈
니는 이렇게 배 묶여 있을 때 짬내서 쌍판 후진 가시나들 수선 좀 해도고.

닥터 최, 이를 드러내고 배시시 웃는다. 눈살 찌푸리는 선장.
#67. 식당(밤)
부하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다들 구석에 앉아서 먹고 있는 동규 눈치만 보고 있다.
동규, 다 먹고는 일어서서 식판을 들고 싱크대로 간다.
싱크대에서 설거지 하고 있는 부하1과 꼬마.
싱크대 속에 식판을 던지고 나가는 동규.
식당문 닫히자, 부하들 “씨발...”, “좆같네...”등등 궁시렁거린다.
갑자기 문 확 열리며 동규가 들어온다.
일제히 입 다물고 긴장하는 부하들.
동규, 자기 자리에 둔 야구 방망이 들고 다시 나간다.
식당 문 닫히자 한숨 내쉬는 부하들.

#68.  감금실(밤)
영서가 재이의 무릎을 배고 누워있다.

재이
머릿결 다 상했네...
영서
건드리지 마라. 찝찝해 죽겠다.
재이
여기 붙은 것만 좀 띠고...

재이, 영서의 머리카락 사이에 붙은 이물질을 떼어준다.
옆에 가만히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민주.

재이
(민주에게)언니는 밥도 안 먹는데 어찌 그리 피부가 뽀얗대요?
민주
(쑥스럽게 웃는다.)
실례지만... 조선족이세요?
재이
돈 벌려고 서울에 왔다가 어찌어찌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시오.
민주
한국... 살기 힘들죠?
재이
(웃는다. 왠지 슬퍼 보이는 웃음.)
얼굴이 이래서 고생 좀 했시오...
그래도 여기 안 왔으면 우리 아기 못 만났을 기니까...

영서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재이. 미녀는 어느 새 잠들어 있다.
철문 열리며 동규 들어온다. 화들짝 놀라는 여자들.
동규 손에 들려 있는 야구방망이.
민주, 증오 어린 눈으로 동규를 노려본다.
동규, 여자들을 한 번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민주에게로 다가와 민주의 손목을 붙잡는다.
민주를 데리고 나가는 동규. 그런 민주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여자들.

#69. 인신매매선 창고(밤)
허름한 박스 위에 앉아있는 민주.
그 앞에 동규가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는 동규.
초조한 눈초리로 동규를 쳐다보고 있는 민주. 민주,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동규
고의가 아니었어요.
민주
......
동규
이런 일인 줄 정말 몰랐어요. 저는 빚 때문에 협박을 못 이겨서 아무 것도 모르고 여기 탔던 거예요. 그런데 설마 이런데서 민주 씨를 만날 줄은…….
민주
…그 여자를… 어떻게 한 거예요?
동규
먼저 공격당한 건 나예요!
민주
죽일 필요는 없었잖아요! 동규 씨는 남자인데!
동규
내가 죽인 거 아니예요. 분명히 살아 있었다구요!
민주
그런데 왜 그런 걸 들고 자꾸 들어오는 거죠?

인서트 - 동규 옆에 벽에 세워져 있는 야구 방망이.

동규, 뭐라 말 하려고 하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한 참 후에야,

동규
민주 씨. 잘 들어요. 나는 여기를 탈출할 거예요. 민주 씨를 데리고. 여기서 벗어나려면 일단 저들의 눈을 속일 수밖에 없어요. 저놈들로 하여금 내가 자기들 편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구요.

민주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핑그르르 돈다. 고개 돌리는 민주.
동규, 민주 앞에 무릎 꿇고,

동규
나를 믿어줘요. 네? 지금 내가 이러는 건… 나도 어쩔 수 없어서예요. 결코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창고 문 열리는 소리. 벌떡 일어서는 동규. 종호가 들어온다. 종호, 동규와 민주를 번갈아 쳐다본다. 종호가 날카로운 눈으로 동규를 쳐다본다.
갑자기 동규, 민주의 뺨을 후려친다. 민주, 증오와 놀라움 섞인 시선으로 동규를 쳐다본다. 민주의 뺨을 한 대 더 세게 후려치는 동규.

동규
요새 하는 짓이 심상치 않길래. 데려다 놓지요.
종호
지가 하겠십니더.

종호, 민주를 들쳐 업고 간다. 안타깝게 민주를 쳐다보는 동규. 그러나 민주는 동규 쪽을 보지 않는다.
고개 숙이는 동규. 의자를 주먹으로 내리친다. 고함을 지르더니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리는 동규.

#70. 감금실(밤)
철문 열리고 민주 들어온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영서가 민주에게로 달려와 매달린다.
영서
언니, 재이 어떻게 됐어요?
민주
왜?
영서
재이도 놈들한테 끌려갔어요.

주저앉아서 재이를 부르며 우는 영서.
옆에 있던 나이 든 여자가 영서를 감싸 안으며,

여자
안경 쓴 놈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똘마니들이 돼지 끌고 가듯 끌고가 부렸다.

민주, 불안한 눈으로 철문 쪽을 돌아본다.

#71. 인신매매선내 수술실(밤)
장갑을 끼고 있는 닥터 최.
간이 야전 침대 위에 사지가 묶인 채로 떨고 있는 재이.
닥터 최가 재이의 눈을 두건으로 가려준다.

닥터 최
깨고 나면 예뻐질 거야.

재갈이 물린 재이의 입 사이로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전등을 키는 닥터 최.
닥터 최의 손에 들린 메스가 빛을 받아 섬뜩하게 빛난다.

