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연기예술)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무엇을 쓸 것이냐는 질문에 가장 좋아하는 것과 가장 싫어하는 것을 한 바구니에 담아보라는 주문을 한다. 주인공에게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악역에게는 가장 싫어하는 것을 부여하는 순간 작가의 호불호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작가의 대리자아이며 이를 통해 작가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모든 자유를 만끽하기도 한다. 어쩌면 시에서 시나리오에 이르는 모든 글쓰기는 작가 스스로를 담는데서 시작하는 지도 모른다. 작가 스스로가 느끼는 결핍, 목표, 장애물, 갈등 등을 적어본다면 제법 많은 이야기 거리는 물론 작품의 방향도 정확하게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온전하게 표현하는 작업만큼 어려운 작업도 없다.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탐구해야하는 쉽지 않은 단계가 있고, 심층적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남들에게 드러내기 두려운 부분도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자신을 담아야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한다면 그만큼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작업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 포스트모던 소설가인 도널드 바셀미(Donald Barthelme)의 말을 빌자면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쓰라’는 조언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투고된 5편의 시나리오와 1편의 희곡을 심사하면서 느낀 점은 작가 자신을 담는 노력은 부족한 것 같다. 주인공을 통해 드러난 면모를 보면 주인공의 결핍된 부분에 대한 해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작가 스스로가 해결해나가야 할 최우선 과제로 삼길 바란다. 

다음으로 안타까운 점은 좀 더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희곡과 시나리오는 정해진 시간 내에 상연/상영되기 때문에 예리한 지점에서 관객에게 갈등과 사건을 제시하고 인과성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켜야 하는 매우 정교한 계산이 필요한 글쓰기이다. 따라서 작법에 관한 참고도서는 물론 대가들의 희곡 및 시나리오를 통해 서술구조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할리우드 작가들 사이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꿀만한 시나리오를 써라. 팔리지 않더라도 인생은 바뀔 것이 아닌가?’라는 말이 있다. 부디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말고 자신을 드러내기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의 길을 걷기를 기대한다.

최우수상 <레드 클로버>
총 130씬의 장편 시나리오를 통해 작가는 ‘정의가 바보취급 받는 이 시대’를 언급하며 ‘절대악으로 악을 심판한다’라고 작의를 밝혔다. 분명한 작품방향이 설정되었기에 캐릭터 모두가 능동적이며 이로 인해 장면마다 사슬처럼 이어져 이야기 전개가 빠르다. 짧은 문장에서도 등장인물의 행동이 시각적으로 표현되었기에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이해도를 엿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작가가 계획한 것보다 반전을 일찍 눈치 채는 관객이 많을 것 같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새로운 서술전략이 요구된다.
 
우수상 <후유증>
간결한 문체와 빠른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편 시나리오에서 버거울 수 있는 3명의 등장인물이 서로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배치한 점도 높이 살만한다. 다만 사건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 정후가 지나치게 무력하기에 관객의 호감을 살만한 캐릭터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현재 시나리오로는 속을 알 수 없는 희연의 주관적 시점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면 좀 더 흥미로운 시나리오로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

가작 <찌라시 블루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을 포착하였기에 단편 시나리오로서 적합한 아이템이다. 다만 경비 최씨와 어린 경수간의 갈등을 추적을 통해 풀어나갔더라면 긴장감이 살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드게임을 통한 공감대 형성도 약간 느닷없는 엔딩이라 추후 재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