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은혜 편집장 (amy0636@skku.edu)

# 지독한 무더위다. 선풍기를 틀어도 이 망할 더위는 가시질 않는다.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지나가던 놈팽이 같은 자식이 나를 째려본다. 기분 나쁘다. 너무 화가 나 결국, 그 자식을 죽였다.
# 아침이다. 어김없이 엄마는 나를 깨운다. 그 어떤 시끄러운 알람 소리보다 엄마가 나를 깨우는 그 소리에 더욱 화가 치민다. 졸려 죽겠는데.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용돈은 다 쓴지 오래기에 엄마에게 손을 내민다. 돈이 없단다. 짜증나. 결국, 엄마를 때리고야 만다.


혹시 위의 두 사례를 읽고 “어머, 어떻게 저런 일이… 난 저런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학우가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너무나도 끔찍하다. 듣기도 싫을뿐더러 보기는 더더욱 싫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쉽게 위와 같은 뉴스는 접할 수 있다. 실제로 두 사례는 필자가 아침 뉴스에서 불과 며칠 사이에 시청한 내용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상황에 계속해서 올라오는 속보, 여자친구 어머니 납치사건에서 살인사건으로까지 이어진 범죄까지 더해진다면 끔찍한 일은 정말, 많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도대체 위의 일들이 누군가를 때리고 죽일 일인가. ‘싸가지 없다, 성질 나쁘다’ 등의 이야기를 간혹 듣는 사람으로서 보아도 전혀 그럴만한 일은 아니다. 호랑이의 발톱, 치타의 빠른 발이 없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 언어를 통해 대화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자,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저 단편적인 사건들 뒤엔 다른 무시무시한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 동료 기자의 책을 보면서 꽤나 명쾌한 해답을 찾았다.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며 이렇다. 책 속에선 저자가 20대들의 고민에 관한 상담을 해주었는데 한 20대 청년의 고민은 본인이 지나치게 다혈질이라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싸가지 없다, 성질 나쁘다’ 등의 이야기를 간혹 듣는 본인은 다혈질의 성격도 갖추고 있다. 가져서 득볼 것 없는 세 가지 악질 품성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그 청년의 고민에 완벽히 공감한 본인에게 저자의 상담 내용은 ‘쿵’하는 충격을 주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본인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크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이미 화가 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무언가에 화가 나 있는데 주변에서 신경을 건드렸기 때문에 폭발하듯 화를 낸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첫 번째 사례의 저 사람은 취업에 40차례나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이 면접 때 보았던 인사담당자의 눈과 같았다면? 화가나있는 그의 무의식을 자극해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 다혈질 및 무심결에 화내는 사람들을 설명할 수 있는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살인을 저지르고, 죄 없는 사람을 이유 없이 해하는 ‘묻지마 범죄’까지 정말 비상식적인 범죄가 만연한 지금. 이 사회의 구성원은 무언가에 단단히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이는 삶의 무게에 찌든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20대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사회를 향해서 혹은 개인의 문제로 인한 이미 우리 화가 났다.
사회를 향해 화가 난 당신이라면 안타깝지만 직접적으로 화를 내기에는 보다 어렵겠다. 하나 하기도 힘든데 10개가 넘는 과목을 완벽히 공부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 화내면 부모님들의 희망인 대학교 입학을 못한다. 돈도 잘 벌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등록금 인상하겠다는 대학 사회에 화를 내봤자 학교만 못 다닌다. 비판적이지만 양심껏 글 좀 써보겠다고 화를 내보아도 퇴학 혹은 퇴사만 당할 뿐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사회에 화를 내보겠다. 우리를 더는 화나게 하지 말길 바란다. 우린 애꿎은 사람한테 화내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