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수제화 장인 남궁정부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세창정형제화연구소 창문을 가득 메운 감사의 목소리. ‘할아버지, 내 신발이랑 실내화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또박또박 쓴 병아리 글씨가 사랑스럽다. 모두 주름살 가득한 웃음 발라서 정성껏 붙여 놓은 편지들이다. 저 꼼꼼한 손길에는 왼손 자국은 있을지언정 오른손 자국은 없을 테다. 그는 외팔로 장애인을 위한 신발을 만드는 수제화 장인이니까. 시침 뚝 뗀 채 선반 위에 앉아 있는 예쁜 신발들이 보이는가. 까치발하고 그 속을 들여다보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 슬프게 뒤틀리고 아프게 부어오른 그들의 비밀스러운 눈물을. 세상에 단 하나 오직 당신만을 위해, 손님의 조각 조각난 맘까지 이어 박아 만든 예술작품 같은 신발들. 그 반짝이는 구두코에 어른거리는 얼룩진 삶 이야기에 귓바퀴를 모아보자.



엄보람 기자(이하:엄) 의료보조기를 상상했다가 깜짝 놀랐다. 아름답기도 한 이 신발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남궁정부 수제화 장인(이하:남궁) 일단 발바닥이 땅에 닿는 모양이랑 정도를 측정한 후  양발의 균형을 엇비슷하게 맞추지. 그리곤 발 모양 본을 뜨고, 그걸 보면서 디자인을 궁리하는 거야. 소아마비 같은 경우에는 틀에 변형을 줘서 걷는 데 균형을 실어야 하고, 다리 길이가 다르다면 깔창 높이에 차이를 둬야지. 장애 가진 사람 발이야말로 천태만상이라 기본 틀이란 게 없어. 덕분에 거의 매일매일 새 신발을 만드는 거나 다름없지. 일단 디자인이 결정되면 정성껏 만드는 거 말고 별다를 것이 없어. 걸리는 시간은 이제 많이 단축됐지만 그래도 최소한 일주일은 쏟아야 하나 만들어. 예쁘게 만드는 거야 뭐, 사고당하기 전에 늘 하던 건데 어려울 거 있나. 기왕지사 보기도 좋고. 

엄 남궁 장인의 손을 거친 신발에는 어떤 색깔의 ‘구두 철학’이 찰랑거리고 있나
남궁 한쪽 다리가 짧은 사람에게는 그만큼을 받쳐주고, 화상으로 발이 오그라든 사람에게는 평생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발끝을 만들어 줘야 해. 이렇게 모자란 몸을 채워준다는 의미가 강하니까 장애인을 위한 신발은 ‘신체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 고로, 실수로 잘못 높인 바닥 1mm가 그들한텐 치명적이야. 한 짝은 하이힐, 나머지는 운동화 싣고 걷는 것처럼. 그러니까 장애인 수제화는 ‘제대로 알고 제대로 만든 신발’이라는 의미도 내포해야 해.

엄 누군가 먼저 닦아 놓은 자국도 없는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일 텐데 힘든 점이 있다면
남궁 특별히 힘든 건 없어. 그냥 가끔가다 생소한 발, 유독 어려운 발이 있어서 나한테 고민을 안겨주곤 하지. 두 짝 모두 최대한 엇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은 하지만, 한쪽 발이 너무 크거나 하면 티가 안 날 수 없거든. 평생 신발 한 번 신어보는 게 소원인 사람들이라 잘 만들어주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아쉬워. 이밖에 뭐 경제적인 어려움이야 있긴 있었지. 지금 많이 나아졌지만, 처음에는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어. 의료보험도 안될 만큼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개념이었으니까 외부 지원 없이 오롯이 개인이 해야 하는 일이었지. 나중에 의료보험이 적용된다고 좋아했더니만, 또 그걸 악용하는 사기꾼들이 생겨나 버리고 말이야. 열심히 신발 만드는 곳까지 피해를 봐서 속상해.

엄 일을 하다 문득, 새삼스럽게 깨닫거나 얻어가는 것이 있을 것 같은데
남궁 이런 신발 만들기 전엔 예쁜 발만 예쁜 신발을 신고 싶어 하는 줄로만 알았고, 딱 하루만이라도 짧은 치마에 구두 한 번 신어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있단 사실도 몰랐어. 이제는 나도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서 그 사람들 마음을 알 수가 있지. 손님들도 처지가 비슷한 나를 보고는 좀 더 편하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니까 그만큼 깊은 소통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이런 점이 일에도 큰 도움이 되지. 오래된 손님과는 가족같이 편안한 사이가 됐어. 내 손자뻘 되는 꼬마들이 신발 맞추러 찾아와서는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살아야 내가 신발 신고 다닐 수 있어!”라면서 어리광도 부리고 가고, 꼭 신발 맞추러 오는 게 아니라 지나가다가 그냥 들러서 사는 얘기 나누곤 해. 신발은 어쩔 수 없이 신을수록 닳아 소모되지만 이런 게 나한테 남는 거 같아.  

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을 묻는 말, 제일 귀여운 자식 놈 꼽으란 것처럼 들리겠지만 살짝 여쭤도 될까
남궁 사연 깊은 손님이야 셀 수 없지만, 날 때부터 걷지를 못해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 나한테 신발을 맞춘 친구가 생각나. 젊은 여자 손님이었는데 걷고 싶다는 소망에 수술하곤 막상 걷는 연습 시작하려니 신발이 필요했지. 완성한 날 가져가서 신발을 신겨줬더니, 신기하게도 그 손바닥만 한 발로 걷더라고. 그렇게 인연이 닿은 후로 계속 신발을 만들어 주다가 하루는 하얀 신발 하나 만들어 달라고 찾아왔어.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갈 때 신을 거라면서. 결혼할 남자도 같이 왔는데 두 발 멀쩡한 훌륭한 청년이더라고. 이 친구 속 됨됨이를 알아본 게 기특해서 내가 연방 얘기해줬어, 당신 정말 천사라고. 그 친구는 내가 만든 하얀 신발 신고 예쁘게 식장에 들어갔어. 그런 일 참 못 잊지.

엄 온 일생을 구두에 바치고 어느새 일흔을 넘긴 지금, 기우든 남가일몽이든 시원하게 털어놓아 보신다면
남궁 골치 아픈 고민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돈도 적게 버는데, 누가 이 일을 하려고 들까 싶어 늘 걱정이야. 이런 곳이 사라질수록 신발 가격도 더 비싸질 텐데 내가 언제까지나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들한테 기술 전수해 주고 전문적으로 기능공들 양성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일단은 여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게 우선이지. 이거 없어지고 나면 지금 사람들은 어디 가서 신발 찾아 신겠어. 뭣보다도 내 구두를 신고 문을 나서는 그 사람들 다 잘되길 빌어, 걷는 것도 나아졌으면 좋겠고. 손님들 걸어나가는 뒷모양을 보고 있으면 나도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란 걸 느껴. 저 힘든 발한테는 내가 꼭 필요하구나, 하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