(시간 경과)

부하들이 수술실로 들어온다.
수술실 바닥이 피로 흥건하다.
닥터 최의 가운 역시 피로 범벅이 되어 있다. 닥터 최 천천히 뒤돌아본다. 부하들 흠칫 뒤로 물러선다.

닥터 최
(싱글벙글)오랜만에 했더니 잘 안 되네.

침대 위의 재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72. 감금실(밤)
부하들이 바닥에 하얀색 천으로 돌돌 맨 재이의 시체를 내려두고 나간다.
영서, 오열하면서 재이의 시체를 껴안는다.
영서, 천을 들추고 안을 들여다본다.  충격 받아 피익 쓰러지는 영서.
민주와 다른 여자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체에 다가갈 생각도 못하고 시체를 보고만 있다.
현기증이 나는지 머리를 손으로 감싸는 민주.

인서트 컷 - 소녀가 중년의 남자와 손잡고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뒤돌아보는 소녀. 두 눈에 불안감이 가득하다. /

민주, 바닥을 손톱으로 긁는다.

#73. 읍포시 경찰서(낮)
반장이 자리에 앉아있고, 정원이 그 앞에 서서 보고 하고 있다.

정원
최근 수개월 사이에 읍포 시내 업소에서 일하는 불법체류 여성 및 신원불명의 여성 다수가 실종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일련의 실종 건들이 집단 인신매매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장
이봐.
인신매매란 것이 목적이 뭔데?
가시나들 팔고 돈 남기는 거 아이가?

반장, 기홍의 사진을 정원에게 던진다.

반장
이 머스마는 성전환 수술을 받아도 상품가치가 없어 뵈지 않나?
박기홍이 실종 사건 수사하라니까 뭘 하고 돌아다닌 거야?

반장, 혀를 찬다.

#74. 감금실(낮)
여자들이 가운데에 있는 밥 대야로 한 명 두 명씩 다가온다.
구석에서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영서. 민주가 다가온다.

민주
좀 먹어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는 영서.
밥을 한 숟갈씩 떠먹은 여자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자a
뭔가 맛이 좀 변했네? 상한 거 아니가?
여자b
향기도 이상하고... 머스마들이라 간을 잘 못 해서 이런가......

민주, 영서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초점이 없는 영서의 눈동자.

#75. 갑판대(낮)
동규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거의 필터 끝까지 탄 담배.
담배를 바다로 던져 버리는 동규. 머리를 양 손으로 쥐어뜯는 동규.
신경질이 나는 듯 소리를 지른다.
발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뒤를 돌아보는 동규. 선장이 패트병과 종이컵을 들고 서 있다.
동규에게 종이컵을 건네는 선장.
종이컵 안에는 막걸리가 들어 있다.

선장
마셔. 이런 데서는 낮술이고 밤술이고 문제 될 거 없지 않겠나.

동규, 막걸리를 죽 들이킨다.

동규
한 잔 더 있습니까?

선장, 동규의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준다. 다시 죽 들이키는 동규.
선장
니는 왜 점마들 하는 짓을 똑같이 따라하게 됐나? 시내에서 까페 했었다문서?
동규
…….
선장
때릴라믄 저 사내새끼들을 때려부려야지. 와 가시나들을 때리노? 안 그러나? 그게 안 되면 나처럼 그냥 가만히 있는 기야.
동규
…….
선장
우리 아직 그리 멀리 온 거 아니다. 배에 달린 보트 타고 잘하면 뭍에 닿을 수 있다.
동규
…!

선장, 조타실로 돌아간다. 선장이 한 말을 곱씹는 듯 생각에 잠겨 있는 동규.

#76. 읍포 시 다리 밑(#34와 동,밤)
젊은 남녀 한 쌍이 다리 밑으로 달려온다. 여자는 애교 있게 달아나는 척 하면, 남자는 여자를 쫓아와 덥썩 잡는다. 여자에게 키스 시도하는 남자, 몇 번 거절하는 척 하다가 키스를 받아주는 여자.
남자, 여자를 수풀 쪽으로 데리고 간다.

여자
여기서?
남자
스릴 있잖아.
다시 진하게 키스 하는 두 사람. 여자, 키스 하면서 뒷걸음질 치다가 무엇엔가 발이 걸린다. 뒤를 돌아보는 여자.
시체가 있다.
여자
꺄아아아아!!!

#77. 읍포시 경찰서(밤)
혼자 사무실 자리에 앉아서 사진들을 보고 있는 정원.
모두 잔인하게 피살된 남자들의 사진이다. 그 중에는 #1의 정신병원에서 살해당한 의사의 사진이 있다.

검시관
(소리)가장 약하고 예민한 목젖 있는 부분과, 양 손목의 동맥 있는 부위가 날카로운 칼에 의해 절단되어 과다 출혈로 숨졌습니다.

 모든 사진마다 뒤로 피로 쓴 X자가 보인다.

플래시 백 - 학교 교실. 교실 문 열고 총을 든 정원이 뛰어 들어온다. 총을 겨                누며 소리 지르는 정원.
            바닥에는 피가 흐르고 있고, 뒷벽에는 크게 피로 X자가 써 있다.
            흐르는 핏물을 밟고 서 있던 살인자, 천천히 등을 돌린다. 얼굴이               보이기 직전에,  //

다시 현재.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 받는 동규.

동규
접니다. (놀라며)네?

