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서커스 관람기

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넓디넓은 경마공원에 도착하자 색동의 천막이 보인다. 상상만 했지, 설마 정말 저런 모양을 하고 있을 줄이야. 5월 치고 꽤나 센 바람에 펄럭이는 천막은, 마치 전통 서커스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듯 보였다. 더군다나 낮 1시 공연이라는 점 때문이었을까. 공연 시작이 임박했음에도 관객이 많지 않아 한적한 느낌까지 들었다.

다행히 관광버스 한 대를 타고 몰려 온 단체 손님이 있어 객석은 반나마 메워졌다. “짜! 이번 무대는 그릇을 돌리는…” 진행자의 짐짓 흥겨운 말투가 과천 경마공원 내 빅탑극장에 울려 퍼진다. 주차장에 마련된 무대라지만 천장에 그려진 별 문양과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시공을 이동한 느낌을 준다. 처음 가졌던 편견과 의심의 장막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곡예 전에 무대 한편에서 어슴푸레한 연기를 뿜는다. 이국적인 의상과 화려한 분위기 속 등장한 단원들은 예상을 깨고 모두 앳돼 보였다. 85년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에 그들 또한 나이가 꽤 드셨거니 생각했는데 말이다.

서커스라고 해서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묘기를 펼치는 그들이 마냥 신기하게 느껴졌던 걸 보면. 공연은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손짓과 곡선, 그리고 박력 넘치는 모습의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았다. 작은 원통에 몸 전체를 기대며 선보이는 묘기는 신체의 균형과 협응 능력을 극대화한 짜임이 엿보였다. 아크로바틱 또한 인간의 몸을 구조적으로 포개는 모습이 공학적이라는 느낌까지 줄 정도였다. 빨간 줄 하나에 곡예사가 안정적으로 매달린 공중쇼는 또 어떤가. 모두들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젖혀 놀라고 있다. 작은 사각의 무대를 벗어나 넓은 공중이 무대로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무거운 단지를 머리로 받치는 등의 위험한 묘기에서는 멀미날 정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안전 장비 하나 없이 위험천만한 묘기를 해내는 그들이 놀랍다. 보는 사람은 눈을 질끈 감으며 긴장과 이완을 넘나드는데, 정작 그들은 공연 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라니. 이 공연의 절반은 관객들이 만들어나간다고 해도 좋았다. 단원들도 사람이다 보니 인간미 넘치게도 실수가 가끔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관객들은 오히려 더 큰 격려의 박수로 흥을 돋운다. 단원들 또한 돌리던 그릇이 하마 떨어져도 다시 추스르고 끝까지 돌린다.

서커스를 단순히 유흥과 기예, 또는 이색적인 것으로만 여겼는데 몸을 통한 예술, 바로 그것이 진면목이었다. 그들의 다리는, 골반은 신체를 뛰어넘어 서커스를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된 듯 했다. 마치 현을 켤 때 음악가가 스스로 악기가 되듯이, 화가가 한 폭의 그림에 붓을 닿기까지 자신을 기꺼이 통로로 내어 주듯이. 다른 예술과 견줘도 그들의 노력과 아름다움은 손색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극적으로 보일 지, 관객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철저히 계산된듯한 동작과 치밀한 연출이 엿보인다.

한 시간 남짓한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눈이 부신다. 관객 대부분인 어르신들 중에서 할머니 한 분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 봤다. “아주 아슬아슬하고 재밌었어. 서커스가 없어졌나 했더니, 용케 있네. 젊은이들도 와서 보구 그랬으면 좋겠어” 마침 수원시 북문(장안문) 부근에서 오는 6월 15일까지 공연이 마련돼 있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닌’ 동춘서커스,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