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윤성호 영화감독

기자명 고두리 기자 (doori0914@skkuw.com)

 

사진ㅣ유민아 기자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보통 인터뷰 약속이 잡히면 카페 같은 조용한 공간에서 만나는데, 뜬금없이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만나자니. 이거, 심상치 않았다. 톡톡 튀는 여러 단편영화를 찍으면서 ‘윤성호 표’ 영화가 탄생했고, 엉뚱 재기발랄한 장편영화 『은하해방전선』으로 그의 입지를 굳혀 나갔다. 그리고 최근 인디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까지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윤성호 영화감독을 만났다.

 

#1. 쓴 소리 한 마디 

■ 아니, 여긴 어쩐 일로
1인 시위하는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영진위)는 그동안 운영을 잘 해왔다. 좋은 영화들도 많이 나오고, 독립영화를 위해 미디어액트나 인디스페이스 같은 공간도 마련했으니까.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 영진위가 장난을 많이 쳤다. 그전에 잘 해오던 사업을 이유 없이 관두거나 아예 독립ㆍ예술 영화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심지어 이 돈을 엉뚱한데 쓰려 한다. 4대강 사업 홍보에 쓰려는 건가(웃음). 이러한 잘못된 정책을 사람들한테 알리는 취지에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인과 함께 돌아가면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작품에서만 사회를 비판하기엔 너무 부족했나
시키니까 하는 거다(웃음). 사실 혼자 이렇게 나서서 하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이런 걸로 주목받기도 싫다. 공동체에서 다 같이 마음이 맞아서 하니까 하는 거지.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교류하는 분들 대부분이 독립영화에 종사하는 분들이니까, 지금 이 독립영화가 위기에 빠져있는데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2. 영화, 그것은 ‘동행’ 대상이라네 

■ 그동안 인터뷰를 많이 했다
『의형제』하면 송강호, 강동원이 뛰면 되고, 『아저씨』하면 원빈이 뛰면 되지 않나. 그러나 내가 만든 영화들은 대단한 스타들이 나오는 게 아니니까, 그나마 꾸준히 작품을 만든 내가 직접 뛰는 게 홍보가 되기 때문에 인터뷰를 많이 했었다.

■ 영화를 아는 데 안 보는 것과 몰라서 못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아, 정말 맞는 말이다. 내가 인터뷰하는 이유도 아마 후자 쪽의 관객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닌가 싶다.

■ 보편적인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 남학생이 여학생을 좋아하는데 그 여학생은 남들이 다 좋아하는 여학생이다. 그래서 말도 못 걸고,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그런 상태. 영화에 대해서는 처음 이 정도의 관심뿐이었다. 그러다 그 여학생과 대화를 직접 나눠보고, 데이트하게 되는데, 이때 두 가지로 나뉜다. ‘얘 나한테는 버거운 상대구나’, ‘와, 진짜 사랑하고 싶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건 후자 쪽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호기심 정도였다가 사랑하는 대상이 된 거지.

■ 구체적으로 자극이 됐던 작품이 있었나
제대 후 복학해서 ‘청소년 문학론’이라는 교양수업을 들었는데, 영파여자중학교 방송반 학생들이 만든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라는 작품을 봤다. 자기네 학교 일진 얘기였다(웃음). 퀄리티는 부족했지만, 감정은 굉장했다. 중학생들이 만들었지만 정서적으로도 공유가 되고 재밌게 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걸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 같다. 그때 만약 실력 있는 감독들의 한국영화를 봤더라면 ‘영화는 굉장한 사람들만 만들 수 있는 거구나’라고 느꼈을 텐데, 이 작품을 통해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 단편 『삼천포 가는 길』을 찍게 됐다.

■ 윤성호의 대학 시절, 뭔가 특별할 것 같다
기억에 남는 특별한 날이 없는 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나는 대학생 때 재밌거나 설레었던일이 없었다. 그저 공강 시간에 농구하는 게 제일 신났다. 남들 기준으로 볼 때는 심심해 보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이 시절이 마치 은행 금고 같았다. 느리게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들, 풍경 등 많은 것들을 관찰했다. 이렇게 관찰했던 게 영화를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됐다.

#3. 못 말리는 그의 열정

■ 여러 단편영화를 찍고, 지난 2007년 첫 장편영화 『은하해방전선』을 찍었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은데
단편을 찍을 때는 계속 소개팅이나 미팅을 한 느낌이었다면, 『은하해방전선』은 마치 동거한 느낌? 단편영화를 찍을 때는 내가 가진 인력이나 자본이 부족했으니까 유통구조가 단편적이었다. 그래서 뭔가 짧게 끝난 느낌이었다면, 『은하해방전선』은 대중과 조금은 더 길게 만날 수 있지 않았나. 살림살이를 잘했든 못했든 애틋할 수밖에 없다.