#78. 다리 밑 사건 현장(#76과 동/밤)
이미 경찰차가 대기 되어 있고, 출입금지선이 수풀 둘레로 쳐져 있다.
그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가는 순경들.
정원이 수풀 안으로 들어온다. 형사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는 정원.
수풀 사이에 있는 기홍의 시체. 이미 부패가 시작한 상태이다.
목젖과, 양쪽 손목의 동맥 있는 부위가 흉기에 의해 길게 베였다.
정원,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어 문다. 그러나 곧 입에서 떨어뜨린다.

플래시 컷 - 정원이 #77에서 보던 사진 속의 피해자들 클로즈 업. 모두 양 쪽                 손목과 목젖 있는 부분이 길게 베인 채로 죽었다.

검시관(#77에서 나왔던 것과 같은)
(소리)…그리고 남성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는 것인지, 지금까지 모든 피해자들의 성기가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형사
좆탱이가 잘려 나가 있던데요?

정원, 땅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문다. 여전히 손은 덜덜 떨리고 있다. 희미하게 미소 짓는 정원.

#79. 같은 장소(밤)
여자a가 자꾸 고개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여자a의 시점)다른 여자들의 형태가 물결처럼 흐물흐물 거린다.
여자a, 눈을 비비지만,
여전히 형상이 왜곡되어 보인다.
여자b, 힘없이 픽 하고 쓰러진다.
대다수의 여자들이 무언가에 취한 사람처럼 나른한 모습들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일부는 갑자기 피식 웃기도 한다.

소녀 밥을 씹다가 뱉고 만다. 벽으로 돌아서 구토를 하는 소녀.
민주, 다가가서 소녀의 등을 두드려준다.
소녀, 진정이 되자 부끄러운 듯 더 안쪽으로 가서 앉는다. 흐느끼기 시작하는 소녀. 민주도 소녀 옆으로 가서 앉는다.

민주
괜찮아. 부끄러운 거 아냐.
이름이 뭐니?
소녀
소영이요. 전소영.
민주
고등학생?
소영
(고개를 가로젓는다.)
민주
중학생?
소영
(끄덕끄덕)

민주,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고개만 절레 절레 흔든다. 소영이를 끌어안는다.

인서트 컷 - #29에서 나왔던 소녀의 모습. 소녀가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고 있다.
            언니로 보이는 더 큰 소녀가 다가와서 작은 소녀를 안아준다.

초점 없이 멍한 민주의 눈동자.
철문 열리며 부하 갑과 을이 들어와 안의 상태를 살핀다.
실실 웃으며 부하 갑과 을을 쳐다보는 여자 몇 명.

부하 갑
화장실 갈 사람?
요강 찬 거 들고 따라 와.

몇 명의 여자들이 일어선다.
민주
언니, 화장실 좀 다녀올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민주.

#80. 화장실 앞(밤)

부하 갑
확실히 약발이 돋나 본데?

부하 을이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종이봉투를 꺼낸다.

부하 을
나 주사기 하나 꼬불친 거 있는데 우리도 할까?

킥킥 거리며 퇴장하는 부하 갑과 을.
화장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발이 나온다.

#81. 기계실(밤)
기계실에서 남자의 낮은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벽 모퉁이 돌아서면 어둠속에 남자 한 명이 뒤돌아 서 있다.
부하1이 한창 자위행위에 몰입하고 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부하1, 놀라서 행위를 멈추는데,
찍 하고 액체가 바닥에 떨어진다.
안으로 들어오는 누군가의 발.
부하1, 황급히 액체를 발로 닦고 벽 뒤에 몸을 숨긴다.
부하1, 벽에 몸을 바짝 기댄 체 주위를 살피며 살금살금 나가려고 하는데,
부하1뒤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난다.
부하1이 목을 감싸고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실루엣.
#82. 갑판(밤)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다.
우비를 걸친 동규가 배 우 측면 갑판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쳐다보고 있다.
(동규의 시점)배 우 측면에 매달려 있는 구명 보트.

#83. 로비(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들어오는 동규.
해훈을 비롯한 모든 인신매매단이 집합해 있다.
동규, 당황해서 쳐다보면,
부하들이 의혹의 눈초리로 동규를 쳐다본다.

#84. 해훈 방(밤)
해훈이 한 손에는 거북이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유리컵을 들고 침대에 앉아있다.
다른 거북이 두 마리는 침대 위를 기어 다니고 있다.
맞은 편 의자에 앉아 있는 동규. 문가에는 종호가 서 있다.

해훈
뭐, 내도 사장님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더. 그런데 아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하는 거 같아서 그렇지.
동규
진짜로 저는 갑판대에 있었습니다. 증거로 제 몸이 빗물에 젖어 있지 않습니까!
해훈
아, 진정하시고... 내는 사장님을 믿는다니까.
단지 아그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까지는 내도 어쩔 수 없다 아입니까. 생각할 자유는 있는 거니까. 안 그렇소?
동규
......
해훈
따지고 보면 일이 이렇게 꼬인 것도 일정이 늦어져서 그런 기지. 원래는 지금쯤 진작 우리 해역 벗어나고도 남았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동규
그건 비 때문에…

해훈이 들고 있던 유리컵이 동규 머리 옆을 지나 뒷벽으로 날아가 깨진다.

해훈
두 번 다시 배가 가다 멈추고 해버리면… 진짜 재미없을 줄 아소.

동규, 고개를 돌린다.
유리 파편이 바닥에 흐트러져 있다.
해훈
사장님 인생은 내 손에 달려있다는 거 잊지는 않았겠죠?

아랫입술을 질끈 깨무는 동규.

해훈
나가보소.

