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용(물리)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 학기에 일반물리학을 영어로 강의하였다. 국제어강의에 대해 여러 찬반의견이 있지만, 반대의견이 더 우세한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어강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한편으론 일말의 기대도 갖고 못 이기는 듯 나서게 되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긴 했지만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국내에서 마친 마당에 영어발음이 특별히 좋다거나 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몇 해 전 물리학과 학과장을 할 때이다. 핀란드에서 응용물리학을 전공하는 한 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올 예정인데 물리학 강좌 중 영어로 개설되는 강좌가 어떤 과목이 있냐는 것이다. 두루 뭉실 답을 했던 것 같다. 한국이 세계 각국과 적극적인 교류와 무역을 하지 않았다면 G20의 의장국으로 선출되는 등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위치에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균관대학교가 세계의 유수한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계와의 교류가 아주 중요하다. 영어강좌는 그 중 첫 번째 단계이다. 그래야 한국인에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글로벌인재들이 학교에 흘러들 수 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하면 지능지수가 100 정도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를 극복하려면 몸으로 부딪치는 방법 밖에 없다. 영어를 말하면서 지(知)적일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는 학문적 깊이가 있는 내용을 영어로 말하고 의견교환을 함으로써만 체득할 수 있다.

일반물리학 강의 첫 시간에 위에 말한 정당화를 (우리말로) 이야기하면서 분위기를 유도했다. 그리고 이 영어강의가 의도하지 않는 점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 내가 영어를 잘 해서 나로부터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의도는 영어와 학문적 깊이를 같이 잡아보자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영어 유창도에 대한 감을 갖기 위해 개별적으로 자기소개를 영어로 하게 했다. 또 학기 중후반에 갖는 텀페이퍼 발표도 영어로 진행했다. 요즘 학생들은 우리 때 보다 영어가 훨씬 유창했다.

첫 강의 전에는 부담도 되고 한 학기를 어떻게 끌고 갈 지 걱정도 되었지만 학기는 늘 그렇듯이 정말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서 강의평가 결과와 학생들의 피트백을 받았다. 평가를 보는 일은 적당한 긴장감을 준다. 학생들은 영어 강의에 불만이 많았다. 교수가 영어를 잘해서 영어강의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영어에 불만도 많았고, 내용전달이 잘되지 않는 점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원어강의가 개념과 내용 전달의 효율 측면에서는 우리말 강의를 따를 수는 없겠다. 여기에서 내용 전달의 효율과 글로벌화 중 어디에 방점을 찍을 건가의 문제이다. 2009학년도 대학평가 자료에 따르면 영어강의 비율이 우리 학교가 25%, 서울대 12%, 연세대 26%, 고려대 28%, KAIST 68% 등으로 나타났다. 학교가 좋은 대학평가와 더 많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국제어 강좌를 드라이브하는 면이 있지만, 대학의 글로벌화나 영어강좌를 교수와 학생 모두가 좀 더 즐길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영어의 문제는 단순히 어휘나 발음, 청취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모국어를 말할 때도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외국 사람들을 만나 보면 발음은 우리보다 나을게 없는데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은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게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는 문화의 문제다.  또 다시 노벨상의 시즌이 지나갔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국 학자들 보다 더 열심히 연구하고 계산 잘하고 문제 잘 풀어서 상을 받은 건 아니다. 학문의 전체 맥락에서 중요해질 문제를 선택하고, 이를 어떻게 형식화하고, 어떻게 끌고 나가고, 공동연구자를 만나 관계를 설정하고, 어떻게 플레이하고 하는 것 들이 중요하다. 이런 그 분야의 문화 코드를 제때 잘 배워야 한다.

모국어로 학문을 하는 건 물론 중요하다. 외국어로선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개념들이 체화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정신과 문화의 폭과 깊이가 더해진다. 허나 이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모국어와 함께 국제어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경험을 통해 그 분야의 문화 코드를 함께 얻을 수 있길 바란다. 젊은 그대 그리고 우리들이 뛸 무대는 한국만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