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진화한다』, 대니얼 데닛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레드 썬! 최면에 걸린 사람의 눈이 점점 감기고 어깨가 축 늘어진다. 그리고 그는 최면술사의 말에 무조건 복종한다. 이처럼 최면에 걸린 이는 순간적으로 온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그의 의지는 이내 종적을 감춘다. 그렇다면 과연 최면에 걸리지 않았을 때도 우리는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려는 의지를 오롯이 반영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사전에 따르면 ‘자유 의지’는 외적 제약을 받지 않고 내적 동기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는 의지를 뜻한다. 오래전부터 자유 의지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관해서 다양한 이견이 존재했다. 마침내 현대에 와서 자유 의지는 없는 것으로 학계의 의견이 모아졌다. 신경 과학이 신경세포 다발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짐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이는 1980년대의 한 실험에 의해 증명됐다. 연구자는 실험 대상에게 10분 안에 아무 때나 예고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대상이 움직이기 약 0.3초 전에 뇌에서 ‘준비 전위’가 측정됐다. 개인이 행동을 결정하기 전에 뇌는 이미 결정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자유 의지에 주목하는가? 그 이유는 자유 의지가 ‘책임’이라는 전통적이고 중요한 가치와 깊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가 존재한다는 전제 없이는 인간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죄질을 따질 때 범행의 고의성 여부는 중요한 항목을 차지한다. 만약 자유 의지가 없다면 범행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윤리적인 공동체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선 자유 의지의 존재 여부에 대해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 의지에 대립하는 ‘결정론’은 인과관계에 따라 물리적 결과가 모두 정해져 있기에 자유 의지는 실존하지 않는다고 본다. 때문에 자유 의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정론과 자유 의지는 본디 양립이 불가능한 이론들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동안 둘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쪽의 손만 들어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대니얼 데닛 저자의 『자유는 진화한다』는 불가능해 보였던 이들의 간극을 메우고 화해 가능성을 모색한다.

저자는 결정론의 토대가 되는 ‘불가피성’은 다소 무리한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불가피성은 촘촘한 인과 법칙에 따라 모든 행동이 결정됐고 누구도 이를 피해갈 수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시스템이 어떻게 설계됐는지에 따라 어떤 결과는 피해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도전자가 컴퓨터 게임에서 패배했다. 이는 결정론에 근거해 이미 정해진 사실이었을까? 프로그램의 입장에선 이미 입력돼 있기 때문에 결정된 사실이다. 하지만 도전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행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에 정해지지 않은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은 의도를 갖고 많은 현상을 피할 수 있다. 결정론은 운명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기에, 결정론이 적용되는 범위를 정할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저자는 “피할 수 있는 일엔 자유 의지가 작동하므로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수많은 지식은 때때로 인간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데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곤 한다. 범행 시에 자유 의지가 없었던 범죄자의 형량을 감소하는 제도에 대해 많은 이들의 의견이 분분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유 의지와 결정론의 오랜 힘겨루기를 끝내고 결정론적 입장과 자유 의지 모두 생활 속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의 주장과 같이 결정론적 관점에서도 피할 수 있는 일에 한해 책임을 지는 윤리 개념이 도입됐을 때, 더욱 도덕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한 제3의 길에서 가치관을 다듬으며 개인과 사회가 계속 진보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