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의 자활 의지 고양 … 장차 보급 계속돼야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1995년, 미국의 사회비평가이자 작가인 얼 쇼리스는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8년 넘게 복역 중인 여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라고. 이에 대해 그녀는 “우리가 가난한 건 우리에게는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이다”고 답한다. 의외의 대답에 놀란 쇼리스가 “정신적 삶이 무엇인가?”라고 되묻자 그녀는 “저기 저곳에 있는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같이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얼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황폐해진 정신을 추스를 수 있는 인문학 교육이라 생각했고, ‘클레멘트 코스’를 개설했다. 노숙인, 마약 중독자 등 소외계층에게 인문학을 가르친 결과, 17명 중 16명이 일자리를 구하거나 진학했다. 인문학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자활 의지를 북돋아 주는 놀라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처럼 인문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고 지적 능력과 사고 능력을 길러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신 건강을 회복하고 행복해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를 토대로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한국(HK: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인문학 및 해외지역연구 분야의 우수 연구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우수 연구소를 선정하여 육성하는 인문학 진흥사업) 인문치료사업단이 2007년에 인문치료학(Humanities Therapy)을 공표함으로서 세계의 유수한 학자들과 학회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인문치료학은 인문학의 각 분야와 연계 학문의 치료적 내용과 기능을 학제적으로 통합해 사람들의 정서적, 신체적 문제를 예방하고 치유하는 활동이다.
인문치료는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의 치유 활동과 정상인을 대상으로 한 예방적 치료, 청소년이나 노인 등 인생의 각 단계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그 연령대의 문제와 방향 설정을 다루는 발달적 치료를 포함한다. 병원, 재활원, 요양원을 넘어서 교도소, 학교, 청소년센터 등에서도 인문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치료에는 인문학의 고유한 기법인 △철학적 사고 △문학적 상상력 △연기하기 △정서적 교감 등의 문학적ㆍ언어적ㆍ철학적ㆍ예술적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자서전 쓰기’ 기법은 글쓴이가 자아를 확립하고 개인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치유방식이다. 글쓰기를 통해 고통스러운 과거를 털어놓음으로써 숨기고 싶은 과거와 화해하고,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떠올린 건강한 미래상을 자서전 속 미래의 삶 속에 투영해 현재의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개인은 상처를 치유하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활자화를 통해 삶의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다. 한국 독서치료학회의 지상선 간사는 “인문학에 담겨 있는 다양한 삶을 감상하며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최근에는 인문학에서 비롯된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으로 인문학에 대한 저항을 줄여가면서 인문치료학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문치료학의 등장은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 정신적 빈곤에 직면한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정체성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은 이전보다 많은 유형의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됐고, 이에 따라 정신적 만족과 가치관 정립을 위한 인문학적 접근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인문학적 성과와 가치를 인간의 정신치료에 반영하여 활용하려는 시도는 그간 부족했다. 인문치료학의 개념은 아직 폭넓게 확산되지 않았으나 치료가 실생활에 접목되면서 학문적ㆍ실용적 체계를 갖춰나가고 있다. 노숙인 지원 기관인 다시 서기 지원센터,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등 많은 곳에서 인문치료가 진행 중이고 △인문과학연구소 △한국 통합예술치료상담학회 △한국 독서치료학회 △한국 인문치료학회 △한국 통합문학치료학회 등에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인문치료학은 실용성 문제를 지적받았던 이전의 인문학을 보완한다. 이러한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이외에 일반인도 일상생활에서 인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 통합예술치료상담학회의 나해숙 학회장은 “개인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치료에는 우울할 때 우울한 음악을 듣는 방법 등이 있다”며 “이는 동질화의 원리를 이용한 치유 방식으로 경쾌한 음악보다 우울한 음악이 치유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의 인문치료가 우리 사회와 개인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지는데 앞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