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원 수(중국사)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 학기 연구년을 베이징에서 보냈다. 중국사를 가르치는 나에게 중국 사회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문화적 배경이 다른 외국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으나, 중국인들의 호의와 배려 덕분에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농촌에서 갓 올라온 아파트의 어린 경비원이 다리가 불편한 나를 도와주며 짓던 수줍은 웃음이나 멋쟁이 우체국 여직원의 “안녕히 가세요.”라는 서툰 한국어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교정에서 중국 유학생(留學生)들이 유난히 많이 나의 눈에 뜨인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왕시아오링(王曉玲)이 최근에 쓴 『중국인의 마음속에 있는 한국의 형상(形象)』이란 책을 보면, 중국인들은 한국을 좋아한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를 50으로 하여 비교하였을 때, 한국 국가에 대한 호감도는 62.0, 한국 사람에 대한 호감도는 61.7로 꽤 높다. 그런데 이 수치는 ‘한국인과 사귀고 싶은 정도’가 60.8, ‘한국인과 같이 일하고 싶은 정도’는 58.1로 점점 낮아지고, ‘한국에 살고 싶은 정도’의 경우 55.4로까지 떨어진다. 중국인들의 설문조사에 의거한 이 통계는 한국인인 나에게 반가움과 함께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 사람들과의 구체적인 관계에 대한 기대가 한국이나 한국인과 같은 추상적 대상에 대한 호감만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내가 느낀 중국인들의 감정 역시 이 책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었기에 좀 더 반겨졌던 듯하다. 그러나 한국 사람에 대한 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겉모습을 뽐내며 거들먹거리는 한국인들을 볼 때 나 역시 그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돈만 가진 졸부(猝富)를 누가 믿고 또 좋아하겠는가!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언행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오랫동안 긴밀히 교류하면서 문화적 동질성을 증대시켜 왔다. 그러나 늘 좋을 수만 없는 과거의 경험 속에서 굳어진 선입견 역시 적지 않다. 사실 중국인들의 한국과 일본에 대한 감정은 근대사의 전개 과정과 관련이 깊다. ‘대일본제국’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싸웠던 역사 속에서 중국과 한국의 친밀감은 더욱 커졌고, 이것은 체제나 이념의 차이와 무관하게 현재까지 이어진다. 일본인보다 한국인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감정에는 역사적 기반이 있는 것이다.
예전에 평범한 사람들은 국경을 넘기 어려웠다. 외국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이나 경계심밖에 없던 이들이 특정한 외국관을 갖게 된 계기는 대부분 인접 국가 통치자들 사이에 가끔 벌어진 싸움이었다. 사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국제관계에서 갈등은 일면 불가피하고, 국가를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책이 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근대 이후 외국의 침탈을 받았던 이른바 제삼세계의 경우 더욱 그러한데,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외국과의 관계에서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곧잘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수많은 이들이 외국으로 나가고, 외국인들과의 면대면(面對面) 관계가 결코 생소하지 않다. 여기에 인터넷 상에서의 만남까지 덧보태어져서, 일반인들도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외국관이 있다. 이를 근거로 역사책에서 배운 외국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의 민주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또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를 만난 외국인의 한국관에 미칠 수 있는 나의 영향 때문이다. 우리처럼 평범한 이들도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 속의 일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생각과 행위가 모여 곧 훗날 새로운 역사의 바탕이 된다. 이와 같은 역사적 주체로서의 자각은 일면 나를 뿌듯하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 어깨를 무겁게 한다.
사실 국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내가 좋은 것을 외국인들 역시 좋아하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단지 언어와 문화가 달라 오해가 생기기 쉬울 뿐이다. 국가의 이익을 앞세운 기존의 역사책으로부터 주입된 추상적 관념도 편견을 부추길 수 있다. 우리와 인접한 중국의 역사를 가르치는 나도 혹시 여기에 일조하였을까 두렵다. 교정에서 함께 공부하는 중국 친구들에게 “니 하오”라고 먼저 인사하기를 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학생들 스스로 중국인들과 만나 자신의 중국관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더 먼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평범한 우리들은 대화를 통해 선입견을 줄일 수 있고, 국적과 관계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세계화’는 이로부터 시작한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군주와 신하의 몫이나, ‘천하(天下)’를 지키는 데는 천한 필부까지 책임이 있다는 고염무(顧炎武)의 글(『일지록(日知錄)』 권13, 「정시(正始)」)이 문득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