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도시녀의 칠거지악>

기자명 김영인 기자 (youngin@skkuw.com)

2층 한 켠, 날 것 그대로의 음악이 흐른다. 삭막한 도시와 닮아져버린 마음을 두드리던 안나의 노랫소리에 무심코 왈칵. 드디어 연극이 시작된다.

회색 사각형의 무대. 서른세 살의 백안나가 등장한다. 이제 막 발레를 시작한 즐거운 그녀를 세상은 가만두지 않는다. 엄마는 다녀와도 되니 시들기 전 시집 한 번 가라 하고 친구들은 전신 성형을 강요한다. 또 다른 서른세 살 조안나도 등장한다. 1%의 희망 끝에 만난,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던 남자는 사랑이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 잠깐의 유희일 뿐이다. 또 다른 서른세 살 이안나도 마찬가지. 얼핏 성공한 것처럼도 보이는 그녀는 시끄러운 도시 속에 귀머거리처럼 살아간다. 모든 사람이 웃지만 그녀는 웃기지 않고, 모든 사람이 울지만 그녀는 슬프지 않다.

그들은 ‘안나’라는 세련된 이름처럼 완벽한 도시 여성이 되기 위해 은연중에 압박받고 있다. 과거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잘못’인 칠거지악의 현대판인 ‘도시녀의 칠거지악’에 의해서다.

그러나 그를 들여다보면 도시에서 이런 죄악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진정한 사랑은 없다고 외치면서도 계속 믿고 싶고, 가려진 상처의 틈은 벌려 보니 너무 깊었고, 미래가 불안하니 점쟁이에게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고, 과거에 기대어 현재에서 도망가고 싶기 때문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던 사회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죄악이 된 것이다. 그러나 메마른 감정을 억지로 짜내기는 여전히 곤욕스럽다. 진짜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그러나 피부조직으로 보여 지는 얄팍한 감정은 우습게도 가장 중요하게 됐다.

3명의 안나. 그들은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안나’들은 때로 수많은 대중의 한 명이 되기도,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나와 당신이 그렇듯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했듯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과 마주하게 된다. 고를 수 있는 답이 결정돼 있는 선택 말이다. ‘골드미스, 엄친 딸, 명품 가방, 세련된 말투’ 되어야만 하고, 사야만 하고, 갖춰야만 하는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당신을 옥죄일 때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수학적 계산으로 만들어진 경우의 수를 놓고 머리를 굴려보지만 결국은 처음 주어진 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가 너무나 뻔하다. 교과서에서 가르치듯 용기를 쥐여주기도, 상투적인 노랫가락이 흥얼거리듯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나의 이야기가 곧 당신의 이야기고 그것이 우연히 당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오늘날 이곳, 도시의 모습인 것을.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한 순응, 그리고 반복에 익숙한 우리는 현대 도시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싸한 몸뚱이로 살기 위해 오늘도 온몸을 난도질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지금 이곳, 도시에 안락한 둥지를 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쳐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인가?

△공연명 : <도시녀의 칠거지악>
△공연일시 : ~10월 24일
△공연장소 :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 극장