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현(현대유럽철학/문화철학) 학부대학장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성적과 취업, 이 두 가지만 잊고 살자!

교수님, 이 무슨 황당한 말씀이십니까? 우리 인생을 아예 망칠 작정이십니까? 대학을 왜 다니는데요? 오직 이 두 가지 때문에 다른 하고 싶은 일 다 제쳐 놓고 하기 싫은 공부 꾹 참고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무슨 해괴한 말씀이십니까? 낮술에 취하셨습니까? 그 어느 때보다도 취업난으로 고민하는 우리들 염장 지르시는 겁니까? 우리 대학 교수님 맞습니까?

그렇다. 재학 중에 좋은 성적 받아놓고 졸업하면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거의 모든 재학생들의 소망 중 소망이다. 내가 왜 그걸 모르겠나? 반세기 동안 이 대학에서 누구 못지 않게 학생을 아끼고 나름대로 열심히 학생을 가르쳐 온 내가 그걸 왜 모르겠나?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열심히 공부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A학점을 “따기 위해” 공부하지 말라는 거다. 취업 그 자체를 위해 공부하지 말라는 거다. 성적은 학업의 외형적 결과일 뿐이요, 졸업 후 취업은 내 일생의 삶을 위한 하나의 잠정적 요건일 뿐이다.

한 학기 동안 빠짐없이 출석하여 수업에서 얻은 지식을 레포트에, 기말 시험지에, 다 쏟아 넣어 교수에게 고스란히 반납하고 텅 빈 머리로 돌아선다면, 전과목 A 아니라 A+를 받은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내 학업의 결과로 얻은 것이 그저 A+ 성적일 뿐이라면, 그게 진정 나의 지적 수확이 되겠는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지적 모험도 체험도 없고, 사물을 보는 안목을 넓히고 깊게 하는 지적 성장도 없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지적 각성도 없다면, 성적표에 적힌 “전과목 A+"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설령 그것이 졸업할 때 나의 취업에 도움이 된다 한들, 그런 위장된 지적 빈곤이 두고 두고 내 생애 전체를 떠받쳐 주는 디딤돌이 될 수 있겠는가.

내 얘기는 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거다. 다만, 학업 자체의 본래적 목적과 그 외형적 결과인 성적을 전도시키지 말자는 거다. 성적표에 적히는 기록에만 매달리다가는 종국적으로는 대학을 헛다니고 마는 셈이 되기 쉽다는 거다. 성적에 매달려 전전긍긍하지 말고 졸업 후 취직에 아등바등하지 않는 가운데, 학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즉 나의 지적 체험을 풍부히 하고 지적 성장을 내실있게 하고 지적 각성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길게 보면 대학 다닌 보람이 더 확실해진다는 말이다. 이런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 나쁜 성적이 나오고 취업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리가 없다. “전과목 A”가 아니면 어떻고 “일류 기업 취직”이 아니면 어떠하랴.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인류적 차원에서 문명의 기본 패턴이 바뀌고 있다. 이제 대학교육도 기성 전문지식의 전수로는 그 소임을 다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른바 정보사회의 변모된 지적 지형이 이를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에게 해결을 요구하며 다가오는 문제들은 기성의 지식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미지의 것이다. 다만, 그것이 동시적 해결을 요구하는 복합적인 것일 거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의사소통에서, 지식의 창출과 유통과 활용에서, 시공적 제약을 뛰어넘게 하는 디지털 기술이 이 변화의 진원지다. 이제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기초적인 지적 능력, 즉 비판적 창의적 종합적 사고능력의 함양이 대학교육에서도 교육 목표의 중심항목이 되어야 한다. 대학 졸업 후 직업적 활동이 너댓 번 바뀔 수 있고(평생교육이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이에 따라 생소한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학업을 거듭해야 함을 상정한다면, 대학 시절에 어떤 공부를 해둬야 할지 분명해진다. 어떤 새로운 상황에서 어떤 새로운 문제들에 부딪치더라도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을 길러둬야 하고 보다 더 넓은 지평을 조망하는 안목을 갖춰둬야 한다. A학점들로 이루어진 성적표가 이를 보장해 주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졸업 후 한 번 취직되었다 해서 그게 평생의 직업활동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