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적 의미부터 민중의 생활상까지 드러나

기자명 박하나 기자 (melissa12@skku.edu)

‘인형’하면 사람들은 으레 헝겊으로 만든 것이나 바비인형을 떠올린다. 그러나 날씬하고 예쁘장한 요즘의 인형과 우리나라 고대의 그것은 조금 다르다. 투박하지만 섬세한 우리 전통의 ‘꼭두’, 그것엔 우리 조상들의 문화가 묻어있다. 놀이를 넘어 우리 조상의 풍속부터 종교관까지 품고 있는 꼭두의 아름다움과 그 문화사적 가치를 알아보자.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인형’이란 단어는 인간의 모습, 동물 또는 가공의 생물을 흉내내서 만든 완구 또는 장식품까지를 포괄 한다. 그러나 사실 ‘인형’은 인간의 형태를 뜻하는 것으로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은 것은 포함하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인형이란 말이 도입되기 전에 사용했던 우리말은 ‘각시’ 또는 ‘꼭두’였다. 그 중에서도 ‘꼭두’는 시공간적 경계선상을 뜻하는 용어로 환상적인 존재,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나타내며 색시 모양과 같이 여성에 한정되는 각시와 달리 특정한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꼭두’는 용어 자체에서부터 종교적인 의미와 함께 이승과 저승을 인식하는 우리 조상들의 저승관을 담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신상부터 부장용 명기까지
한국의 전통 꼭두는 그 역할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꼭두의 시초는 종교적인 신앙의 대상물인 신상(神像)이다. 신상의 기록은 중국 『북사』권 94,「고구려전」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신묘가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부여신이라 해서 나무로 부인의 형상을 새겼고, 하나는 고등신이라 해서 그들의 시조인 부여신의 아들이라 한다’ 이러한 신상은 오늘날 각지에 남아있는 장승에서 볼 수 있으며, 공민왕 부부의 목각신상이나 각시당의 서낭각시 내외등도 이에 속한다. 현재 여러 신당에 모셔져있는 신상에서도 종교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만든 꼭두가 있다. 「동국세시기」에서 완구로서의 꼭두를 찾아볼 수 있는데, 3월 행사로 여아들의 ‘풀각시 놀이’를 소개하고 있다. 이는 풀과 나무를 이용해 새각시 모양을 만들어 혼례식 흉내를 내면서 노는 꼭두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꼭두나 탈에 신령이 접해있다’고 믿어 아이들이 꼭두를 갖고 노는 것을 흉물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완구로서의 꼭두 유물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명기로서의 꼭두가 있는데, 가장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명기는 망자가 생전에 쓰던 물건을 본떠서 함께 부장하는 물건을 말하는 것으로, △동물 △사람 모형 △각종 그릇 △악기 등을 포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신라의 5세기에서 6세기의 무덤에서 고고학적 유물로 많은 토우들이 나왔다. 신라 토우는 잿빛을 띠고 있으며 그 모양은 △악기를 타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지게를 짊어진 사람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조선시대의 명기 출토품은 주로 소형 자기로 된 것이 많으며 그 종류는 △뚜껑 달린 단지 △병 △잔부터 △기마인물 △여인상 △가마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이렇게 신라토용과 조선시대의 명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명기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매우 드물다.

망자의 수호자이자 동행자, 상여꼭두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꼭두보다도 많은 나무꼭두가 남아있다. 다음달 29일에는 동숭아트센터의 김옥랑 대표가 30년 넘게 수집해 온 2만 여점의 나무꼭두를 전시하는 꼭두박물관이 개관할 예정이기도 하다. 신상도, 완구로서의 꼭두도 아니고, 묻혀있지도 않았던 이 꼭두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답은 바로 상여꼭두다. 나무꼭두는 명기로서 무덤에 부장되기도 했지만 상여에 부착돼 망자를 보호하고 호위해 극락으로 보낸다는 의미도 지녔다. 부장용 명기를 시작으로 상여를 장식하는 용도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었던 것이다. 

어허어허 너하넘차 어허 간다간다 나는간다 이승길을 하직하고 저승길을 나는간다

각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상여소리, 서사 민요 등을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은 ‘이승’과 ‘저승’이라 하여 현실계와 죽은 뒤에 가야하는 비현실계를 구별해서 생각했다. 상여꼭두는 산 자는 경험해보지 못한 저승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망자의 몸은 죽었지만 영혼은 살아있을 것이라고 간주한 우리 조상들의 생각이 담겨있다. 이와 관련 충간문화연구소 장석만 소장은 “공동체적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상례를 꼭두 유물을 통해서 살펴 볼 수 있다”며 “꼭두를 통해 조상들의 저승관은 물론 공동체적 가치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상여꼭두는 그 색채의 아름다움과 모습의 다양성으로 미적 가치 또한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상여꼭두는 크게 △수호신상 △풍속적 조각 △동물상의 3가지로 나뉘는데, 먼저 수호신상은 무속적 도상과 불교적 도상, 도교적 도상으로 구분된다. 무속적 도상은 말이나 해태, 호랑이, 새를 탄 사람 조각으로 악귀로부터 망자를 보호하는 장군 역할을 했다. 한편 불교의 영향으로 저승길에도 절차가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은 삶과 죽음 사이의 매개자인 염라대왕, 저승사자를 망자의 저승길을 함께하는 동행인으로 만들어 넣기도 했다.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적 조각상도 등장하는데, 주로 신선 세계를 나타내는 술병이나 천도복숭아를 든 도인 또는 선녀의 모습으로 표현됐다.

다음으로 풍속적 조각은 연희나 혼례 등을 나타내는데, 이 중에서도 광대와 재인 꼭두는 망자의 저승길에 지루함이나 무서움을 덜기위한 연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표정이 가장 조각적이며 재미있게 표현된다. 이에 더해 시종 꼭두도 만들어지는데, 이는 조선시대 평민들의 저승길과 사후세계에서 신분의 향상을 염원하면서 제작된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조상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죽은 자를 더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상여꼭두에는 다양한 동물상이 쓰였는데, 이는 각각의 동물들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차용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종합적인 풍속과 종교관을 볼 수 있다. 주로 사용된 동물상은 △호랑이 △해태 △용 △봉황 △조류 △토끼와 거북이 등으로 종교적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것은 물론 민간설화를 바탕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렇게 꼭두에는 우리 조상의 사회상과 민중의 소박한 바람이 담겨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장식에 그칠 수 있었던 꼭두에서 조상들의 종교적 가치관과 풍속과 같은 다양한 생활상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바비인형과 같이 늘씬하진 않지만 맵시있는 우리 전통의 ‘꼭두’를 통해 우리 고유의 멋과 가치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