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환 곡예사 인터뷰

기자명 김영인 기자 (youngin09@skku.edu)
동춘서커스단에 불어온 위기, 이어진 희망의 바람. 순탄치 않은 서커스단의 운명에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켜온 사람이 있다. 바로 박광환 곡예사. 이제는 외국인 곡예사가 더 많은 서커스단이지만, 그는 여전히 각종 세계대회에 대표로 참석하며 정통 한국 서커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지금도 무대 위에서 많은 이들에게 기쁨 주고 있는 그를 만났다.

■ 30여 년간 서커스와 함께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접하게 됐는지

7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서커스단을 운영하시던 양부모님을 만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서커스를 제대로 하려면 텀블링 등을 해 몸의 유연성을 높여야 했는데,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서커스단을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방황 끝에는 결국 서커스로 돌아왔다. 서커스의 매력을 알아 버린 거다(웃음). 그러다 15살 때 동춘서커스단에 입단했고, 그때부터 나만의 기술을 연마하며 진정한 서커스의 길을 걷게 됐다.

■ 일찍 알아버렸다던 서커스의 매력이 무엇인가

우선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숨죽이며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이 좋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좋다. 서커스와 함께 해온 내 인생의 모든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너무 멋있다며 안아달라고 할 때 그래도 잘 살아온 서커스 인생인 듯싶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짜릿함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 저글링을 주 종목으로 삼고 있다

깊은 역사가 있는 동춘서커스단에 입단한 후 개인기술이 필요함을 느꼈고 다양한 기술을 모색하던 중 저글링을 발견했다. 단순히 묘기만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다가가며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이끌었다. 그 길로 지금까지 17년이다. 아직도 부족함이 있지만, 관객과 저글링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나를 만나러 오는 관객과 이야기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덕분에 다양한 연령층에게 모두 인기가 있는 ‘귀공자’ 곡예사가 됐다(웃음).

■ 서커스와 함께 하는 인생,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

우선 서커스가 신체를 이용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공연이나 연습 자체가 힘들다. 말 그대로 신체적 고통이 크다. 먹고사는 것이나 노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점 또한 큰 부담이었다. 현재는 조금이나마 노동부에서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상황이 나아졌지만, 옛날에는 4대 보험 보장이 안됐기에 다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엄청났다. 실제로 뜻을 두고 서커스단에 들어왔다가도 그런 문제들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걱정을 덜 하게 되면, 보다 기술 연마에 집중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 앞으로도 한국 서커스의 자존심이길 기대한다

그렇게 된다면 내게도 영광이다. 서커스와 인생을 함께 해왔기에 서커스를 제외한 삶을 생각할 수 없다. 서커스를 가르치는 학원을 하며, 곡예사를 양성하고 싶지만 계속해서 서커스를 할 수만 있다면 다른 큰 꿈은 없다. 먼 훗날에도 오늘처럼 연습하고 공연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서커스와 함께 했던 인생이 행복했고, 서커스와 함께 할 인생 또한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