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컨설턴트』작가 임성순(국문96) 동문

기자명 이성준 기자 (ssjj515@skku.edu)
주인공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단순히 키보드로 사람을 죽이는 킬러는 아마 없을 거에요. 처음엔 평범한 킬러를 떠올리며 글을 쓰려 했지만, 좀 더 주제와 결부시키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작품에 등장하는 킬러가 탄생했어요. 이처럼 주인공은 회사의 컨설턴트로 키보드 앞에서 ‘구조 조정’을 담당하죠. 사회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바로 구조 조정이기 때문에 죽음을 이렇게 칭하게 된 것이죠.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이 무너지고 사회에서 쓸모없게 되도록 만드는 구조 조정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런데 누군가는 이와 같이 구조 조정을 기획하는 킬러인 주인공과 우리들, 그러니까 무지 혹은 무관심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이게 되는 사람들을 동일시하는 것에 비약이라며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같은 일종의 비약을 통해 문제, 즉 주제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현대와 같이 관료적으로 짜인 사회에서는 책임과 결정권이 분산돼 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 그것을 책임지라고 말할 수 없어요. 따라서 개개인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속한 단체에 돌려버리거나, 잘못을 했을 경우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회사에서 지시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합리화시킵니다. 한 예로 과거 독일 포로수용소 소장의 일화를 들 수 있겠네요. 어린 아이들을 가스실에 넣어 잔인하게 살해한 그 소장은 실제로 상당히 가정적이며 평범한 우리의 아버지,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이었다고 해요. 그는 단지 회사가 위에서 지시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끊임없이 합리화하며 잘못된 일을 하면서도 이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은 것이죠. 소설 속 주인공도 살인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직접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단지 회사에서 원하는 글을 쓰는 것뿐이라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분명 주인공의 상황은 우리들에 비해 상당히 극단적이긴 하지만 공통된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이죠. 책임을 회피하며 합리화하는 것에 다를 것이 뭐 있나요.

소설의 결말이 다소 암담하며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나는 이를 통해 누군가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결말을 작성했습니다. 계속해서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합리화할 경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일은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들, 개개인은 모두 이 합리화의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고 해결하려 나선다면 분명 문제는 한결 가벼워질 겁니다. 우리가 있는 사회라는 구조도 결국 각각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구조인 만큼, 개개인이 변한다면 구조 자체도 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의 책을 읽는 사람 모두가 생각을 바로잡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단지 그 사람이 생각을 바꾸기까지 올라가야 할 천 개의 계단 중 하나라도 된다면 만족할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