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록(대외협력팀 홍보전문위원)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국가관계에 있어 전쟁선포 아니고 가장 모욕적인 일들은 무엇일까. 일본이 ‘종군위안부’의 만행을 전면 부인하는 것? 그들이 식민통치를 마치 혜택을 베푸는 식으로 미화하는 일? 유럽국가 등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우리나라를 야만국으로 매도하는 일? 미국이 FTA나 쇠고기협상을 하면서 한국을 우습게 알고 다른 나라보다 유난히 불리한 조항을 넣은 일? 아니면, 주한미군의 명백한 만행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처리하는 일? 포로가 된 일병 한 명을 구하려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몇 수십만 명의 이라크 국민과 어린이들의 생사는 예사롭게 생각하는 일? 북한이 핵을 무기로 우리나라와 주변 강대국들을 농락하는 일? 중국이 강대국임을 내세워 티벳 공격 등 자국 내 인권차별엔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 뭐, 이밖에도 단교(斷交)를 불사할 만큼 양국을 불편하게 하는 대소사는 엄청나게 널려 있다 하겠다.

하지만, 그 나라의 국기(國旗)를 땅에 깔아놓고 군중이 짓밟거나 공공장소에서 찢고 불태우는 일도 작은 일이지만 그중의 하나일 수 있겠다. 국기는 대내외적으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얼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북조선인민공화국이 국기나 국가(國歌) 때문에 스포츠 등 각종 행사에서 갈등과 불화를 빚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겠는가. 종교적인 도그마가 판치던 중세사회에선 화형식(火刑式)이 유행했었다. 개인이나 국가에 대한 화형식만큼 모욕적인 일이 있을까. 국기나 국가라는 것은 한 나라의 정체성(아이덴티티)을 대표하는 기호물이다. 그러기에 경외(敬畏)의 대상물이기도 하다. 월드컵 결승전이나 올림픽 금메달 시상식에서 한 나라의 국기가 올라가고 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가슴 벅차지 않은 국민이 있을까.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던가. 최근 문화재청에서 역사의 현장에서 사용된 유서 깊은 태극기 15점을 문화재로 등록하려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은가. 숱한 동창모임에서 마지막으로 부르는 것이 바로 교가(校歌)나 응원가이다. 그것은 긍정적으로 말하면 동질감이나 일체감을 표현하는 데 그만한 상징물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거창한 화두(話頭)는 꺼내지 말자. 이쯤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로 들어가자. 우리 학교 600주년기념관 앞 ‘광장’에 2005년 5월 공표된 새 UI(University Identity)가 새겨져 있다(옛 UI와 교체되었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 UI를 밟고 다니는 것에 대하여 경계의 일침(一針)을 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 발 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무심코 밟고 다닐 수는 있겠다. 하지만 알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밟고 지나간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마치 자기 얼굴을 밟는 것처럼 낯간지럽지는 않은가. 그렇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필자는 그런 점을 우려해 관련 팀에 맨 처음 UI를 새길 때 동그랗게 그 주변을 ‘돋을새김’(부조·양각)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다. 아파트 도로 방지턱처럼 도톰하게 만들면 ‘아 이건 밟으면 안되는구나’ 생각하며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실행되지 않았다.

학생이나 교직원 등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밟고 지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끔뜨끄끔, 콩닥콩닥해지는 것은 필자의 학교사랑이 남달라서가 아니다. ‘저렇게 밟고 다니면 안 될텐데’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모욕감’이 들기 때문이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발 밑에 UI가 새겨진지도 모르고 침을 뱉었다고 생각해보자. 솔직히 길을 걷다 침을 뱉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제 얼굴에 침 뱉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이런 황당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무엇이건대 “밟지 마세요”라고 일일이 지적해 행인을 민망하게 만들 수도 없지 않은가. 또한 이제사 UI 새김판 앞에 “잔디를 밟지 마세요”를 흉내내 작은 안내판을 세워두기도 좀 그렇다. 그저 모두 경계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느 이익단체가 우리의 교기(校旗)를 찢거나 불태운다면 그런 모욕이 어디 있으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또한 ‘Unique Origin Unique Future’ 우리의 슬로건이나 교명(校名)을 엉뚱하게 패러디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UI도 교기나 교가와 동등하게 학교를 대표하는 상징 기호물이다. 우리 자신이 존중하지 않으면서 다른 외부사람들에게 존중해달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결코 거창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 아니다. 제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데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는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