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여기 르느와르의 그림이 있다고 하자. 따뜻한 색감과 평온한 인물의 표정, 우리들은 그의 그림을 행복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고흐의 그림은 또 어떤가. 불안한 붓놀림은 이지러진 물체를 응시하고 있다. 이처럼 고전미술은 특정 작품을 말할 때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심상과 개념이 있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직관적으로 느끼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미술로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술관에 가서 현대미술 작품을 아무리 감상해봐도 막막하기만 하다. 어느 지경인고 하니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란다. 이처럼 난해하고 어렵다는 누명을 쓴 현대미술의 억울함을 씻기 위해 미술관엔 도슨트가 있다.

난해한 현대미술과 어깨동무하기

도슨트(docent)는 ‘가르치다’라는 뜻인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한 용어로 우리말로는 문화 자원봉사자로 번역할 수 있다.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해주고 이해를 돕는 도슨트. 본디 미술관에서의 안내인을 의미하지만 최근엔 각종 문화재나 숲에서까지도 도슨트를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전시 기획을 담당하는 큐레이터와 달리 일반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친숙한 미술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런 도슨트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부터 도입됐다. 미술관 입장에서는 전시 컨텐츠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교양 증진에 기여할 수 있어 좋다. 여기서 나아가 문화예술을 보다 다수의 일반 대중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서 이점이 있다. 박제된 미술, 딱딱한 미술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밑거름인 것이다. 특히나 요즈음에는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졌을 뿐 아니라 미술관도 도슨트의 존재를 통해 친근감있는 열린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도슨트 교육 과정을 마련해놓고 일반인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전공 무관,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준비돼


도슨트는 그야말로 누구나 될 수 있다. 미술을 전공하거나 관련 경력이 없어도 누구나 해당 전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기본 소양 교육을 일정 정도 받은 후 도슨트로 활동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 전공자는 물론 문화재나 미술을 좋아하는 일반인들도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미술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조금 생소하거나 난해하게 인식돼 온 현대미술을 좀 더 편안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자원봉사라는 의미까지 있어 보람이 더 큰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 매 전시마다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트선재센터의 교육 과정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무엇보다 이들 교육 프로그램은 철저히 자기 주도적이다. 아무리 교육이 해당 기관이나 미술관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해도 본인이 미술을 느끼고 나름의 생각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선 해당 전시의 작가가 어떤 미술사적 맥락에 놓여있는지, 작품의 특징과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등을 배운다. 또한 이 전시가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 진행되는지, 어떤 면을 강조할 것인지 등 기획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현대사회를 투영하는 현대미술인 만큼 사회에 대한 이해와 사진이면 사진, 회화면 회화 전반에 대한 식견을 갖추는 것도 필수. 그러나 미술에 문외한인 비전공자라도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작가부터 시작해 전시 기획자나 평론가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거치다보면 자연스레 관심이 생긴다. 여기에 일정 인원이 조를 짜서 함께 공부를 하고 느낌을 공유하다 보면 연대의식까지 겹친다. 관람객들 앞에 설 날을 위해 스크립트를 미리 짜 실전과 같은 발표에 PPT까지, 열정의 집산지다.

지식 전달보다
관람객의 생각을 유도해야

그러나 도슨트의 설명이 관람객의 자유로운 작품 감상에 저해가 된다며 일부러 듣지 않는 관객도 있다고 한다. 미술관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들은 계원예대 안소리 씨는 “우선 스스로 전시를 한 번 둘러본 후 도슨트 투어(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며 “쉽게 알 수 없는 작가의 의도나 창작 과정에 대해 알게 된 점은 좋았지만, 설명을 들으며 나름대로의 해석이 차단되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트선재센터에서 도슨트 교육을 담당하는 이지은 씨는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막막해하며 고민할 때, ‘이렇게 볼래?’, ‘이 작품과 저 작품을 비교해볼래?’하며 안내하는 것이 도슨트다”라고 말했다. 현대미술의 매력이 수용자 나름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것에 있는 만큼, 도슨트가 지식을 많이 전달하는 것보다 관람객이 채워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잘 보고 느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도슨트가 되기 위해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소양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른 이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어떻게 소개해줄 수 있을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작품과 얘기할 수 있게끔 중간 역할을 어떻게 할까하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 이와 관련 이지은 씨는 “특히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어 대학생, 그리고 혼자 작업하는 예술인들에게 좋다”고 말했다. 미술에 대한 애정과 타인과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당신이라면, 도슨트로서 지식 나눔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