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육장 쪽으로」리뷰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야산을 내달리는 자동차 창유리에 사내의 얼굴이 어린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찾는 듯도 하고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않는 것도 같다. 뒷좌석에는 어린 아들이 잠든 듯 평화롭게 누워 있다. 언뜻 보면 부자의 늦은 귀갓길로 착각할 수 있겠다. 단, 개 이빨에 무참히 찢어발겨 진 아이의 몸뚱이를 보기 전까지. 그 어린 생명에서 흘러나온 피로 흥건히 물든 붉은 시트를 보기 전까지만.
소설 속 사내는 병원을 찾아 헤매고 있다. 미친 듯이 속력을 높여 봐도 그보다 더 빨리 타들어가는 아들의 목숨은 마치 시한폭탄 같다. 누구에게 길을 물어도 개 사육장 쪽으로 가면 병원이 나온다는 똑같은 대답만 돌아온다. 자신이 사육장을 찾는지, 병원을 찾는지, 아들을 물어뜯은 개를 찾는지 이제 그도 모른다. 그저 막연한 질주가 사육장 쪽을 향한 것이기를 무기력하게 바랄 뿐이다.
‘사육장 쪽으로’에는 도시와 전원으로 대표되는 현실 공간에 대한 회의와 혐오가 녹아있다. 징그럽도록 가지런한 일상, 열 맞춰 늘어선 똑같은 모양의 집들, 마네킹처럼 서서 일제히 일정한 속도로 손을 흔드는 이웃들과 그 정신 나간 질서가 맘에 꼭 들어 만면에 미소를 띠는 주인공. 소설을 읽는 내내 불현듯, 도망치고 싶을 만큼 현실에 욕지기를 느낀다. 제 발로 들어간 비좁은 옷장 속은 안락했으나,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갑갑함에 숨통이 옥죄어 드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택하지 않는 한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한 번 느끼기 시작한 염증이 종양처럼 번져버린 공간에서 영원히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이는 헤어날 수 없는 공포이자 완벽한 잔혹이다. 소설을 가장 끔찍하게 만드는 것은 난도질당한 아이의 팔다리도 아니고, 피 냄새에 취한 흉물스런 개도 아니고, 갑자기 발견한 바로 이 작은 사실 한 조각이다.  
자살과 같은 극단을 피하고자 우리는 애써 불편한 진실을 보지 않는 쪽을 선택해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 현실의 끔찍한 구석에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이상과의 괴리를 메우는지도 모른다. 사포로 박박 문질러 자기 색을 지우곤 만족스레 평범함 속에 녹아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로써 또 한 번의 공포가 엄습한다. 벗어날 수 없으니 살아남기 위해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현실에 적응했을 뿐인 우리는 어느새 비판의식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만성적인 무감각을 앓는다. 병든 현실이 벼랑 끝을 향해 굴러가는 줄도 모를 만큼 한 번 시작된 안주는 영면 속 꿈보다 달콤하다. 그렇게 저 스스로 더듬이를 뽑아낸 바퀴벌레는 목숨은 붙어 있되 자신이 어디쯤을 기어가고 있는지 영영 알 수 없다.
현실을 떠나지도, 맘 놓고 머물지도 못하는 우리의 삶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순 속에서 방향을 상실하고 만다. 누구보다 바빴던 오늘 하루는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몸부림이었을까, 안주의 사슬을 견고히 하는 못질이었을까. 더듬이 없는 이마를 내놓고 대체 어느 곳을 향해 겁 없이 걷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