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

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지하철 출구를 통해 나오자마자 들리는 소리. 곧 있을 지방선거 홍보 차량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공약과는 상관없는 떠들썩한 노래가 귀를 괴롭히고 있었다. 소음들과 함께 바삐 뛰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회색의 지하 공간을 쉬지 않고 달리는 지하철까지. 소설가 김연수가  서울에 관해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는, 스쳐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한, 좌충우돌의 도시’라는 말을 인용했듯, 서울의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덕수궁 입구에 다다르자 허둥대던 서울이 숨을 고르고 제 시간을 찾는다. 수문장의 얼떨떨한 호위를 받으며 들어온 이곳의 시간은 달랐다. 고여 있다기보다는 천천히 흐른다. 입구에서 얼마 가지 않아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덕수궁미술관이 보였다. 백남준, 존 배 등 11명의 작가가 시간을 주제로 △설치 △미디어 △회화 등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자마자 김호득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천장에 매달린 한지와 그 아래 천천히 흐르는 먹물은 전시장을 온통 물결로 메우고 있다. 어둡고 고요한 가운데 ‘흐르는’ 시간을 마주하니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을 본 적은 없으니까. 이 전시에서는 이처럼 시간성의 시각화를 모색했다.

시간이 지나면 누렇게 변색되는 다른 종이와 달리 한지는 오히려 결이 더 고와진다고 한다.  2층에 이어진 전시장에서 한은선 작가의 작품과 마주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한지를 타고 줄기를 뻗어간 물빛에서 아스라한 에너지를 느낀다. 도윤희 작가의 작품은 시간은 시각으로만 인지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다. 작품 제목 말마따나 ‘보인다기보다는 차라리 들리는’, ‘온몸의 분자가 가장 순수하고 황홀하게 들썩거’리며 느끼는 것이 시간이다.

세 번째 섹션에는 전시회의 이름이 유래한 고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마련돼 있다.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라는 작품은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의 기록이다. 순환과 회생, 짧은 생을 살다 흩어지는 인간으로서 참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시간의 속성일 것이다.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라도 둥근 모양의 시계는 시간의 순환성에 대한 가장 명료한 상징이다. TV 수상기 안, 토끼 모양의 도자가 달 위에 사뿐히 앉은 작품은 한국적 시간관을 집약했다. 달 항아리와 산 그림으로 강익중 작가 또한 자연과 우주에 맞물린 시간관을 표방하는 듯하다.

다시 1층으로 이어진 전시장에서 함연주 작가의 작품을 봤을 때 느낀 것은 ‘긴장’이다. 작가의 몸에서 나온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교차하며 맺혀 있다. 김홍주 작가의 작품에서 미세한 붓질의 향연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파스텔 톤인데도 그림이 자아내는 강한 힘을 목도하게 한다. 무수한 선의 조합이되 균형 잡힌 교차점이 보이는 존 배 작가의 드로잉 또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감내한 흔적이 서려있다.

전시장에서만큼은 시간을 유영하고 싶었다. 도슨트 해설 시간대를 피해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된 양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밖으로 나오니, 조금 노곤했다. 그렇게 미술관을 돌아 나오려는 순간,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 작품 ‘풍화’가 화단 안에 서 있었다. 개미와 벌이 기웃거리고, 나뭇잎이 묻어 조각의 형태가 다소 이지러져 있었다. 전시가 지속되는 두 달 동안 새로운 모습으로 그 시간을 고이 감내할 것이 분명하다.

△일시:~7월 4일까지
△장소:덕수궁미술관
△관람료:5,000원(덕수궁입장료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