동규, 나간다. 침대 위로 가 눕는 해훈. 거칠게 셔츠를 벗는다.
해훈
밖에 종호 있냐?

문 열리면서 종호가 들어온다.

종호
부르셨습니꺼.
해훈
아까 내가 가시나 하나 빼 놓으라고 했던 거 일로 데려온나.
종호
네.

종호, 나간다.
해훈, 바지도 벗는다.

#85. 기계실(밤)
종호와 부하 세 명이 들어온다.
벽 모퉁이 돌아서 들어오면,
부하 1이 눈을 뜬 채로 벽에 기댄 자세로 죽어 있다. 그 뒤로 피로 쓴 커다란 X자.
종호, 눈살을 찌푸린다.

#86. 식당(밤)
부하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조사장 패들과 선장도 있다.

부하c
씨발... 니들도 시체 봤나?
부하d
동맥 다 끊기고, 자지도 다 잘려나갔다드라. 어떤 자슥이 그런 일 저지른 건지... 이 안에 있을 거 아니가?
부하c
동규 그 자식 아니겠나? 우리 중에 누가 또 그럴라고?
부하e
그 새끼 그 때 가시나 한 번 까더니 돌아가지고 눈탱이도 이상해졌더만…….
선장
                     (소리)
감이 안 좋다.

부하들, 일제히 선장 쪽을 쳐다본다.

선장
화물 나르는 배에 가시나를 저렇게 많이 태웠을 때부터 잘못된 기라. 한 두 명도 아니고…
부하c
세상이 어느 땐데 아저씨는 그런 소리를 하소?
선장
좋은 일 하러 가면 몰라도, 지금 저 가시나들 한 명 한 명이 가슴속에 얼마나 큰 원혼이 사무쳤겠노? 우리가 죽여서 바다에 던진 아도 있지 않더냐?

부하들, 입을 꾹 다문다.

선장
지금이라도 배 돌려야 하는데 말이다…….

선장, 일어나서 식당 밖으로 나간다.
부하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눈치만 본다.

#87. 감금실(밤)
여자들이 널부러져 자고 있다.
민주가 구석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소영이가 늘 앉아있던 자리에는 소영이의 가방만 있다.
민주 현기증이 나는지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털썩 주저앉고 마는 민주.

#88. 읍포시 경찰서(낮)
정원이 통화중이다.

정원
확실하다니까요! 목젖이랑 양 쪽 손목 자르고, 남자 성기 훼손시키고.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지만 이건 그 녀석이 틀림없어요!
아 진짜! 3년을 쫓아다닌 접니다! 그렇게 못 믿겠어요?
지원 안 해주실 거면 끊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 게요. 꼭 체포해서 올라갈 테니까 자리나 비워두십쇼. (전화 끊는다.)
옆에 있던 형사가 정원에게 보고서 건네며,

형사
뭡니까? 다짜고짜 범인을 알아냈다니?
정원
3년 전 서울에서 있었던 연쇄 살인사건 기억하나?
형사
아~ 용의자가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던?
정원
그 사건 담당이 나였어.

형사, 다시 보았다는 얼굴로 정원을 쳐다본다.
정원의 프린터에서 종이 한 장이 출력된다.

정원
이게 녀석의 얼굴이야.

형사, 종이를 받아들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89. 바다(낮)
인신매매선이 가고 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해경함이 보인다.
갑판대에 서서 인신매매단을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는 해경.

#90. 선장실(낮)
벽을 쾅 때리는 해훈의 주먹.
해훈, 이를 갈고 서 있다.

해훈
조사장 이 개노무 시키!
선장
허가 없이는 통과할 수 없습니더.

종호, 안절부절 못하며 해훈 옆으로 다가온다.

종호
죄송합니다. 조 사장이 넘긴 서류는 분명히 하자가 없었습니더. 그런데 놈이 이면 서류를 작성하여 우리를 속인 거 같습니더.

해훈,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91. 감금실(낮)
영서가 허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여전히 초점 없는 눈빛.
옆에서 쳐다보고 있던 민주가 살며시 다가온다.

민주
뭐가 있어요?
영서
내 손톱 날카로워요?

영서의 손톱은 날카롭다.

영서
이걸로 목줄을 끊을 수 있을까?
민주
!
영서
일단 목줄을 끊은 다음에... 얼굴을 다 긁어놓을 거예요. 어떤 소리가 날까...

민주, 영서를 포옹한다. 포옹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면,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보고 있는 여자들.
   
#92. 로비(낮)
조 사장 패 셋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지나가던 부하 서넛이 와서 같이 담배를 얻어 피운다.
이번에는 종호가 부하 몇몇과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본다.

종호
어이 거기! 담배 안 끄나?

원래 해훈 쪽이었던 부하들은 쭈뼛쭈뼛 거리며 담배를 버리지만, 조사장 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담배를 피운다.

종호
미쳤나? 이것들이?
놈1
와? 띫나?

종호,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

놈1
내도 다 들었거든? 회황조치 당했다며?
한 몫 크게 잡게 해준다고 해놓구서 이게 뭐꼬? 우리나라 근처만 계속 뺑뺑뺑 돌다가 좆도 못하고 돌아가부리는 거 아니가?
종호
니가 죽고 싶구마?

종호,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든다.

놈1
(움찔하면서도)씨바… 니는 툭하면 사시미질이가?
그래. 찔러라 찔러. 하지만 니들도 대가리 굴려보라고. 우리 이대로 돌아가부리면 무사할 거 같나? 한두명도 아니고 가시나들 수십명 납치해왔는데 어떻게 수습할 긴데? 아?

