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문제 해소할 실마리 제공해줘

기자명 이성준 기자 (ssjj515@skku.edu)

Q. 고전번역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A.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해 현대사회와는 맞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이라 생각한다.
Q. 그렇다면 고전번역이 무엇인지는 아는가.
A. 단순히 우리 선조들의 서적을 번역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질문에 대한 답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가? 제시된 답변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맞는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고전번역이란 과거의 서적을 번역함으로써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고 학문적 다양성을 넓힐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이다. 선조들의 생각을 현대어로 풀이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배울 수 있음은 물론 이를 현대에 적용할 수도 있다. 또한 한 시대의 철학적 사상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이는 서유럽 최고의 부흥기였던 르네상스시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수준 높은 철학과 사상, 문화는 로마제국이 건국되면서 그대로 로마에 흡수됐고, 로마는 그들의 사상을 토대로 전례없던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로마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고대 그리스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기에 로마어로 그들의 방대한 사상이 담긴 서적을 번역해놓지 않았다. 때문에 로마제국이 몰락하고 고대 그리스어를 사용할 줄 아는 지식인층이 사라지자 그들의 훌륭한 서적은 후대로 전달되지 못해 서유럽에 사상ㆍ학문적 침체기를 가져오게 된다. 이처럼 암흑기를 맞이했던 서유럽은 곧 예전처럼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고전을 번역하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 체감하게 된다. 당시 자신들과 교류가 활발했던 아랍문명권을 통해 유럽인들은 다시 고대 그리스의 서적을 얻을 수 있었다. 단, 다시 접하게 된 서적은 고대 그리스의 언어가 아닌 아랍어로 쓰여 있었다. 아랍인들은 고대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글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이로 인해 아랍문명권에는 고대 그리스의 서적이 남아있을 수 있었고 이것이 다시 서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유럽인들은 아랍어로 쓰인 자신들의 선조들이 기록한 서적을 다시 번역해 연구했으며, 이는 결국 르네상스로 이어지게 된다. 유럽인들은 다시는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고전을 다시 당시의 현대어로 번역했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르네상스시기를 번역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선조가 지니고 있던 사상을 로마어로 번역해놨다면 그들은 학문을 보다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며 암흑기를 맞이하는 불운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서양에만 고전번역의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예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선조들도 고전을 번역하는 것에 상당한 무게를 뒀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선조들이 연구해 놓은 서적의 풀이를 중시해 번역의 방향을 두고 학파를 나누기도 했다.

선조들은 우리보다 이전 시기에 △정치 △사회 △문화 △철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었기에 그들의 서적을 참고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발전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고전번역에 소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고전번역에 대한 통일된 규정도 전무했을 뿐만 아니라 고전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낮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원인으로 우리나라가 근대기를 급하게 맞이해 한글과 한문의 조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과 우리의 전통사상이 서양의 사상에 비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오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우리 선조들의 사상이 후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을 야기했고 철학ㆍ사상적으로 정체성이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고전번역원(이하:번역원)은 고전번역의 의의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시중에서 서양의 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반면 오히려 우리의 고전은 접하기 힘들다는 모순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발족된 번역원은 고전번역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 우리 학교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우리 학교와 연계해 석ㆍ박사 통합과정인 한국고전번역대학원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이에 번역원 김형옥 연구원은 “이번 기회로 고전번역이 정규 학위과정으로 인정돼 많은 학문적 성취가 쌓일 수 있을 것”이라며 고전번역의 미래를 낙관했다.

이처럼 최근 그 의의를 인정받고 한 단계 도약할 준비하고 있는 고전번역. 앞으로 고전번역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생각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