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공예가 박목수 씨

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반듯하게 직선과 사선으로 정리된 도로와 나란히 줄 선 건물들. 다양한 색으로 빼곡히 채워진 거리의 인공미는 빈틈을 찾아볼 수 없다. 이토록 정지된 풍경 속에 사람들은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인간은 태어나기를 곡선 안에서 휴식을 느낀다고 했다지 않았던가. 그러나 집에서조차 완벽한 사각의 가구들에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목수 작가의 찻상엔 바람에 흔들리는 풀 한 포기와 흐르는 물이 스며있다. 부드러이 물결치는 나뭇결은 울퉁불퉁 투박하면서도 편안하다.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이 문제라기보다 그가 처한 환경이 문제라는 박목수 작가. 그가 삶에 대해 쓴소리 할지라도 까칠하다 속단하지 마라. 느리게 곱씹으면 자연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보일 테니까.

이은지 기자(이하:이) 작가님의 찻상을 보노라면 상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박목수 작가(이하:박) 상은 생각처럼 단순한 생활의 도구가 아니라 예절과 과학이 있어. 요즘 사람들은 마주보는 것을 잘 못해. 현대인들이 유일하게 마주볼 수 있는 곳이 어디야. 지하철인데, 다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안절부절 못하거든. 내가 무릎 아랫상만 하는 이유도 비슷한 거야. 내 상 보면 다리가 없거든. 식탁 같은 경우 몸이 다 가려지니까 몸가짐이 흐트러지기 쉬운 데 상이 낮은 경우엔 조심하게 되지. 또 상은 가족관계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어. 현대인들의 집 구조가 대개 어떻게 돼 있니. 벽엔 소파, 그리고 조그만 테이블이 있을까 말까. 그리고 TV가 신상처럼 모셔져 있지. 이런 구조에서는 가족들끼리 서로 마주 볼 공간이 없을 수밖에 없어. 여기서 상이 마주볼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거야.

이:찻상을 만들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 궁금한데
박:바로 ‘날로 먹기’지! 우선 작품을 할 땐 무심(無心)이 중요해. 내 주관이 개입되면 나무가 똑바로 보이지 않기에 생각이 없어질 때 까지 기다리는 거지. 준비가 되면 우선 나무와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해. 시작이 반이라고, 그러고선 하늘이 그 나무에게 내린 선을 따라서 작업하면 작품이 나와. 생긴 대로 따라간 것뿐인데 작품이 되니 날로 먹는다는 거지. 나는 심부름만 하는 거야. 억지로 주위를 변화시킬 필요 없이, 내가 자연에 맞추는 것이 더 편해. 이처럼 하려는 욕심보다 하지 않는 것이 어려운 법이야. 면벽수도라는 말도 있듯이 가만히, 정적으로 있는 것이 어려운거지.

이:나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다
박:내가 한 때 하반신 마비를 겪으면서 근 폐인까지 갔거든. 그 때 길가에 썩어 굴러다니는 나무를 봤어. ‘야, 저건 내 처지다’ 싶어서 방에 갖고 들어와서 두 달간 만지작거렸는데 뭐가 됐어. 근데 그게 나인거야, 나. 나무를 다듬은 게 아니라 나를 다듬은 거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를 쓸모 있게 만든거지. 나는 흔히 말하는 ‘좋은 나무’를 부러 쓰지 않아. 어느 사람이 작품을 보곤 잔뜩 기대하고 내 공방에 와선 그래. ‘여기엔 쓸모없는 화목(땔감)밖에 없네요’ 그런데 이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어. 어디에 놓이느냐의 차이지. 또 작품을 할 때 외국 나무를 쓰는 법이 없어. 한반도의 지형과 기후에 맞는 우리 나무를 쓰지. 내가 목리(나뭇결)를 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인데, 외국 어디를 가도 이렇게 좋은 목리가 없다고들 하거든.

이:찻상은 물론 문학ㆍ음악ㆍ사진 등 못하는 게 없으신 것 같은데 원동력이 무엇인지
박:그거 알아? 목수가 나무 공부만 했다가는 나무꾼으로 퇴화해(웃음). 그래서 철학적 사유를 포함한 예술적 창조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거야. 우선 나는 18, 19살 즈음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40세까지도 문학 지망생이었어. 글쓰기는 선험이 중요한데, 본래 감성적이다 보니 이를 살려 그럭저럭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글쓰기는 바탕이 있어야 하잖아. 그래서 공부를 하려고 봤더니 제일 처음 시작한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였어. 그리고 종교-심령과학-도덕ㆍ윤리-유교-동양 철학-서양 철학 등도 공부했지.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 알고 안하는 것이 나으니까 정말 많은 책을 읽었어. 뭐 이거 말고도 역사 기행 겸 해서 절을 많이 찾아 다녔고, 여행을 정말 많이 했지. 또 피사체와 교감이 되는 순간 찍는 사진의 멋도 좋아하지. 난 나무 공부는 안해. 만지면 알 수 있으니까. 물론 나무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물리적으로 몰라서는 안돼. 그래도 사람도 그렇듯 어느 물질이나 다 같은 이치를 지녀. 요즘은 영적인 것만 중요시하고 물질은 안이하게 생각하는데, 컴퓨터 세대라 물질 접할 기회가 드물다 보니 존중심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쉬운 때가 많아.

이:그렇다면 작가님의 작품에 흐르는 철학적 배경은 어떤 것인가
박:생명과 죽음이 주요 주제야. 움직임, 즉 살아있다는 것은 균형적일 수 없어. △무형태 △불균형 △부조화를 특성으로 들 수 있지. 주요 작품 소재로 삼는 것은 △물고기 △고인돌 △자궁이야. 물고기는 생명, 즉 살아있음을 뜻하고 고인돌은 주검이며, 자궁은 썩음을 뜻해. 여기서 짚고 가야 할 것은 썩음과 삭음이 다르다는 점. 썩음은 스스로 소멸해 거름이 되는 것이며 삭음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야. 결국 물고기, 고인돌과 자궁은 삶과 죽음, 생명과 뜻이 통한다고 볼 수 있지. 또 영졸무교 영박무화(寧拙毋巧 寧樸毋華)라는 말을 늘 가슴 속에 새기는데, 무슨 뜻인고 하니 ‘차라리 졸렬할지언정 교묘해서는 안 되고 차라리 질박할지언정 화려해서는 안 되리’라는 뜻이야.

이:자연을 잊고 문명을 살아가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박:현대의 병이 왜 생겨난다고 생각해? 난 너무 넘쳐 나서라고 보거든.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 빼곤 많이 알 필요 없어. 그런데 가만 보면 대학교도 사실 창의 교육이 아니라 주입식이야. 그러다보니 현상에 불과한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거지. 학생이 맨발이라고 쳐봐. 그런데 걸어가야 할 길에 유리 조각이 막 깔려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양탄자를 깔아버린다고. 그냥 나만 신발을 신으면 될 걸.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다들 출세하는 꿈을 가지고 이루지 못하면 자신이 인생에서 헛돈다고 생각하잖아.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수레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바퀴는 축으로부터 헛도는 것인즉, 일생을 헛돈다 느껴진다 해도 그것이 결코 헛것은 아니거든. 오로지 그대의 생각이 삿될 뿐, 전체로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