부하들, 놈1에게 동조하듯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다.
놈1과 조 사장 패들, 기세등등해서 종호에게 슬금슬금 다가온다.

놈1
까놓고, 니는 대가리도 아닌데, 와 그리 설치노? 니도 좆된 건 마찬가지 아이가? 니 좆 되면 니 대가리가 뒷감당 대신 해줄 거 같나?

둔탁한 물체가 날아와 놈1의 뒷통수를 맞춘다.
눈이 까져서 절명한 놈1.
물체가 날아온 곳에 해훈과 닥터 최가 서 있다.
종호와, 부하들 황급히 대열을 맞춰서 해훈 앞에 선다.
해훈, 조 사장 패 나머지 두 명을 쳐다본다. 움찔해서 뒤로 물러나는 놈들.

해훈
닥터 최, 저 두 아그 면상이 조까 민망해. 보고 있기가.

닥터 최, 씨익 웃는다.
공포에 질린 얼굴이 된 조 사장 패 둘.

#93. 읍포시 경찰서(낮)
형사가 짜장면을 먹고 있고, 정원은 옆에서 수사 자료를 정리 중이다.

형사
그런데 대체 어떤 미친 놈이길래 그렇게 찢어발기려고 하시는 겁니꺼?
정원
…….
형사
존나 변태 같던데......
정원
(나즈막한 목소리로)죽은 놈들도 똑같지.
형사
뭐요?
정원
남자를 죽이긴 죽이는데… 아무나 막 죽이는 건 아니고, 강간범이나, 여성학대 경험이 있는 남자들만 죽였지. 박기홍이 그 새끼도 여자들 막 따먹고 그랬다며.

젊은 형사 한 명이 뛰어 들어온다.

젊은형사
저, 어떤 아가 반 경위님을 뵈어야겠다고 합니다?
정원
나를?

#94. 경찰서 내 심문실(낮)
심문실에 정원과 꾀죄죄한 몰골의 20대 남자가 마주 앉아있다.

남자
(질질 짜면서)
요새 실종된 아가씨들 다 해훈이 네 파들이 납치해서 배에 태우고 가버린 겁니다. 지는 제보만 했으니 별 일 없는 거겠지요?
정원
니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데?
남자
우리 사장님이 조금 개입한 거는 맞습니다만, 지는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해훈이 그 마가 사장님 제껴버린 바람에 도망쳐 다니다가 겨우 맘먹고 여기 온 깁니다! 현상금 그런 것도 다 필요 없십니더! 그저 우리 사장님 편히 쉴 수 있게 그 놈들만 잡아 족쳐주소!

남자, ‘사장님, 사장님’하면서 꺼이꺼이 운다. 조금 과장스럽다.

#95. 읍포시 경찰서(저녁)
정원이 인신매매 수사 파일을 보고 있다. 형사가 온다.

형사
배는 그 죽었다는 조 사장이란 양반이 공급해줬다고 합니더. 아마 허가를 안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회항 조치 당할 기라고 하던데... 그 때까지 기다립니까?
정원
자네 생각에 인신매매가 나쁜 일인 거 같나?
형사
예? 그야 당연히...
정원
존나 개같은 짓 맞지?
형사
다 때려 죽여야죠, 뭐.
상부에도 보고 드렸고, 해경에도 내일 공문 보낼깁니더. 이 개같은 새끼들 다 조져버립시다.
정원
그 전에 끝날 지도 몰라.
형사
네?
정원
그 녀석이라면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끝장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정원, 실종자 신고 목록 파일을 꺼내어 펼친다. 실종자 찾는 전단지가 철해진 페이지들. 사진이 흐릿하게 나온 페이지서 정원, 페이지 넘기는 것을 멈춘다.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대조해 보는 정원.(행동만 보일 뿐, 사진 안에 이미지가 보이면 안 된다.) 얼굴에 놀라움이 번진다.
인서트 - 전단지 아래에 기재된 “00미용실로 연락바람. xxx-3xxx"

#96.  해훈의 방(밤)
해훈이 침대에 누워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종호가 서 있다.

해훈
가서 아무나 좀 반반한 기집애 하나만 데리고 와.

인서트 - 게걸스럽게 먹이를 먹고 있는 수조 속 거북이들.
인서트 - 벽에 걸려 있는 채찍.

해훈의 옆으로 나체의 소영이 쓰러져 있다. 죽은 듯 눈을 뜬 채로 엎어져 있는 소영.

#97. 감금실(밤)
여자들이 손으로 밥을 떠서 먹고 있다.
인서트 - 구석에 몰려 있는 식기들과 기타 쇠붙이들.
여자들, 초점이 없는 눈으로 게걸스럽게 밥을 먹고 있다. 영서도 미친 사람처럼 밥을 퍼먹고 있다.
민주, 구석에 혼자 앉아서 불안한 눈빛으로 여자들을 보고 있다.
철문 열리며 부하 갑과 을이 들어온다. 여자들을 보고 인상을 쓰는 종호.
종호가 민주를 가리킨다. 부하 둘이 민주에게로 달려들어 민주를 일으켜 세운다.
민주 끌려 나가면서 뒤를 돌아본다. 실실 웃으면서 나가는 민주를 보는 영서.

#98. 복도(밤)
누군가가 소리를 죽이고 걸어가고 있다.
손에는 부엌에서 쓰는 칼이 들려 있다.
동규이다.
저장고 앞에 멈춰 서서 안쪽을 바라보는 동규.  부하 한 명이 물품 정리를 하면서 흥얼거리고 있다.
동규, 달려가서 부하의 등을 찌른다.

