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은혜 편집장 (amy0636@skkuw.com)

8월부터 시작된 필자의 운전면허 취득 도전은 추석 바로 직전 끝을 맺었다. 무서운 것 참아가며 딴 운전면허는 정말…… 감격이었다. 그렇게 서둘러 운전면허증까지 발급받았지만 혼자서는 집 앞 슈퍼까지 운전하는 것도 두려웠기에 엄마와 함께 운전 연습을 하게 되었다.

차선을 바꾸는 일부터 브레이크를 밟는 것까지 엄마에게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아주 살금살금 운전해가고 있는데, 도저히 필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옆에선 차가 바짝 붙어 있어 차선을 바꾸지 못하고 앞에는 차가 주차되어 있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지만 차의 속도가 빨라 브레이크를 밟아도 주차된 차를 박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렇다. 바로 그 찰나에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결국, 차선을 바꾸지 못하고 앞에 주차된 차를 박은 것이다. 정말 당황스럽고 덜컥 겁부터 났다. 10년 넘게 운전하신 엄마도 운전 1일째인 나도 사고는 처음이었다. 우리 모녀는 어디선가 보아온 대로 사고 난 차량과 상황을 사진으로 찍었다.
필자는 당시 휴대전화가 고장 났었기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엄마께서 차의 앞면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셨다. 전화를 받은 차 주인과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엄마께서는 당시의 사고가 당신의 불찰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설명하셨다. 실제로는 엄연히 필자가 초래한 사고인데도 말이다.

그 순간, 상당한 창피함이 몰려왔다. 엄마를 향한 창피함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창피함이었다. 성인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당당히 잘못을 책임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창피함 말이다. 본인의 잘못을 아무리 부모님이어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참 생각해보니 책임감이란 것이 그 어떤 감정보다도 무서운 것 같다. 지나친 책임감은 언제나 견디지 못할 부담감이 되기 마련이고, 대신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뒤에 숨고 싶은 심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일쑤니까.
또 20대, 대학생이란 신분이 또 모호하다. 대학교를 입학하는 그 순간까지 대학교 선택부터 생활 전반에서 부모님과 많은 대화 속에 결정하고 무슨 일이 생기든지 보호자가 대신 나서서 일을 해결해 주는 일이 잦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선 성인이란 이름 아래 상당한 자유가 주어진다. 어떤 일이든지 부딪혀 보는 일이 좋다는 지나친 패기와 함께.
그렇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모두 성인인 우리들이 지는가. 개인에게 부여된 일, 가령 자신이 같은 발표 조에서 하기로 한 일이나 동아리 내에서 해야 하는 일과 같이 책임져야 할 일을 할 때를 생각해보자. 열이면 열 우린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을까. 혹시 하지 않았다면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일까.

더는 우리에게 부모라는 크고도 깊은 방패막이는 없다. 아무리 우리를 도와주고 싶다고 해도 우린 이미 스스로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혹시 필자와 같이 책임감의 부족함을 느껴 속상한 이가 있다면 함께 성인다운 책임감을 가져보자고 글을 끝내려 했더니 갑자기 떠오른다. 고시생들에게 상처를 줘가며 감춰져 있던 사회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게 했던 그녀. 외교부장관의 따님께선 현재 어떤 책임을 지고 계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