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예술관, 가례헌

기자명 박하나 기자 (hana@skkuw.com)
목요일 저녁, 은행나무가 휘늘어진 광희문 길을 찾았다. ‘국악예술관, 가례헌’이란 노란 간판을 따라 들어가니, 일반 가정집과 같은 들목이 보인다. ‘국악 사랑방’이라고도 불리는 가례헌만의 친숙함이 손님을 맞는 그네의 얼굴에서, 식사를 권하는 손짓에서 자연스레 묻어났다.

2003년 1월 젊은 사람들도 서도 소리를 즐기게 하기 위한 공간으로 시작된 가례헌은 현재 국악의 전반을 만나볼 수 있는 상설공연장이 됐다. 가례헌을 설립한 박정욱 명창은 “서도소리의 전승을 걱정하시던 고(故) 김정연 스승님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했다”며 “지금은 국악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돕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목요예술의 밤’이 열린다. 9일에는 가무악향연, 16일에는 퓨전 국악을 주제로 한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며, 30일에는 젊은 국악전공자들의 공연이 준비돼 있을 만큼 매주 다양한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국악이라는 이름 아래 시도되는 새로운 공연들은 이곳에 발을 들인 손님들을 몇 번이고 그 자리로 다시금 불러들인다.

그뿐만 아니라 가례헌에서는 흥겨운 국악 공연과 함께 한국 문화의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다. 공연 전에 제공되는 정갈한 저녁 식사는 우리네 소담한 시골 밥상이며, 후식으로 즐기는 차에서는 따뜻함과 함께 정겨운 담소가 우러난다. 뒤풀이에서 즐기는 막걸리와 파전은 공연으로 돋은 흥을 더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가례헌 곳곳에 놓인 전통 목가구와 탈, 부채와 같은 공예품에는 세월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전통의 풍미가 물씬 느껴지는 장소에서 국악은 더욱 맛깔나게 살아난다.


넓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많은 국악 공연과 달리 무대와 가까이 위치한 객석은 국악의 신명 나는 울림과 그 애절한 떨림까지 관객에게 전달해준다. 고수의 북 장단이 지척에서 둥둥 울리고 마이크 없이도 명창의 음색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는 국악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관람객들은 태평가, 뱃놀이노래 등의 후렴구를 함께 따라 부르거나 ‘얼씨구’, ‘그렇지’, ‘예쁘다’와 같은 추임새를 넣는가 하면, 아리랑의 한 소절을 배우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공연 후 방금 만든 파전을 앞에 놓고 막걸리를 한 잔, 두 잔 주고받으며 소회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다음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는 친구가 된다. 가례헌을 자주 찾는다는 부경진 씨의 ‘식구 같아서 좋다’는 표현처럼 오늘 처음 본 사람과도 스스럼이 없다. 이곳을 아끼는 또 다른 이, 한형일 씨는 “서울과 같이 숨 막히는 공간 속에 이렇게 샘물처럼 맑은 장소가 있다는 것이 새롭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하지만 타 공연장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되는 만큼 경제적 어려움도 있다. 이에 대해 박정욱 씨는 “영업공간이 아니라 예술관이기 때문에 경영한다는 생각으로는 운영이 쉽지 않다”며, “우리 국악에 대한 많은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와 함께 밤이 깊어가고, 가벼운 가격으로 고전의 맛을 한껏 즐기고 나오는 길에는 발걸음까지 가볍게 만드는 흥겨운 추억이 남는다. 그러나 곧, 토요일에도 공연하고 싶다던 박정욱 씨의 말이 떠올라 민요를 흥얼거리며 신명 나게 걷던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이 아늑하고 정겨운 곳에서 국악의 정취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아니 오지를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