(시간 경과)

기름통을 들고 나오는 동규.

#99. 기계실(밤)
기름통을 들고 들어오는 동규.
모퉁이를 돌아서 안쪽부터 기름을 부으려고 하는데,
부하1이 죽었던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죽어 있는 부하 갑,을.
동규, 기름통을 떨어뜨리고 휘청거린다.
정신을 차리고 기름통 들고 나가는 동규.

#100. 식당(밤)
부하들 술과 약에 취해서 서로 얼싸안고 춤추며 난리도 아니다.
하나 둘씩 술병 들고 흩어지는 부하들.

#101. 해훈방 앞(밤)
종호가 문을 지키고 서 있다. 희미하게 채찍 소리와 해훈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102. 감금실 앞(밤)
꼬마가 달려온다. 감금실 앞에 아무도 없자 두리번거리는 꼬마.
감금실 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는 것이 보인다.
감금실 문을 밀고 안을 들여다보면,
아무도 없다.
꼬마, 낭패라는 표정을 짓는데, 갑자기 억! 하며 앞으로 쓰러진다.
꼬마의 목에 젓가락이 꽂혀 있다.
영서가 실실 웃으며 꼬마를 내려다보고 있다.
인서트 - 복도를 달려가는 여자들의 다리.

#103INS 해경함(밤)
위에 올라타는 해경들과 형사들. 정원도 있다.
#103. 해경함 조타실(밤)
정원이 부들부들 떨면서 서 있다.
손에 들고 있는 담배에 재가 길게 달라붙어 있다가 툭 하고 떨어진다.

#104. 복도(새벽)
동규, 복도에 기름을 뿌리고 있다. 기름 위에 불씨를 떨어뜨리고 어둠 속으로 달려간다.

#105. 감금실 앞(새벽)
동규가 달려온다. 감금실 앞에 꼬마의 시체를 보고 뒤로 물러선다.
동규, 공포에 질린 눈으로 감금실 안쪽을 보면
(동규의 시점) 안에는 아무도 없다.
동규, 품속에서 칼을 꺼내어 쥐고 반대편으로 돌아서 달린다.

#106. 해훈의 방(새벽)
종호,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디론가로 달려간다.

#107. 선장실(새벽)
선장이 의자에 앉은 채로 죽어있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다.

#108. 수술실(새벽)
침대 위에 닥터 최가 사지가 묶인 채로 고정되어 있다.
일그러진 닥터 최의 얼굴.
영서를 비롯한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흉기를 들고 다가온다.
닥터 최의 몸을 흉기로 난도질하기 시작하는 여자들.
핏물이 허공으로 무수히 튀어 오른다.

#109. 해경함 갑판대(새벽)
점점 아침이 다가오고 있다.
정원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손에는 사진 한 장을 들고 있다.
#110. 해훈의 방
해훈, 채찍을 침대 위로 던진다.
창틀에 매달려 있는 민주.
해훈, 바지춤을 내린다.
침대 위에 소영이가 엎드려 있다. 그 위로 올라타는 해훈. 미친듯이 피스톤 운동을 한다.
소영, 동공이 풀려 있어서 신음소리 조차 내지 못한다.
입에서는 거품처럼 침이 흘러나온다.
민주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도 눈이 풀려 있다.

<교차편집>
인서트 컷 - #109의 정원. 들고 있던 사진을 꾸긴다./
인서트 컷 - 정원의 회상. 조회대에서 경찰청장에게 경례를 붙이고 있는 여경의 뒷              모습. 경찰제복을 입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 정원./

눈이 풀려 있는 민주.
(민주의 시점) 격렬하게 피스톤 운동을 하고 있는 해훈.

인서트 컷 - #29에서 나왔던 작은 소녀가 침대 위에서 엎드린 채로 울고 있다.
            소녀의 몸 위에는 중년의 남자가 올라타서 짐승처럼 피스톤 운동을 하              고 있다. 문가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어린 민주./

(민주의 시점) 짐승처럼 소리를 내고 있는 해훈. 죽은 듯 가만히 있는 소영.
눈에 점점 빛이 돌아오고 있는 민주.

인서트 컷 - #109의 정원. 주먹을 쥐었던 손을 들어 올려 편다.
인서트 컷 - 정원의 회상. 교실이다. 교실 문 박차고 들어오는 정원. 총을 겨눈다.
            교실 뒤 벽에 피로 X자가 써 있고, 그 앞에 한 여자가 살해된 남자의              시체를 밟고 서 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여자. 민주다.
인서트 컷 - #109. 정원의 손에 구겨진 민주의 사진./
           
민주, 손에 쥐고 있던 면도칼로 손목에 묶여있는 끈을 자른다.

인서트 컷 - #31과 #32 사이의 시점. 기홍이 입을 딱 벌린 채로 부르르 떨고 있              다. 기홍의 목에 붉은 줄이 그어 있다. 기홍의 머리채를 붙잡고                 서 있는 민주. 다시 한 번 기홍의 목을 내리친다.

해훈의 목에 붉은 줄이 그어 있다. 붉은 줄에서 피가 조금씩 튀더니 분수처럼 피가 쏟아진다.
바닥으로 널부러지는 해훈의 사체.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해훈의 시체를 물끄러미 내려보는 민주.
소영을 일으켜 세우는 민주. 소영을 보듬어 안는다.

