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민아 기자 (mayu1989@skku.edu)

1.
때는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았던 어느 가을의 밤이었다. 수습기자를 환영하는 자리가 끝나갈 무렵이었고, 모두들 기분 좋게 취해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대략 이런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문사는 너희가 만들어 나가는 거야. 너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신문사는 얼마든지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마."
늙은 수습기자들을 모아놓고 말했던 선배의 이 한마디가 뇌리에 꽃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난 그런 발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신문기자라고 하면 큰 시스템의 틀 속에서 매일 기사만 쓰는 것을 반복하는 직업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갖고있던 나에게 그 말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만드는 신문사라니, 이 얼마나 능동적이고 고무적인가!

2.
하필이면 시험기간에 이뤄진 총학 선거 개표는 나에게 어떻게든 변명을 만들어 내어 편집장님에게 불참 메시지를 전송할 강력한 유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나는 고민 끝에 그 유혹을 물리치고 개표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 때문에 시험을 망쳤을지언정, 그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나 스스로의 평가는 변함이 없다.
그 곳에서는 적어도, 저널리즘론이나 베로의 거시경제학보다는 더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난 표를 세는 침착함 속의 엄청난 긴장, 그 진한 현장감에 완전히 압도되어 버렸다. 특히 나도 우리 학교의 역사가 새롭게 쓰일 곳에 존재하는 엄연한 구성원이라는 자의식에 기분이 묘했다. 한껏 들떠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때 사진기가 할 일을 알았다. 독자들에게 보다 더 큰 현장감을 전달하는 것. 되도록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느꼈던 바 그대로를 독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금상첨화겠다. 다만 나까지 흥분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날 찍었던 많은 사진들이 흔들려서 쓸 수가 없었으니까.

3.
생각해보면 수습기자 시절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사물과 개념들이 참 많았던 기간이다. 무엇보다 매주 월요일이면 성대신문 배포대부터 찾았으며 학교를 지나치다 발견하는 성대신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학교의 속사정을 타 학우보다 조금 더, 잘 알게 됐고, 뭐랄까 내 안에서 뭉클한 애교심 같은 것도 생겨났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기자', '신문', '대학생', '언론' 과 같은 개념들이 그냥 지나쳐 보내기보단 붙잡고 한 번 더 생각하는, 그런 의미있는 개념이 됐다. 앞으로 성대신문의 사진기자로서 수습기자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무수한 어려움을 겪겠지만 다 감당할테다. 어찌됐든 난 성대신문의 기자고, 고민·고난의 무게만큼 배우고 성장하겠으니, 내 청춘은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