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영인 기자 (youngin09@skku.edu)

#1  1926년에 건설된 동대문운동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체육시설로 한국 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과거 아마추어 야구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과거 일본 천황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과 제 기능을 하기엔 경기 시설이 너무 낡았다는 점이 맞물려 운동장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현재 서울특별시에서 추진하는 도심재창조 프로젝트의 일환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 조성사업으로 전체시설이 폐쇄됐다.


오랫동안 민속학은 주로 농어촌 지역의 잔존문화를 연구하는 방식으로 행해져 왔다.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고유한 전통문화가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과거의 문화에만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70% 이상이 도시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점차 민속학의 조사대상을 다양화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실제로 한국인들의 삶의 공간이 근현대시기를 마주하면서 크게 변화했다는 점을 주목해, 도시에서의 삶과 문화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의 의미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렇듯 도시에 대한 민속학적 연구의 필요성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학계에서 ‘민간전승을 통해 생활 문화를 연구함으로써 민족 문화를 밝히려는 학문’이라는 민속학의 용어 해석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 현대적 도시를 연구하는 것이 민속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뤄졌던 민속학이 △의식ㆍ행사 △세시풍속 △신앙 △구비전승 연구를 지향해 △마을 신 △민속놀이 △방언 등에 치우쳐 조사가 진행됐다는 오해도 도시에 대한 민속학적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최근 도시 지역에 불고 있는 무분별한 재개발 열풍은 그 속의 유ㆍ무형 문화재에 대한 기록의 필요성을 시급하게 했다. 독특한 분위기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황학동 벼룩시장은 청계천 복원 탓에 자취를 감췄고,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던 성동구 금호동 산동네는 아파트 단지 조성으로 인해 삭막한 폐허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6년 말 이뤄진 국립민속박물관의 서울 마포구 아현동 조사는 도시민속학에 대한 가치나 의미를 입증했다. 그들의 삶에서 과거, 현재와 더불어 미래의 모습도 유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모습 또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도시민속학의 물꼬가 터진 것이다.

그러나 도시민속학이 결코 거창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총괄한 아현동 조사의 책임자인 이건욱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도시민속학은 “사람을 조사하는 민속학을 생활환경의 변화 흐름에 따라 기존의 농촌 위주에서 도시로 조사 대상을 확장시킨 것뿐”이다. 그의 말처럼 민속학이 ‘촌락과 더불어 인간의 2대 거주 형태이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활동의 중심이 되는 장소’인 도시를 만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기도 하다. 즉 도시민속학은 전통민속학의 연장선 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동대문운동장 일대에서 13년째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계신 마현자(56) 씨는 “야구 경기가 한창 진행될 당시에는 나를 엄마나 이모로 부르며 따르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저 핫도그를 파는 한 명의 상인일 뿐이다”라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도시 서울의 성장과 근현대의 역사를 보여준 아현동 일대 조사를 시작으로 도시를 민속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8년 정릉 3동을 조사했고 현재 울산과 목포로 조사 도시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보고서를 발행해 도시민속학 연구에 대해 하나의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피맛골 등 서울의 도시민속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의 증가와 더불어 ‘수도 국산 달동네 박물관’이나 다양한 전시회가 생기고 관련 단체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중앙대학교의 민속학과에는 ‘현대민속학’이라는 과목이 개설됐다. 국내 유일의 도시민속학 관련 과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조사를 하게 된다. 실제로 흑석동을 직접 방문해 골목의 유형과 그에 따른 주민들의 생활방식을 조사하고 사진과 글을 통해 기록으로 남겼다. 이와 관련해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박환영 교수는 “사유가 아니라 공유의 공간인 골목길을 통해 그 나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도시민속학은 현대라는 시간적 배경과 맞물려 우리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가치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국립민속박물관은 △대학가 주변의 밥집의 역할은 무엇인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떤 계기로 언제 어른이 됐는지 △여고생을 대상으로 공부와 미신의 연관관계가 있는지와 같은 다양한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지극히 사소한 것을 대상으로 연구가 이뤄진다고 볼지 모르나 연구자의 입장은 다르다. ‘명절이라면 설과 추석밖에 모르고 화이트데이나 빼빼로데이 등을 더욱 중요시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역시 이름 없는 대중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말이다.

더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만이 과거를 들여다보는 도구가 아니게 된 것이다. 당신이 매일을 기록하는 일기나 친구와 놀러 가서 찍은 사진, 심지어 낙서를 한 후 아무렇게나 구겨 버린 종이 한 장도 이제는 민속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

#3  마현자씨의 모습은 단순히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그 일대를 지키며 살아온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다. 또한 갑자기 바뀐 생활환경에 당황하면서도 끊임없이 적응해 나가며 변화를 이끌어내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은 기억되고, 계속해서 전해질 가치가 있다.

도시민속학 연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학문적 인식에는 차이를 보인다. 조사 범위에 있어서는 도시로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일부 민속학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것만을 추구하기도 한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구를 위해 동네에 1년 정도 거주하며 그들의 삶을 공유하기도 하고, 똑같은 장소를 일정한 기간마다 사진 촬영해 모아 놓기도 한다. 직접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그들의 물건을 받아 추측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조사대상자들의 삶을 보다 효과적으로 조명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책『도시민속학』을 집필해 국내에서 학문의 기반을 정립했다고 평가받는 박환영 교수는 “내가 도시민속학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는 있으나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며 “일반 사람들의 생활사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게 된 그 자체로서 충분히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아직 나아가야 할 부분이 더 많은 도시민속학. 그러나 그것을 규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도시민속학을 통해 도시에 사는 수많은 우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격동의 시기를 버텼던, 그러나 여태까지 연구대상에서 제외됐던 평범한 사람들인 우리가 도시민속학을 통해 그동안 가질 수 없었던 정당한 역사적 몫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