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 아카데미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저녁 7시, 이름만 들어선 낯선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설의 미로』 강의가 시작될 무렵이다. 수강생들은 한 손에는 커피 한 잔, 다른 손에는 제목으로 보아 언뜻 묵직해 보이는 책을 들고 강의실에 들어선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두 화두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수강생들의 눈에선 진지한 학구열이 엿보였다.
윤이삭 기자 hentol@skkuw.com

'대중과 호흡하는 인문학’을 지향하는 철학 아카데미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그 사이 많은 아카데미들이 생겨났고 ‘CEO를 위한 인문학’, ‘성공으로 가는 리더십과 인문학적 소양’ 등의 신생 강좌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 속에서 철학 아카데미는 대중의 입맛에 맞는 시중의 가벼운 강의들과는 달리 순수 학문을 대중에게 알리려는 초심을 묵묵히 지켜왔다. 철학 아카데미의 김진영 상임위원장은 “철학 아카데미는 최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 수강생의 비판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도록 강의를 선정하고 있다”며 “전문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박사학위 소지자, 큐레이터 등 전문 연구자들이 강의하는 철학 아카데미 강좌는 기존에 국한됐던 철학 영역을 넘어 예술 이론과 같은 미학 분야를 포함하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라틴어와 희랍어 등 철학 원전의 생소한 언어를 가르치는 어학 수업도 개설돼 있다. 수강생 중에는 대학원생, 교수 등의 전공자들이 많지만 고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철학에 목말라하는 일반인도 다수를 차지한다. 한 수강생은 “인문학은 어느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찾기 힘든 철학 분야와 깊이 있는 고급 지성 강의를 접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설 기관에서 순수 학문을 배우는 이유에는 철학 과목이 교양 필수과정에서 부재한 대학가의 현실을 꼽을 수 있다. 대학생의 순수 학문 기피 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하고, 경제적 실리 위주의 교육을 지향하는 대학사회 현실에 대해 김 상임위원장은 “그럼에도 대학만이 유일하게 인문학적 교양을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고, 반드시 그렇게 돼야만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대학이 직업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취업의 전초기지 역할만을 수행해선 안 된다”고 견해를 밝혔다.

철학 아카데미는 그간 강연이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일반인에게도 철학적 사고의 기회를 제공해왔지만 심도 있는 연구에도 주력하는 것이 앞으로의 주된 계획이다. 전문 연구를 진행해 학문적 성과를 거두고, 재정상의 어려움 때문에 중단됐던 기관지 『아카필로』를 다시 발간해 이를 지면에 싣는 것도 목표다. 대중의 인문학적 지평을 넓혀줌과 동시에 꾸준한 학술적 성취를 지향하는 철학 아카데미의 행보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시장 원리에 종속됨에 따라 위기에 처한 인문학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철학 아카데미처럼 시민 철학 운동이 하나 둘 결실을 맺는다면 문화와 역사, 철학 분야의 전문 지식이 사장되지 않고 사회에 흡수될 수 있는 통로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