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문화부장 (kafkaesk@skku.edu)

글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내 느낌과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면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심지어 친구들의 글씨체를 구분하는 데 탐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말에 있어서는 좀 달랐다. 토론 수업이 부재한 제도권 교육의 문제였을까, 아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길 꺼리는 우리네 문화에 뼈 속 깊이 적응한 탓이었을까. 연필과 종이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이 배출구를 찾지 못했다. 지적ㆍ반론ㆍ설득? 내겐 너무 어려운 단어들이었다. 글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필자는 불완전했다. 또한 사람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데도 힘들었다. 언제까지고 편지로만 내 마음을 내보일 순 없는 노릇. 직접 마주하고 얘기하는 것만큼의 사람 냄새를 글씨에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고등학생 때까지 남들과의 소통에 서툴렀던 필자는 대학생이 되면 꼭 학내 언론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입학하고 얼마 안 돼 멋모르고 성대신문에 들어갔다. ‘너는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는 거니, 성대신문을 다니는 거니?’라는 질타를 받을 정도로 신문사에서 사육당하며(?) 그토록 고대하던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수습기자 시절 받았던 트레이닝이나, 매주 진행된 편집회의에서 치열하게 논의하며 다른 이와 함께 말한다는 것에 대한 희열과 쾌감을 깨우치게 된다. 더불어 책과 생각을 좋아했던, 그래서 돈키호테적인 인간을 끊임없이 열망했던 필자가 인간과 함께하는 실천적 철학을 갖게도 됐다. 신문사는 내게 대학 생활과 동격이었다. 그런 내가 성대신문의 2년 반 임기를 마치는 시기가 왔다. 사실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에 비춰봐도 짧은 기간이지만, 지금의 내겐 하나의 인생을 산 것과도 같은 생활과의 이별이다. 지난 시간들이 가루가 돼 날리고, 니콜라이 레닌이 저서를 통해 제기한 물음, ‘무엇을 할 것인가’의 고민이 육중한 무게로 짓누르는 것이다. 이제 신문 지면은 이 기사를 마지막으로 내 손을 떠나고, 또 글이라는 1차원적 매체에만 연연해왔던 모습에 변화를 꾀하고 싶었다. 글 이외의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내 힘으로 보이고 싶었다.

가장 처음에 생각났던 매체는 사진과 영상이었다. 사진은 신문사 내의 사진부 기자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봐오며 무의식적으로 생긴 동경 때문일 테고, 영상은 교내에 개설된 SMA 아카데미의 영상제작과정의 매력이 컸다. 그렇게 기계와 친해지기 위해 쩔쩔매던 중, 그래픽 아티스트 박훈규 님의 글을 보고 머리를 탁 쳐오는 것이 있었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중에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방법이 그림 그리는 방법입니다. 말을 하고 소리를 내고, 몸을 움직여서 의식을 전달하는 것과는 달리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생각을 구체화하고 여러 도구(미디어)를 이용해야 합니다’ (후략)

왜 난 직접 그림을 그려 소통하겠다는 욕심을 지금껏 가져본적이 없었을까. 왜 세태에 휩쓸려 몸에도 맞지 않는 기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먼저 찾았을까.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매체, 즉 기술의 발달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소통의 근본적인 동력은 사람에게 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기술의 발달보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더 우위에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때그때의 감흥을 그림으로 기록할 수 있다면, 선 하나하나에도 주관을 담뿍 담아낼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사실 그림 그리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교육의 시작부터 우리는 그리기와 만났지만, 잘 깎아 놓은 사과처럼 박제된, 그러나 멋진 그림에만 손가락을 추켜세우는 미술 교육에 풀이 죽었는지 모른다.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으며,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잘 그린 그림’의 강박을 깨자. 더군다나 그림 그리기는 ‘그린 그림’의 결과가 중요치 않다. 그림을 그리며 고삐 풀린 당신의 상상력을 즐겁게 받아들여라. 사물을 보는 내 의식 심연의 태도나 상처도 얼싸안자. 미술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미술이라는 높아 보이는 벽을 넘보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아직 나는 새롭게 주어진 삶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가끔은 신문사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맞는 시간적 여유가 ‘과연 자유일까?’ 의심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벌써 이름 모를 평범한 이들의 솔직한 감흥을 담아낸 그림 하나하나를 통해 일상에 깃든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에 힘을 실어주고 이를 관찰하는 것을 제 인생의 목표로 잡았으니, 내 상황을 그대로 담았을 그림 그리기와 함께라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일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