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제본가 조효은씨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책 한 권 한 권이 저마다 나름의 표지를 빛내고 있다. 알록달록한 표지부터 중후한 멋을 지닌 표지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를 만든 제본가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진다. 책장을 넘겨보아도 한 땀 한 땀 그것을 꿰맸던 제본가의 노력이 전해진다. 예술제본가의 정성을 담은 책은 예술로 다시 태어난다. 국내 최초의 예술제본소 렉또베르쏘, 그 곳을 운영하고 있는 조효은 씨를 만났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책들, 그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제본이 그녀의 손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의된다.

성대신문(이하:성) 예술제본이라는 말이 생소한데, 무엇인지 궁금하다

조효은 예술제본가(이하:조) 예술제본은 의미 있는 저작물을 견고한 책으로 만들어 보존하는 작업이다. 또 훼손된 책을 보수ㆍ복원하여 다시 책으로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제본은 기술적인 부분만 부각되는 제본과 달리 예술적인 측면도 담고있어야 한다. 하지만 소위 ‘예술’이라 불리는 것만을 담아내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바꿔보면 예술의 범위가 넓어진다. 실로 꿰매고 프레스기로 찍어내는 과정에서 들이는 진정한 노력이 모두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예술의 경계를 제한할 필요 없이 예술제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성 : 그렇다면 조효은 대표가 생각하는 ‘예술제본가’의 정의는 무엇인가

조 : 단순하게는 예술제본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책을 제본하는 과정에 진정한 노력을 담으면 예술제본가라고 할 수 있다. 또 예술제본가는 제본이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부각시킨다. 즉 책 자체가 담고 있는 가치를 변형하지 않고 그를 보존하기 위해 작업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술제본가는 앞선 세대와 이번 세대의 책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술제본가는 ‘문화의 전달자’가 아닐까?

성 : 이 일을 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알고 싶다

조 : 원래는 평범한 경영학과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껴서 휴학을 하고 관심을 두던 예술제본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국내에 예술제본을 처음 들여오신 백순덕 선생님을 찾아가 작업을 배우게 됐다. 실제로 배워보니 예술제본만의 매력에 휘어잡혔다. 이 일은 단순히 종이를 꿰매는 작업이 아니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 있던 모든 사람들, 예컨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제지공 △편집자의 노력을 책으로 완성시키는 일이었다. 이런 매력에 반해서 예술제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성 : 활동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지

조 :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 이 직업을 가진 덕에 몇몇 희귀한 책을 볼 수 있었다. 한 예로 가장 좋아하는 책인 괴테의 <파우스트> 초판본을 제본했을 때 직접 그 책을 만진다는 사실에 굉장히 기뻤다. 좋은 책을 만나서 예술제본하는 순간과 주인이 그 결과물에 만족하는 순간에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성 : 책과 뗄 수 없는 직업인데,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조 : 사람마다 책의 가치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는지는 다를 것이다. 혹자는 책이 잘 팔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E-book의 경우에는 휴대성이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책의 보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질이 좋은 종이를 써서 잘 제본하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책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가독성이 좋은 활자를 써서 인쇄하고 좋은 내용과 그림을 담는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물론 예술제본을 통해 책에 유일성을 부여해서 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 예컨대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 받은 책이나 어릴 때 쓴 일기와 같은 것은 개인에게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이것이 예술제본가의 손을 거치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으로 다시 태어난다. 어느 한 사람에게 이 책은 그 자체가 굉장히 큰 가치를 지닐 것이다.

성 : E-book의 등장이 지금의 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조 : 기술의 발전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book은 어디서든 볼 수 있으며 많은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 휴대성도 뛰어나다. 분명히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E-book이 종이책의 가치를 감소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세상에 디지털적인 요소가 극대화될수록 아날로그를 찾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아날로그라는 기초를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MP3 플레이어가 보급된 이 시대에 LP판을 찾는 사람들처럼 여전히 종이책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 종이책이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성 : 예술가에겐 소통이 필요할 텐데, 대중들과의 소통 방법이 궁금하다.

조 : 가장 크게 △교육 △전시회 △주문제작의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공방 렉또베르쏘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주문을 통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주로 소장이나 선물의 용도로 주문이 들어온다. 지인이 아끼던 책을 받아와서 그것을 제본한 뒤에 다시 선물하는 사람도 많고 출판사에서 작가들을 위해 1쇄 한 권을 예술제본하기도 한다. 이렇듯 예술제본을 통해 작품과 그 속에 담긴 사연을 알 수 있고, 결국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다. 또한 전시회를 통한 소통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시회를 통해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책 문화도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책을 읽는 것 말고 다른 문화도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싶다.

성 : 예술제본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가진 꿈이 있다면

조 : 예술제본을 가르치는 공방 렉또베르쏘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백순덕 선생님에게 예술제본의 진정성을 배웠던 덕에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예술제본의 교육 과정을 체계화하여 제대로 된 학교를 설립하고 싶다. 작품 활동을 할 시간적 여유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내가 세운 교육기관에서 배출한 제자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면 이를 통해서도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교육을 통해 국내에 예술제본이 꽃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