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과캠 만남 - 문현(화공76) 동문

기자명 정광윤 기자 (zeusx2@skku.edu)

“박물관식 음악을 고집하기엔 신세대들이 너무 변했습니다. 국악도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필요가 있어요”

이는 어느 패기만만한 젊은 국악도의 말이 아니다. 올해로 53세가 되신 국악계의 베테랑, 문현(화공76) 동문의 말이다.

우리네 전통음악 중 선비 풍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정가를 전공한 문현 동문은 놀랍게도 우리 학교 화학공학부를 졸업했다. 어릴 적, 그 시절 흔했던 할아버지의 시조조차 들어본 적이 없고 그 밖에 음악적인 환경이라고는 없었던 그가 뜻밖에도 국악에 빠져들게 된 것은 대학시절부터였다.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당시 대학풍토에 따라 탈춤을 접하게 된 것이 그 계기였다. 탈춤을 통해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그는 국악에까지 관심을 돌리다가 그중에서도 정악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러나 그가 오늘날 같은 전문국악인, 국립국악원의 ‘문현 선생님’이 되기까지의 길은 쉽지 않았다. 대학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에 장남으로서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졸업하고 2년간 페인트 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가족들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국악을 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라고 회고한다. 결국 직장을 그만둔 문현 동문은 그동안 국악 동호회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추계예술대학교에 입학함으로써 본격적인 국악전문인의 길을 걷게 됐다.

문현 동문이 전공한 정가는 △가사 △가곡 △시조를 일컫는 것으로 예로부터 선비들이 즐기던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 같이 흥겨운 속가에 비해 사람들로부터 딱딱하고 지루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왜 굳이 정가를 택했는지에 대해 문현 동문은 “속가는 팝에, 정가는 클래식에 비유할 수 있다. 정악은 팝처럼 한 번에 빠져들진 않지만, 대신 그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문현 동문은 정가의 정통성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국악을 접하고 정가의 매력을 알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정가와 오늘날 음악 장르들을 접목시켜 일반인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문현 동문의 첫 음반 <시조, 도시를 걷다>와 비교적 최근인 2009년 10월에 발매된 앨범 <슬로우 시티>는 바로 이러한 노력들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특히 <슬로우 시티>에서는 △랩 △가요 △민요 등 다양한 장르의 성격이 반영된 터라 각각의 곡들마다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의지에 비해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은 부족한 편이다. 문현 동문은 이번 <슬로우 시티> 앨범을 발매하는데 2천만 원이 넘는 사비를 들여야 했다. 그는 “정부차원에서 대중예술과 스포츠에 지원하는 금액의 10분의 1만 국악에 투자해도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국악에 대한 호응이 없는데 어떻게 세계적으로 발전하길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래도 요즘은 주변 매체에서 젊은 국악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공중파 방송에서는 ‘MIJI’라는 여성국악그룹이, 인터넷에서는 ‘소리아’라는 그룹이 UCC 활동을 하고 있다. 문현 동문 역시 이들에 대해 보다 대중적이고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다만 그는 이 그룹들이 기존의 국악과 너무 괴리되었고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현 동문은 앞으로도 <슬로우 시티> 홍보를 위한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악 고유의 느낌을 잃지 않았으면서도 오늘날과 너무 떨어져 있지 않은 음악이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국악계의 어른, ‘문현 선생님’의 공연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진 : 유오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