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로 메디신

기자명 고두리 기자 (doori0914@skku.edu)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에 있는 C(Choice, 선택)라고 외친 사르트르의 명언처럼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도 선택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들은 이제 운명의 결정을 해야 한다. 기계에 의존해 연명(延命)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최근 고통스럽고 가망이 없는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자는 ‘슬로 메디신(slow medicine)'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연명치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자는 움직임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슬로 메디신은 미국 뉴햄프셔 주에 있는 켄달 실버타운이 그 중심에 있다. 초기 치매를 앓던 86세의 한 노인은 인후암 진단이 내려지자 고민하게 된다. 수술을 하면 치매가 더 악화될 수도 있고, 가족들과 대화하기는커녕 얼굴조차 못 알아보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올 수도 있다. 결국 그는 마취, 수술 등 전면적인 치료를 거부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슬로 메디신의 길을 택했다. 

미국 다트머스 의대 데니스 매컬러프 박사는 회복 가능성이 낮은 병을 앓는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치료는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삶의 연장에 불과하며,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막는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인위적인 치료를 강요하기보다는 안락하게 생을 마감할 선택권을 주자는 게 바로 그가 주장한 '슬로 메디신'의 모토다.

이러한 느림의 의학은 죽음을 앞둔 환자가 편안한 임종을 맞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hospice)에서도 나타난다.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환자의 치료를 돕고, 심리적ㆍ종교적으로 도움을 줘 인간적인 마지막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호스피스와 슬로 메디신 둘 다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자는 견해는 같지만, 호스피스는 환자의 주체적인 선택이 아니라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점에서 슬로 메디신과 차이가 있다.

서양에서는 말기 암 환자의 상당수가 남은 2~3개월 동안 치료를 하지 않고,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이 있어 환자가 기계적 호흡이나 심폐소생술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말기 암 환자는 대다수가 수명을 조금이나마 늘리기 위해 항암제를 투여하거나 수술을 감행한다. 생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거부감으로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대해 한국죽음학회 초대회장 최준식 교수는 “삶이란 죽음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데 한국인은 삶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다”며 “치료에만 매달리다 정작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이별을 못한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세속적인 가치에 천착 돼 현세만이 가치 있다는 편향된 생각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상적인 죽음이란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 정리를 끝내고 가족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 둘러싸여 가는 것, 즉 슬로 메디신이 아닐까.

사람은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지만 여전히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울 따름이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천천히, 조금씩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제 우리는 웰빙(well-being)과 함께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