민주
힘들었지?
소영
(끄덕끄덕)
민주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언니가 너한테 힘을 줄게.
소영
(멍하니)

소영의 귀에 귓속말로 말하는 민주. 소영, 눈에 빛이 돌아오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미소 짓는 민주.
바닥을 기어 다니던 거북이가 해훈의 시체로 다가온다.

#111. 로비(아침)
해가 거의 밝았다. 그러나 안개 때문에 비가 올 날씨처럼 어둡다.
부하 한 명이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깬다. 옆을 보면,
동료 부하가 목에 칼이 꽂힌 채로 죽어 있다.
놀라서, 일어나면,
옷이 피투성이가 된 십여 명의 여자들이 칼을 들고 부하를 둘러싸고 있다. 주변에는 다른 부하들의 시체가 서너 구 더 있다.
부하, 공포에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서지만, 벽에 막혀 갈 곳이 없다.

#112. 복도(아침)
동규가 기름을 뿌리고 있다. 맞은편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몸을 숨긴다.
피범벅이 된 한 떼의 여자들이 지나간다.
동규, 여자들이 지나가자, 기름 위에 불씨를 던지고, 달려간다.

#113. 해훈의 방 앞(아침)
동규, 해훈의 방 앞에서 멈춰 선다. 안에 기척을 살핀 뒤 칼을 고쳐 쥐고,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간다.

#114. 해훈의 방(아침)
동규, 안으로 달려 들어온다. 그러다 소스라치며 굳어버린다.
침대 위에 앉은 채로 죽어 있는 해훈. 침대 시트가 온통 피로 물들었다. 해훈 뒤로 벽에 피로 크게 쓴 X자.

민주
                     (소리)좋은 아침이에요.

동규, 덜덜덜 떨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돌린다.
어두운 곳에서 민주가 걸어 나온다. 뒤로 물러서는 동규. 당장에라도 뛰어나가고 싶은 표정이지만 몸이 굳어서 비틀거리면서 물러나는 게 고작이다.
동규, 겁에 질린 눈으로 민주를 쳐다본다.
칼을 쥐고 있는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다.

동규
전부… 지금까지 모든 게 전부…
민주
뭐… 그렇게 따지면 애초부터 나를 납치해온 당신들이 잘 못 한 거죠. 안 그래요?

동규, 벽에 막혀 균형을 잃어 비틀거린다.

민주
동규 씨만 없었어도 나는 깨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동규, 슬그머니 눈을 돌려 퇴로를 확인한다. 문은 활짝 열려있다.
민주, 갑자기 동규에게 손을 내민다.

민주
칼을 내려놔요…

동규, 민주를 한 참 쳐다본다.

민주
예전에는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잖아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동규, 칼을 떨어뜨리고, 천천히 민주의 손으로 팔을 뻗는다.
동규를 바라보고 있는 민주의 눈빛이 흔들린다.
민주의 손을 잡는 동규.
그 순간, 민주의 팔을 잡아 당겨서 벽에 내동댕이치는 동규. 밖으로 달아난다.

#115. 복도
새파랗게 질려서 달아나고 있는 동규.
동규를 쫓아 달리고 있는 민주의 발.

#116. 해경함(아침)
해는 밝았지만 안개 때문에 앞이 훤히 보이지는 않는다.
망원경으로 전방을 살피고 있던 정원.
(정원의 시점) 안개 속에 인신매매선의 선체가 일부 보인다.

해경
(소리)전방에 표적 확인!

#117. 선장실(아침)
종호가 죽어있는 선장을 보고 서 있다. 종호,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면,
해경함이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밖으로 달려 나가는 종호.

#118. 복도(아침)
종호, 달려가는데 불길이 막고 있다. 뒤돌아 서 달리는 종호.

#119. 해훈의 방(아침)
종호, 방 안으로 들어온다.
죽어있는 해훈.
종호, 이를 악물고 밖으로 달려간다.

#120INS. 인신매매선 갑판(아침)
무장한 경찰들과 해경, 그리고 정원이 달리고 있다.
#120. 로비(아침)
정원을 선두로 달려오는 경찰들. 일제히 멈춰 선다.
십여 명의 여자들이 미친 듯이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난도질 하고 있다.
다들 할 말을 잃고 보고 있다가, 정원이 손짓하자,
여자들에게 달려가 여자들을 시체에서 떼어내는 경찰들.
정원, 권총을 장전하고 어둠 속으로 달려간다.

#121. 복도(아침)
어두운 지하 복도를 달리고 있는 동규.
모퉁이 돌아서 계속 달리는데, 누군가가 동규의 뒷덜미를 잡아 넘어뜨린다.
동규, 돌아보면, 종호이다.

종호
니지? 여기다 불 지르고 신고해부린게 니 아니냐고!

동규, 안간힘을 다해 종호를 밀치고 달아난다. 종호, 뒤쫓으려고 하는데,
심상치 않은 인기척에 멈춰 서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대방을 노려본다.
어둠속에서 민주가 나타난다.
민주가 싱긋 웃으며 피 묻은 면도칼을 꺼내 보인다. 종호의 발 앞으로 면도칼 던지는 민주.

민주
이게 누구 피게?

종호, 면도칼을 보고 있다가, 악을 지르며 민주에게 덤벼든다.
민주, 가볍게 종호의 주먹을 피하고, 발로 종호의 낭심을 차서 쓰러뜨린다.
종호, 다시 일어서서, 주먹을 휘둘러보지만,
민주, 옆으로 피하면서 종호의 발을 걸어 쓰러뜨린다.
종호, 바닥에 떨어진 면도칼을 쥐고 민주에게 달려든다.
민주 손날로 종호의 목젖을 때린다. 그대로 앞으로 주저 앉아버리는 종호.
바닥에 면도칼이 떨어진다.
종호, 켁켁 거리며 거칠게 호흡을 몰아쉬고 있는데, 민주가 면도칼로 종호의 목을 베어버린다.

