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기자명 박하나 기자 (melissa12@skku.edu)

바람을 통해 울려퍼지는 선율은 때로는 애절하고 때로는 흥겹다. 주름 상자와 건반으로 우리 한국인들만의 감정을 50년 동안 묵묵히 담아온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아코디언의 전설로 불리는 그가 당대를 아우르는 가수들과 함께 작업한 앨범만도 2백여 장에 이르며, 과거의 추억을 반추하는 복고풍 영화나 드라마 음악에서도 그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노래하듯 연주해내는 그의 연주에는 그의 칠십 평생 이야기가 고스란히 응축돼있다. 때로는 강한 소용돌이의 용오름처럼, 때로는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흘러가는 인생을 돌아보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박하나 기자(이하 박) 아코디언을 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주신다면
아코디언 연주가 심성락(이하 심) 내가 아코디언을 스물한 살에 시작했으니 이제 54년이 됐네. 그 시절엔 악기를 배운다는 거, 특히 아코디언은 생각지도 못할 때였지. 중학교 다닐 때 매일 놀러갔던 레코드점 겸 악기상인 ‘애음당’에서 처음 아코디언을 만났는데, 피아노랑 기타도 있었지만 나는 이놈이 좋았어. 손으로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 들었거든. 사장이 자릴 비우면 호기심에 혼자 이리 저리 만져보기도 하고 결국엔 사장한테 들켜서는 혼쭐이 날 뻔 했는데, 내가 곧잘 연주를 하니까 오히려 사장이 여기저기에 소개해줘서 연주하게 됐지. 당시 부산 MBC에 녹음기가 생기면서 노래자랑을 시작했는데, 그땐 해방 이후라 가요보단 일본노래나 클래식을 많이 했거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유행가 박사였고 들은 대로 연주하다보니 방송국 악사, 카바레 연주, 그리고 결국엔 세션맨(앨범 반주자)으로 아코디언 연주가 직업이 됐어. 

박 당시에는 아코디언을 배울 수 있는 정규 수업이 부족했을 텐데
심 당연히 그 시절엔 아코디언을 알려주는 곳도 없었고, 누구한테 배운다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 악기라는 것도 초등학교 다닐 때 잠깐 만져본 풍금이 전부였으니까. 처음 아코디언을 연주할 땐 악보도 볼 줄 몰랐어. 듣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그때 알게됐지. 그냥 무작정 유행가 책을 들고 음의 길이를 직접 재면서 연습했어. 혼자 모든 걸 해결한거지. 또 악기가 없어서 잠잘 때 내 배에 건반을 그려놓고 밤새도록 연주했어. 갈비뼈를 눌러가며 상상한거야. 또 하나, 난 항상 같은 곡이라도 아코디언이 아니라 피리로 연주한다면 어떨까 생각했지. 생각하는 게 다르니 연주하는 것도 좀 다르단 말을 많이 들었어. 연주도 상상이 먼저거든. 그러다 군예대(위문공연을 목적으로하는 부대) 악장을 하게 되면서 이렇게만 배워서는 안되겠다 싶더라구. 그래서 음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지. 근처 학생들의 화성악책을 빌려서 차근차근 익혀나갔어.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공부했지.

박 아코디언을 노래하듯 연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심 악보에 ‘필(Feel)’이 적혀 있는 게 아니잖아. 또 아코디언은 즉흥연주가 많아. 그 전체 음악의 느낌, 이야기에 따라 달리 연주하다보니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지. 예를 들어서 사극에 쓰이는 음악이다. 그러면 ‘한’이 서린 소리, 옛날 느낌이 많이 나게 연주하지. 그러면 사람들이 참 좋다고 해. 또 영화음악들은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지. 영화를 보진 않지만 분위기를 상상해서 연주해. 그렇게 연주하면 사람들이 꼭 노래하는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런 느낌을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아.

박 데뷔 50년 만에 첫 앨범을 내셨는데
심 사실 앨범은 1960~70년대 우리 가요를 연주한 경음악 연주곡을 냈었어. 그게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 그런데도 이번 앨범을 데뷔앨범이라 하는 건, 옛날처럼 전통가요가 주인공이 아니고 내가 중심이 된 앨범이라고 그렇게 부르면 좋겠다길래 그렇게 하라고 했어. 이번 앨범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건 리처드 갈리아노(Richard Galliano)라는 세계적인 연주자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거야. 내가 이 앨범 아니었으면 어떻게 그런 세계적인 친구랑 연주를 해볼 수 있었겠어. 그 친구 대단하더군, 내 연주가 부끄러웠지. 그래도 지나고 나니 너무나 좋은 추억이야. 정말 좋았어. 음반에도 실렸으니 꿈이 더없이 영광스럽지. 내 나이 일흔넷인데 그런 앙상블에 멋진 음반자켓이라니(웃음). 

박 인생에서 아코디언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심 인생의 절반도 넘게 함께 해왔으니 내 인생 자체라고도 할 수 있지. 가족, 친구같은 존재지. 그들보다도 나랑 더 오래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아코디언으로 평생 밥 먹고 산게 그게 행복이고 내 복이야. 그러니 죽을 때도 함께해야지. 음악으로 밥 먹고 사는게 쉬운게 아닌데, 참 내가 복이 많아. 아코디언은 내 운명이야. 재미있어서 시작했고, 즐겁게 하다보니 50년이나 하게 됐지.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내 연주를 인정해 주고. 그게 참 고맙고 즐거웠어. 내 연주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지 갔고 마음에 들 때까지 연주했지. 싫으면 이 짓 절대 못하지. 내가 좋아하니까 하는거지. 그렇게 즐겁게 열심히 하면 되는거야.

박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심 이제 무슨 계획이 있겠어. 제작자는 공연도 하고 다른 음반도 한 번 해보자고 하는데, 몸이 따라줘야지. 아코디언이 케이스까지 근 30kg이거든. 비행기를 타면 꼭 화물칸으로 보낸다니까. 요즘엔 의자에 앉지 않으면 연주가 힘들어. 그래도 아직은 쌩쌩해. 한의사가 그러더라고. 선천적으로 건강을 타고 났다고. 50년이나 해왔던 거라 크게 어려움은 없어. 내일이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데가 있다면 나는 갈꺼야. 그게 연주자의 숙명이지. 힘들다고 피할수는 없는거야. 아직도 무대에 서면 기분이 좋거든. 연주도 많이 하고 싶고. 얼마 전에 ‘EBS 공감’이라는 콘서트를 했었는데, 내가 주인공이었지. 너무 기분이 좋더라구.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제일 좋았지. 나를 찾는 곳이 있다면 또 가서 열심히 연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