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반도체)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1997년 6월, 만 22세의 나이에 가족도 친한 친구도 한 명 없는 미국으로 학교 하나 바라보고 고국을 떠나게 됐다. 어쩌다 보니 꽃다운 20대의 대부분을 포함한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미국에서 보내고, 작년 2월에 성균관대 자연과학 캠퍼스가 있는 수원으로 귀국하게 됐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만 해도, 여자는 25세 전ㆍ후면 결혼을 해야 하는 나이로 생각하던 때이니, 20대를 외국에서 보내는 아쉬움 보다는 조만간 노처녀 딱지를 붙여야 할 것 같은 불안감과 한국에서 학교만 졸업하고 경력이나 인맥 면에서 쌓아 놓은 것 없는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속에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젊은 혈기와 들뜬 마음에 앞으로 할 고생을 모른 채 신나게 떠났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날씨 좋고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어 은근히 기대가 있었으나, 뜻밖에 나를 처음 맞이한 것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공부보다도 더 힘든 생존을 위한 사투였다. 잠도 못 자며 해야 할 숙제는 태산인데, 입천장을 헐게 하는 뻣뻣한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 불어터지고 양념이 제대로 안된 스파게티, 기름이 질질 흐르는 피자와 햄버거 등의 음식 외에는 차를 타고 멀리 학교 밖으로 나가야 먹을 수 있었다. 기숙사에 부엌이 있지만, 음식재료를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요리도 잘 못해서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다가, 먹을 기회가 생기면 2~3끼 분량을 한꺼번에 먹어 보충하기도 했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서 땅이 넓은 미국을 부러워하곤 했었는데, 넓은 것이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식사 때뿐만 아니라, 빨래를 하기 위해 무거운 빨래 바구니를 들고 1백 미터 가까이 걸어갈 때, 연구실과 기숙사가 멀어서 늦으면 비 오는 날에도 자전거를 타야 할 때도 느꼈다.

이렇게 불편하게 시작한 미국생활이었지만, 그리운 것들이 있다. 미국에 오래 있는 동안 잘 느끼지 못하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감각적으로 가장 그리운 것은 잘 보존된 자연이다. 우리나라는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또 계속 바뀌는 국가 개발정책에 의해, 장기적인 계획 없이 자연을 훼손하고 건물이나 아파트를 짓는다. 한국에서는 도시에서만 살아봐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 미국생활에 익숙해질수록 나도 모르게 주변에 보존된 아름다운 자연과 호흡하며, 지친 눈과 마음을 쉬고 활력을 얻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정신적으로 가장 그리운 것은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각자의 개성대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미국은 전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땅이 넓어 사람들이 드문드문 살아서 그런지 한국과는 달리 남에게 신경 안 쓰고 산다. 돌이켜 보면 나의 학창 시절 나도 모르게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주던 것은 한국 사회에서 너무 부추기는 ‘남과의 비교’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개개인의 개성을 무시한 일괄적인 시험으로 학생들 비교하여 줄 세운다. 그런 문화에 길들다 보면 다른 사람이 하는 무엇인가를 따라하지 않으면 불안해 지고, 남이 무엇을 한다고 그러면 비판 없이 그대로 쉽게 따라하는 문화가 생기는 것 같다. 물론 남과의 비교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당한 경쟁은 발전과 노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인생에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물론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나 졸업 후 사회생활에 비교하여 인생에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다.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감과 보람을 느끼며,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며 약간의 방황과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전공을 아주 잘하지 못한다고 꼭 전공을 바꾸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면 공과대학에서 공학을 아주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사회에서는 공학적 지식을 가지면서도, 인간관계에 원만하고 뛰어난 사람, 경영능력이 뛰어난 사람, 또는 발표나 설명을 잘하는 등 다른 재능도 갖춘 사람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의 현재 전공을 기반으로 전형적인 졸업생들의 진로와는 다르지만 내가 적당한 도전을 느끼며 만족하는 길도 설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획일적인 길을 많은 사람이 같이 걸으며 누가 열심히 하냐가 성공을 어느 정도 결정했다고 볼 수 있지만, 요즘은 사회의 다양화로 어느 진로 찾아 안정을 추구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도전해야 한다. 남을 따라 하기만 해서는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다. 눈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인생의 넓은 경험이 있는 선배들, 선생님들과 이야기해보고,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깨달은 작은 교훈이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서 대학생활과 진로를 고민하고 학생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나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겨울이 유난히 길었던 올해, 겨울이 길었기에 더욱 아름다울 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