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멜리에> 속 그림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기자명 박하나 기자 (melissa12@skku.edu)

주인공 아멜리에에게 현실은 지루함의 연속입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친구 하나 없는 현실 속에서 아멜리에는 상상의 세계로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그 곳에서는 레코드판이 팬케이크처럼 구워지고, 혼수상태의 환자는 나중에 실컷 놀기 위해 평생 자야할 잠을 몰아 자고 있을 뿐이지요.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그녀의 세상은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녀의 상상, 아름다운 색감으로 그려지는 이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화사한 빛으로 일상의 행복을 채색해 행복의 화가라고 불리는 르누아르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아멜리에와 함께 평범하면서도 조금씩 독특한 취미들을 가진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는 르누아르가 담아내고자 했던 미미한 것들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일상, 바로 그것이지요. 영화 속에는 이런 르누아르의 화풍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가 등장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화가가 매년 한 점씩, 자그마치 20년 동안 모사해온 그림이지요. 이 노화가는 르누아르의 모자와 옷부터 얼굴과 연약한 모습까지 닮았습니다. 마치 그림 앞에 살아 돌아온 르누아르 같지요. 그가 그려내는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버섯과 토끼요리, 그리고 잼을 바른 와플만으로도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상상의 세계를 벗어난 그들의 현실은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외로움을 지니고 있지요. 뼈가 약해 20년간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유리인간, 어수룩하고 착하지만 야채 가게 주인 꼴리뇽에게 늘 구박만 받는 루시엥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행복을 완성하기 위해 아멜리에는 누군가에게는 기적을 가져다주는 수호천사가 되기도, 누군가에게는 복수를 대신해주는 조로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아멜리에는 그 누구보다도 외롭습니다. 그녀는 주변인물의 불행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불행에는 관심을 두지 않지요. ‘남을 돕는 게 인형과 노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는 아멜리에의 외로움은 그림 속의 물잔을 든 여인과 동일시되면서 더욱 극대화됩니다. 노화가는 20년 동안이나 그 그림을 모사했지만, 물잔을 든 여인의 표정만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완벽한 모사를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그림 속에서 누구에게도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그 여성은 바로 영화 속에서 늘 혼자였던 아멜리에의 모습이지요. 아멜리에는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그림 속에서 혼자서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여인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노화가는 비로소 아멜리에의 고독을 눈치채게 되지요.

외로움을 피해 숨어든 상상의 세계 속에서 빠져나올 용기를 잃어버리고만 아멜리에에게 노화가는 충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가끔은 까맣게 잊고 살았던 어렸을 적의 보물을 되찾는 작은 기적이 일어나는 현실세계에는 그 이상의 행복이 숨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 살아 돌아온 르누아르의 도움으로 마침내 아멜리에는 현실세계에서의 그녀의 행복을 되찾습니다. 노화가 자신도 그림을 완성해내지요. 르누아르의 소소하지만, 눈물 날만큼 따뜻한 행복이 오롯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르누아르가 그려내고자 했던 행복은 백만장자의 부유함도, 천재의 박식함도, 왕이 가지는 명예와 권위도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행복을 찾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