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다빈 편집장 (ilovecorea@skku.edu)

성대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몇몇 언론사의 취재 협조 요청을 받곤 했다. Vision2020(안)도 취재 협조 요청을 받은 사안 중 하나였다. 취재를 요청한 기자들은 대부분 개략적인 정보만 가지고 기사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저 수준의 정보만을 가지고 어떻게 기사를 쓸지 우려가 될 정도였다. 이 계획이 담고 있는 내용이 광범위한 만큼 학교 쪽에 사실관계를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폈다. 우려했던 대로 사실관계가 일부 틀리거나 핵심을 짚지 못하는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카더라’식의 보도와 베껴 쓰기는 불쾌감을 줬다. 기자들이 크게 발품을 팔지 않은 기사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학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시의적 문제이기에 Vision2020(안)을 예로 들었지만 이는 사실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기성언론에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기사를 쓰는 경우는 흔히 발생한다. 능력과 여건 부족 때문에 사실관계를 놓쳤다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사실은 전혀 무시한 채 왜곡, 날조하는 경우 역시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은 언론의 받아쓰기는 1년 전 한 개인을 부엉이 바위 위에 홀로 서게 했다.

물론 이 글을 통해서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며,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짚어낼 필자의 내공도 아직 모자라다. 다만 성대신문사 기자로서 2년 반을 활동하면서 ‘기자’란 자리에 대해 필자가 느낌 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좋은 기자’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나쁜 기자, 흔히 말하는 ‘사이비 기자’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필자 역시 그랬다.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난 후 원칙과 상식의 선에서 판단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소수보다는 다수의 행복을 지향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경우 학ㆍ내외를 가리지 않고 비판했다. 비판 보도로 인해 신문 조판시간은 계속 길어졌지만 왠지 모를 정의감이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자리했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알면 알수록 혼란은 커졌다. 특히 그동안 비판을 가해왔던 잣대를 필자에게 그대로 돌렸을 때, 정의감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인사캠 최은원 총학생회장의 활동비 횡령을 둘러싼 보도를 기획했을 때도 그랬다. 사실 학내 언론사에도 ‘편집취재비’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돈을 편집장인 필자가 관리했다. 학우들의 등록금으로 만들어진 돈이고, 타 대 언론사에 비해 적은 액수라 투명하고 검소하게 집행하려 했지만 분명히 부족한 점이 있었다.

Vision2020(안)을 둘러싸고 학교가 학우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칼럼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한 조직의 대표자로서 필자는 조직 내의 구성원들과 얼마나 소통했는가.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반감을 갖지는 않았는가. 권위주의를 비판했지만 권위주의가 리더에게 가져다주는 달콤함까지 버리지는 못했다. 이 역시 그동안 필자의 날 선 기사들에 비춰보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괴로웠다. 언론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세우고 싶었다. 며칠간 고민했다. 그리고 우연히 본 아날로그 시계에서 그 답을 찾았다. 아날로그 시계의 특성이 무엇인가. 일정한 길이의 △시침 △분침 △초침이 원의 중심을 기준으로 쉬지 않고 돌아간다. 좋은 기자가 되려면 쉬지 않고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처럼, 열심히 발로 뛰어야 한다. 언제나 같은 크기의 기준선으로 대상을 가리키는 분침처럼 지위를 막론하고 어떤 대상에게나 일관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시간 단위 중 △시침 △분침 △초침이 한곳에 모이는 ‘0시’는 기자 자신을 비판하는 시간으로 남겨둬야 한다.

어설픈 답이지만 필자가 2년 반 동안의 경험으로 내린 결론이다. 항상 좋은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필자 역시 사이비였을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이비 기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에게서 기사가 소음처럼 쏟아지는 시대, 이 글이 또 하나의 소음으로 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