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눈먼 자들의 도시>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하철역에서 나와 길을 걷는다. 거리의 건물들은 매끄러운 표면을 뽐내고 있다. 최근 지어진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온몸으로 햇빛을 고스란히 반사시키며 건물 속 모습을 쉬이 보여주지 않고 빛난다. 하지만 그 빛남은 한 여관 앞에서 머릿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이 여관이 바로 전시회 <눈먼 자들의 도시>가 열리는 장소이자 80여 년 동안 수많은 나그네를 맞이하며 머묾과 떠남이 공존했던 ‘보안여관’이다. 이곳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기억이 누렇게 바래버린 벽 속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여러 개의 방이 보인다. 역사를 간직한 여관의 방 하나하나가 현대인들의 시각을 비판하기 위해 모인 11명의 작가에 의해 전시공간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굳게 닫힌 방문에 뚫린 창문 하나. 그곳에 눈동자를 가져다 대니 방안에 놓인 작품들이 보인다. 조명이 꺼졌다 켜졌다 하는 방 안에 걸린 작품도 나를 맞는다.

전시는 동명의 소설에서 출발한다. 소설 속의 사람들은 ‘눈이 멀면 까만 세상이 보일 것이다’는 생각과는 달리 하얗게 눈이 먼다. 전시는 이를 토대로 가져와서 현대인들을 조명하고자 했다. 전시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현대인들은 하얗게 눈이 멀었지만 동시에 눈이 완벽히 먼 것이 아니다. 단지 하얀 것, 사물의 겉모습만 보고 그 속에 숨겨진 다채로움, 진짜 내면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얗게 눈이 먼 사람들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보안여관의 한 방에 들어서 보니 수많은 석고 파편들이 부서진 채로 널브러져 있었고 그 위에 하나의 추가 떠 있었다. 한때 멋진 건물들이었을지도 모르는 석고 조각이 이제는 원형을 알 수 없는 흰색 부스러기가 됐을 뿐이다. 파괴된 하얀 세상 속에서 사물은 외향과 내면의 구분 없이 그냥 흰색 파편일 뿐이었다. 도시의 내면을 파헤치기 위해 겉을 무너뜨렸지만 결국 보이는 건 다시 흰색, 겉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내면을 가리는 하얀 벽이 파괴되지 않은 것이다.
 

   
 

다른 방을 들어서니 시력 테스트 장치가 보인다. ‘보인다’는 사실을 가장 시각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 시력 테스트 장치는 여느 장치들이 담고 있는 숫자나 모양 등을 담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이 장치에는 ‘녹쌕성장’, ‘비정규직’, ‘스폰서 검사’ 같은 사회의 부조리들이 가득하다. 시력을 가졌지만 보이는 것은 부조리뿐, 사회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사물의 내면을 보려고 해도 그를 가리고 서 있는 부조리함을 극복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현대인들은 내면을 보는 시력을 잃어간다. 부조리 속에 숨겨진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고 하얗게 눈이 멀어져 간다.

하얀 시선으로 가득 차있던 여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다시 보안여관을 바라보았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공간이면서 한편으로는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 여관. 겉으로만 세상을 보고 파악하려고 하는, 혹은 내면을 보고 싶어도 부조리에 가로막혀 도저히 볼 수가 없는 현대인의 모습이 겹쳐지는 듯하다.


△전시명:눈먼 자들의 도시
△전시일시:8. 19~9. 11
△전시장소:통의동 보안여관
△공연가격:무료
△전시문의전화번호 : 02-720-8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