#122. 층계(아침)
층계를 뛰어 내려가고 있는 동규.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민주.
동규, 정색하며 돌아서 위로 올라간다. 민주, 천천히 따라 올라가는데,
위에서 권총을 들고 내려오는 정원. 정원이 동규를 보고 멈칫하지만, 겁에 질린 동규는 그대로 뛰어 올라가 버린다.
정원, 아래층에서 나풀거리는 원피스 자락을 보고 달려 내려간다.

#123. 기계실(아침)
기계실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고 있는 동규.
이미 넋이 나가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다.
주변에서부터 불길이 조금씩 번지고 있다.
동규, 비틀거리면서 일어서는데,
세 명의 칼을 든 여자들이 동규 앞에 서 있다.
동규, 당장에라도 울 거 같은 얼굴이 된다.

#124. 복도(아침)
달려가는 민주. 잠시 후 정원이 뒤따라 달려온다. 바닥에 있는 기름 때문에 미끌어지는 정원. 이를 악물고 다시 쫓아간다.

#125. 보일러실(아침)
정원, 바짝 벽에 등을 기대고 전진한다.
막다른 벽이 보이고, 보일러 탱크와 연료관이 보인다.
탱크를 향해서 총을 겨누는 정원.

정원
이제 그만 끝내야지. 그 동안 징했다, 그치?
인서트 - 연료관 아래 바닥에도 기름이 고여 있다.

정원
따지고 보면, 너를 키운 것도, 너가 이렇게 되게 만든 것도 나지. 그러니까 내가 마침표를 찍어줄게.

정원, 천천히 앞으로 전진한다.
정원의 발이 기름을 밟는다.
갑자기 연료관 아래에서 불이 확 번진다. 정원, 당황해서 뒤로 물러나면,
보일러실 출구 밖으로 달려 나가는 민주의 뒷모습. 정원 황급히 그 쪽을 향해서 총을 발사한다.
불이 삽시간에 번져서 정원에게까지 다가온다.

정원
씨발!

정원, 뒤돌아서서 밖으로 달린다.
폭발하는 보일러실.

#126. 기계실(아침)
피투성이가 된 동규가 바닥에 누워 있다.
옆에는 마찬가지로 여자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다.
동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예전에 민주와 버스에서 함께 불렀던(#24)그 노래이다.

인서트 - 동규의 상상 장면. 유람용 보트 위에 나란히 함께 타고 있는 동규와 민주.
         행복하게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짓는 두 사람.

동규의 위로 불길이 덮친다.

#127. 병원 입원실(저녁)
침대에서 정원이 눈을 뜬다.
형사들이 침대 옆에 서 있다.

형사
하늘이 도와서 살았십니더.

정원, 목과 이마에 붕대가 감겨 있고, 팔에는 깁스까지 되어 있다.

정원
용의자는……?
형사
발견되지 않았습니더. 배가 불타고 폭발하고 난리 쳐 버리는 바람에 여자들이랑 부상자들은 곧바로 뭍으로 보냈습니더.

눈을 질끈 감는 정원.

#128.  응급실(밤)
침대 위에 환자복이 곱게 개여 있다.

#129. 레드클로버(낮)
레드클로버 문이 열린다. 안으로 들어오는 여자의 다리.
천천히 뒷벽 쪽으로 다가가는 여자. 레드클로버 액자 앞에서 멈춰 선다. 품에는 레드클로버 쿠션을 꼭 껴안고 있다.
동규가 불렀던 것과 같은 멜로디를 허밍 한다.

#130. 거리(낮)
화창한 오후.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민주가 쿠션을 안고 걸어오고 있다. 이쪽을 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반대편에서 민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소영.
민주, 소영 앞에 서서 멈춘다. 손을 꼭 잡는 두 사람. 인파 속으로 나란히 사라진다. 

 

스스로에게 유감스럽게도, 저는 나쁜 상상을 자주 합니다. 아니, 가만히 있어도 나쁜 상상이 떠오른다는 편이 맞겠습니다. 눈을 감고 있으면 폭력과, 피와, 분노와, 증오가 펼쳐집니다. 저는 이 때 본 장면을 시나리오에 옮깁니다. 이 시나리오 역시 그렇게 제 나쁜 상상에서 태어난 결과물입니다. 밝고 따뜻한 환경에서 자라온 제가 왜 이런 이야기에 탐닉하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저는 제 머리 속에서 흘러나오는 잔인한 생각을 여과 없이 이 시나리오에 담았습니다.
이 시나리오의 초고를 탈고한 후 수개월 후, 우리나라 장애인 여성을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 유곽에 팔아넘긴 일당이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이상하고도 괴팍한 상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대체 이 세상은 누가 쓰는 시나리오이기에,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니.
혹자의 비난처럼 진지한 성찰도, 탐구의식도 없이 폭력과 피로 버무려진 이 시나리오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던 저는, 그러나 나 자신이 상상하고 떠올린 것이 결코 ‘거짓’이 아닌 ‘실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완성을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나리오가 결코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을 바꾸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비상식적인 폭력의 존재를 알리는데 기여할 수만 있다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저의 졸고에 이렇게 큰 격려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