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드마운틴' 속 소설 '폭풍의 언덕'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혼자서 애달프게 그리던 사랑하는 이의 얼굴, 그리고 달려가 마주한 얼굴. 그 둘이 너무도 달라서 내 감정을 의심해 본 적 없나요? 아무도 자신 있게 “응, 없어”하고 대답할 수 없을 거예요. 우리네 사랑의 작대기는 실재보다는 달콤한 환상을 가리키기 더 쉬우니까요.

한바탕 폭격이 지나간 자리,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비틀비틀 일어서는 이 남자의 이름은 ‘인만’입니다. 남북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지요. 간절히 뻗는 피투성이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리는 흑백 사진이 보이나요. 그 속에는 아름다운 연인 ‘에이다’가 있습니다. 그가 돌아올 날만 눈물방울로 찍어 세고 있는 그녀와 그런 에이다 때문에 죽을 수 없는 인만. 영화 ‘콜드마운틴’은 이 둘의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만날 수 없는 연인만큼 가슴 에인 것이 또 있을까요. 사경을 헤맬 때마다 에이다의 이름을 숨처럼 뱉어대는 인만도, 밤마다 인만의 사진을 바라보며 고꾸라질 듯 피아노를 치는 에이다도, 보는 이의 눈꺼풀에 묵직한 슬픔을 얹고 갑니다. 하지만 두 사람을 보고 있자면 묘하게도 미심쩍은 마음이 듭니다. 애절한 손길이 향한 자리가 서로의 심장이 맞는지. 푸른 두 눈 위에 비친 그것이 진정 상대방의 눈동자, 오직 하나뿐인지.

이 가여운 연인은 상대방, 그 너머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인만에게 에이다는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난 후에 찾아올 달콤한 미래, 그리고 위험천만한 탈영을 감행한 명분입니다. 에이다도 다를 바 없지요. 곱게만 자란 탓에 끼니를 해결하는 일조차 에이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언젠가 인만이 구세주처럼 나타나 예전의 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 줄 거란 희망만이 그녀가 오늘을 사는 이유의 전부입니다.

잠들기 전 에이다는 소리 내어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 고아로 자란 히스클리프와 그를 키워준 집안의 딸 캐서린의 광기 어린 사랑으로 유명한 작품이지요. 책 속의 연인은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밑바닥까지 사랑합니다. 무슨 짓을 저질렀고 어떤 모양새로 살아가든 그런 것은 그들의 사랑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습니다. 캐서린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나는 히스클리프였다”라는 유언을 남기지요. 자신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은 그의 불행이었고, 그에 대한 사랑은 ‘기쁨을 주지 못해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정의합니다. 그런 그녀의 시신을 붙들고 히스클리프는 절규합니다. “귀신이 돼 날 찾아오란 말이야.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줘, 어떤 형체로라도.” 

에이다는 매일 밤 이 지독한 사랑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을까요. 그녀는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 한 것입니다. 돌아올 인만을 위해서 그의 본질을 사랑하는 연습, 존재를 사랑하는 연습을 말이지요. 어쩌면 소설 속 무모한 연인이 그녀의 사랑이 빗나가 있단 사실을 일깨워 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무뎌진 당신의 사랑에 물어보세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지금 떠올린 그 얼굴이 정말,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