■ 이 영화는 ‘소통’을 얘기하고 있다. 소통의 단절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우리 사회가 소통이 단절됐다고 생각했다. 소통이라는 게 내 얘기를 하면서 남의 말도 들어주는, 서로가 정보와 정서를 공유하는 노력이지 않나. 서로 마음들도 비슷하고, 욕망도 비슷한데 왜 이렇게 말을 예쁘게 못 할까. 그런데 지난 3년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소통이 서툴러서가 아니라 욕망 자체가 서로 다른 거였더라. 이 사회에서 얻고 싶은 것, 갖고 싶은 몫이 서로 다르니까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소통이 안 되는 ‘척’을 하는 거다. 소통이 안 된다는 건 껍데기일 뿐이다. 우리는 소통이 부족한 게 아니라 욕망의 방향이 어긋난 게 아닌가 싶다. 

■ 영화 속 대사들이 마치 자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처럼 솔직하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 대부분 내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점이 있는데, 영화 속 어느 화자가 하는 모든 말이 감독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감독은 그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이런 대사도 하고, 저런 제스처를 요구하는 것뿐이지 감독의 복화술은 아니다. 언제 한 번 영화 상영을 하고 난 뒤 한 여자 분이 나에게 와서 무척 분개하시더라. 『은하해방전선』에서 한 중년(박혁권)과 여고생이 사귀는 데, 감독이 이런 걸 주장하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난 딱 두 가지를 말했지. 좋아해서 사귈 수도 있다, 그리고 감독이 영화 속 모든 행동을 사회에다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1인 시위가 끝나고, 자리를 옮겨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다시 인터뷰를 이어갔다.)

■ 몇 달 전, 서울인권영화제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청각 장애인을 위해 사회자가 하는 모든 말을 일일이 타자로 쳐서 스크린에 비춰주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런데 감독님 작품들을 보면 유난히 한글자막도 많고, 무성영화 느낌이 나는 작품들도 몇 개 있더라
처음에는 조금 특이한 내러티브 장치를 주고 싶어서 자막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청각 장애인분들이 내 작품을 보고 칭찬을 해주시더라. 그 뒤로는 자막을 많이 넣기 시작했다. 이번 인디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도 10편 모두 자막을 넣었다.

■ 마침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질문을 하려던 참이었다. 인디시트콤,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만들려던 참이었는데, 뭔가 자신이 없더라. 장편은 단편과 다르게 호흡이 길고, 만드는 기간도 길어서 그만큼 자기 안의 확신이 없으면 그 프로덕션을 끌고 가기 어렵다. 하고 싶은 얘기는 있는데.. 그렇다면 시트콤으로 해소해버릴까? 나는 방송국 PD가 아니니까 그럼 인터넷으로 올려보자고 생각했다. 독립영화를 배급하고 제작하는 분들도 이런 콩트에 대한 제작경험이 필요했었고, 그래서 같이 힘을 모아 만들게 됐다. 5분 정도의 짤막한 에피소드 10편으로 이뤄진 시즌1이 끝났고, 현재 시즌2를 만들 계획이다.

■ 트위터, 블로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사실 관객과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은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다. 영화 바깥에서 소음이 많다고 해서 관객들이 스크린에 집중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주로 트위터에서 내 영화 얘기는 거의 안 한다. 거기서는 자연인 윤성호지. 그러나 인디시트콤은 별개다. 시트콤이 일주일마다 한 편씩 올라오는데, 그 사이에 간격이 있지 않나. 시트콤을 본 분들은 그 사이에 자신만의 상상을 동원해서 스토리를 창조해낸다. 그걸 적절히 이용해 부추기면 시트콤에 대한 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매주 올라오는 동영상과 댓글들을 포함한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4. 두근두근, 윤성호의 꿈 

■ 예전보다 독립영화를 찾는 관객들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독립’이라는 말이 관객에게 불편하게 느껴진다
어떤 분들은 ‘독립’이라는 말을 왜 붙이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독립영화라 말하는 건 아마도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 우리는 물리적으로도 제압할 수 있지만, 말 한마디로도 엄청난 힘이 있다. 말을 하는 순간 시공간이 생기는데, 만약 그 존재한테 설명하는 말이 없다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독립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무슨 영화야’라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토를 확보함으로써 더 뻗어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독립영화라는 어휘에 힘입어서 무언가를 만들고 힘을 모았지만, 반대로 독립이라는 말로 편견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나이가 먹을수록 영화를 만드는 게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는 혼자 먹는 게 아니라 옆에 배우와 스태프들과 같이 먹는다. 예전에는 창작의 고민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이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일을 할 수 있을까’도 고민해야 하니 참 녹록지 않다. 독립적인 작업을 하면서 대중적으로도 재생산되게 하는, 마이너한 나의 작품을 지켜봐 준 관객들에게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더 큰 공간에서 관객들과 마주할 수 있는. 이 두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게 목표다. 넘어지면 큰일 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