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아카이브 조제

기자명 김영인 기자 (youngin09@skku.edu)

지난달 발표된 한 영화사 보도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예술영화 산업환경은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다고 한다. 열악한 사업 환경 속에서 관련 영화사들은 물론 예술영화상영관들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 이런 상황 속에서 위기의 대응책, 혹은 예술영화상영관의 진화 결과로 불리는 새로운 씨앗이 뿌려졌다. 바로 ‘필름아카이브 조제’. 겨울의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봄의 길목에 그곳을 방문했다.

영화관이라고 하기엔 작은 공간. 그러나 결코 작지만은 않은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영화사 ‘스폰지’가 소장하고 있는 2백 여 편의 보석 같은 작품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음료와 입장료의 가격을 합한 8천 원의 이용료를 내고 보게 된 영화는 전설적 포크락 가수 밥 딜런의 생동감 있는 초상을 완성한 <아임 낫 데어>. 카페같은 분위기가 영화 관람을 방해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와는 달리, 최신식 디지털 상영기기는 최고의 화질을 구현해 내고 있었다. 감독들이 애용한다는 의자에 앉아 따뜻한 담요를 덮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영화 속 세계로 빠져들었다.

필름아카이브 조제는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극장과는 달리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대안적인 영화 상연 공간이다. △빔 벤더스 △왕가위 △프랑소와 오종 등 해외 감독들의 영화를 국내에 수입, 배급하고 △김기덕 △봉준호 △홍상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작품을 제작, 배급하는 스폰지의 새로운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공간은 기존에도 존재했다. 영화사 백두대간과 진진이 각각 운영하는 ‘아트하우스 모모’와 ‘씨네코드 선재’, 그리고 동숭아트센터의 ‘하이퍼텍 나다’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뿐 아니라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도 인디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규모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예술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예술영화에 도달하는 과정까지 예술영화 ‘문화’에 포함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술영화전용관을 표방하는 상영관 수의 증가만큼 문화도 다양해졌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필름아카이브 조제만의 매력이 더욱 돋보인다. 이곳은 기존의 예술영화상영관과는 차별화된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이 함께 상영작품을 선정할 수 있다는 점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하다. 커피와 차는 물론 맥주를 마시거나 동행인과의 담소를 나누며 영화를 관람할 수 있고, 고정되지 않은 의자 덕분에 자유로운 위치선정이 가능하다.

또한 전체대관을 통해 소규모 모임과 영화 관람을 동시에 할 수 있다. 기존의 예술영화상영관이 영화의 예술성만을 강조해 오히려 스스로 벽을 쌓고 있다는 지적과 비교해 이곳의 예술성과 동시에 관객들과의 소통을 중시했다는 운영목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이 극장이라는 ‘장소’에 제한됐다가, 카페라는 ‘열린 공간’으로 확장됐다는 점에서 ‘대안공간의 대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필름아카이브 조제의 등장을 두고 ‘예술영화상영관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등의 긍정적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확실히 정해진 운영방안은 없다”며 “처음의 목적을 달성키 위해 계속해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이 송효진 매니저의 말. 정해진 것 없이 계속해서 공간 구성의 변화를 시도하고, 다양한 운영 방법을 적용해 보다 많은 관객들과의 소통을 꿈꿀 것이라는 필름아카이브 조제다. 어느덧 봄의 길목을 넘어선 이 시기, 이곳을 방문해 함께 고민하고 씨앗의 싹을 틔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