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영화 ‘댄서의 순정’을 기억하는지. 사람들은 문근영의 미모와 박건형의 넓은 가슴팍만 떠올릴지 모르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둘이 ‘댄서’라는 사실이다. 동시에 이 영화가 댄스스포츠의 세계를 대중에게 열어 보였다는 점도. 그 후로 ‘MBC 무한도전’팀이 댄스스포츠 도전기로 인기몰이를 하더니, 프로 못잖은 춤사위를 선보이는 연예인들이 명절마다 TV에 어른거린다. 댄스스포츠, 그는 누구이며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는 화려한 사교파티와 그 속에서 춤을 추는 남녀가 자주 등장한다. 넓은 볼룸(Ballroom)에서 파트너와 추는 이 춤, 일명 볼룸댄스가 바로 오늘날 댄스스포츠의 기원이다.

  “이렇게 태어나 바람잘 날 없었네”
사교 매체에 불과했던 영국의 볼룸댄스는 1920년대 들어 변신을 꾀한다. 단순히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질 뿐이었던 동작이나 기법 등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것. 왈츠, 탱고 등의 ‘모던댄스’와 룸바, 차차차 등의 ‘라틴댄스’로 구분된 것도 이 시기다. 여기에 점차 스포츠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사람들은 이 새로운 춤에 댄스스포츠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마침내 1987년 공식 명칭이 되며 새 삶을 얻은 후 댄스스포츠는 기다렸다는 듯 힘찬 도약을 선보인다. 1995년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경기종목으로 잠정 승인을 받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더니, 올해 11월 열리는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드디어 정식종목으로서 국제무대에 서게 됐다.

댄스스포츠가 우리나라에 흘러들어온 것은 고종 황제 때다. 1920년대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가 볼룸댄스를 처음 조선에 소개한 후, 일본과 소련에서 돌아온 유학생들이 기독교청년회에서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댄스스포츠는 계속되는 오해에 발이 묶인다. 선구자 격이었던 사람들이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며 보급에 힘썼지만, 내일 끼니 걱정으로 오늘을 사는 서민들 눈엔 그저 사치와 허영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짓’이라는 인식이 열병처럼 번진 상황에서 춤을 보려는 사람도, 추려는 사람도 점점 사라져갔다. 80년대 들어서는 한시름 놓은 경제적 형편과 맞물려 일본 사교댄스가 일반인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희망을 품은 것도 잠시, 이는 도리어 본래 댄스스포츠가 가진 순수한 의미를 오염시켰다. 카바레, 제비, 춤바람과 같은 어두운 꼬리표가 붙고 정부의 탄압까지 더해졌다. 이로써 한국 댄스스포츠가 재기할 길은 더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 이름 불러주면 피어나리라”
하지만 10여년 후 댄스스포츠는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90년대 들어 여가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던 일반인들의 관심영역이 댄스스포츠에까지 미친 것이다. 스포츠성에 음악성과 예술성, 재미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댄스스포츠는 최적의 활동이었다. 단순히 개인의 취미로서뿐 아니라 전문적인 부분도 활발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각종 크고 작은 대회들은 댄스스포츠가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고 그 스포츠적인 면모를 증명하는 기회가 됐다. 이 밖에도 국외 외교가 중요해지며 춤이 외교적 도움을 준다는 사실과 국제단체에서 댄스스포츠의 가치를 인정하고 주목하기 시작한 점도 우리나라 댄스스포츠의 입지에 좋은 영향을 줬다. 호시절을 맞아 부정적 인상이 조금씩 바뀐 것이다. 오랜 암흑기 끝에 숨통을 튼 댄스스포츠는 비로소 그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얼굴을 되찾으며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시작했다.

오늘날 댄스스포츠는 우리 삶 사이사이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초ㆍ중ㆍ고등학교의 특별활동 과목으로, 대학교의 교양과목 및 동아리 활동으로, 각종 복지프로그램에 포함되거나 동호회의 형태로 누구나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모습을 띤 채 가까이 존재한다. 댄스스포츠 동호회 ‘조이라틴’의 박강호 회장은 “댄스스포츠는 상대에 대한 예절과 배려를 중요하게 여기므로 타인과 편안한 교류가 가능한 동호회 형태가 개인 교습보다 배울 점이 많다”며 전국적으로 3백 개가 넘는 동호회가 생겨나는 이유와 가치를 전했다.

“저 높이 갈 수 있게 날개 달아주오”
이처럼 지난 세월에 비해 국내외적 위상이 높아진 것을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한편,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이와 관련 대한댄스스포츠경기연맹 김민 이사는 제도적 측면에서의 아쉬움을 내비쳤다. “관련법규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쉽다. 정식종목으로 인정받았음에도 사교댄스법령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점을 해결해 시설지원 등을 받을 길을 열어야 한다”며 한계를 지적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댄스스포츠는 멀고도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곧 열릴 아시안 게임의 한 자리를 화려하게 물들일 댄스스포츠. 그 끝나지 않은 행보에 관심의 끈을 늦추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