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이삭 기자 (hentol@skkuw.com)

한 주 내내 비가 내리다가 갑자기 날이 갠 지난 27일. 20년 전엔 태백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을 전국 각지로 보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철암역을 찾았다. 현재도 산 전체에 석탄과 석탄 찌꺼기를 검게 쌓아놓고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독특한 모습을 기대하면서 갔다.
주민들은 철암에 찾아온 외지인인 나를 유난히 신기해 했다. 근처엔 관광지도 없는데 왜 왔냐며 물어보기도 하고, 미소를 짓고 지나가거나, 꼬마아이들은 궁금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고, 각종 상권도 몰려 돈을 쓸어 모았었다는 미리 알아본 내용 속 철암의 모습과는 크게 차이가 났다.
그렇게 잊혀지고 없어진 줄 알았던 철암의 ‘한창시절’. 하지만 어르신들은 인사말을 나누자 마자 철암의 ‘한창시절’에 대해 멈추지 않고 얘기하셨다. 아니 그것을 너무나 얘기하고 싶어하셨다. 동네 입구 쪽 세탁소에서 할아버지로부터 소싯적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안쪽 야채가게에서 할머니가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계셨고, 또 끝쪽 중국집에서도 이야기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에 ‘맵시나’라는 자동차가 출시되자마자 집에 쌓아둔 현금으로 바로 구매했다는 이야기부터, 옛날엔 세탁비에 팁까지 추가로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내가 막차를 놓칠 수도 있다며, 조심스럽게 나가기 전까지 어르신들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잘나가던 시절’이 그립거나 아쉬워서라기 보다는 ‘현재의 쓸쓸함’에 못 이겨 과거 이야기를 멈추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에 숙연해지면서도 궁금함에 무례한 질문을 했다.
“다른 분들은 탄광 닫고 나가셨는데, 왜 계속 철암에 계시나요?”
“원래 태어난 곳이 여기가 아니긴 해. 근데 허리띠 풀은 곳이 고향이라 하잖아. 여기서 수 십년 살다보니 나갈 기회는 많았는데, 마음이 떠나지 못하겠더라…”
나무 한그루 없는 검은 민둥산을 고향이라 떠나지 못하겠다는 한 어르신. 그분에겐 석탄이 검은 금덩이가 아니라 세상 떠나고 돌아가고 싶은 흙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